07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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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하나님을 선택하라

1. A냐 B냐 그것이 문제로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참으로 많은 선택이 있지 않습니까? 먹는 것 부터 무엇을 먹을지 엄청난 고민을 합니다. 옷도 오늘 뭐입을지 여러분 수없이 고민했을 겁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이고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조금 무서운 말입니다. 선택이 엄청 중요하다는 거잖아요. 이 말이 가진 힘 때문인지, 또 우리도 살면서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선택 앞에서 신중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학교때 고등학교 어디로갈지 엄청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그때 선택을 후회하고 있는 거 같더라고요. 내가 그때 선배의 말을 듣지 않아야 했는데, 내가 왜 이 학교를 와서 자퇴마렵네 뭐 이런 말을 달고 살잖아요. 과거의 선택이 후회하는 나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 고3 친구들은 어떤 대학, 과, 수시, 정시 여러 선택 앞에 놓여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자신을 자꾸 두렵게 만들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선택의 비결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A대학을 가야할지, B대학을 가야할지 선택의 비결을 알려주겠습니다. A남자를 만나야할지, B남자를 만나야할지 음 근데 선택의 폭이 그렇게 넓지는 않을 수 있겠네요? 여튼 선택의 비결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알아봅시다.

성경이야기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1장 15-21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에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고 또 아이들이 잘 커서 성장했던거 같아요. 아이를 낳는 것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아기가 뚝딱 나올거라 생각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이가 커가는 것도 기적입니다. 특히 고대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죽기도 하고, 크면서 병으로 죽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움 없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렵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집트의 왕 바로는 더욱 두려웠습니다. 혹여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나라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을 합니다.
출애굽기 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출애굽기 1장 10절을 보면 바로는 ‘지혜’를 통해서 선택합니다. 머리를 열심히 써서 한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아요. 그 방법이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괴롭게 하면 아이를 낳기도 어렵고, 아이가 크는 것도 어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힘든 노역을 시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죽어라 벽돌 굽고, 벽돌 옮기고, 다시 쌓고 시키는 겁니다. 속된 말로 노가다를 시키는 겁니다. 그러면 알아서 그들의 숫자가 줄어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스라엘 백성을 밟아도 밟아도 꺾이지 않는 겁니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자라는 잡초 같은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는 줄지 않고 더욱 많아졌습니다. 바로는 다시 고민하여 선택합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를 낳으면 아들이면 모두 죽이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히브리 산파 아이를 낳을 때 도움을 주는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명령을 내립니다. 아들이면 죽이고 딸임녀 살려라.
그런데 산파들이 그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를 출애굽기 1:17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누가 두려워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명령을 어깁니다.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어겼기에 죽을 수 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보다 아이들의 생명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자에게 축복이 임함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 줄거리입니다. 밟아도 밟아도 꺾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히브리 산파의 믿음입니다.

선택의 기준

여러분 바로는 두려움 앞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히브리 산파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이 둘은 두려움이라는 같은 상황 속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도데체 이 둘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것일까요?
책에서 봤던 이야기인데 어느 인디언이 뉴욕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답니다. 둘이서 맨해튼 시내를 걷는 중에 인디언이 갑자기 멈추어 서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뉴욕에 사는 친구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는 거에요. 이유는 뉴욕 시내에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단으로 가까이 가더니 한 화분에서 귀뚜라미를 딱 잡습니다. 그러더니 뉴욕청년이 너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놀랐나봐요. 근데 인디언이 나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어하는 관심이 다른 거야 말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전 몇개를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그러더니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이 발거음을 멈추고 바닥을 보고 있었대요.
여러분 우리 중심에 따라 듣는 소리가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이 다르면 우리의 선택도 달라지는 겁니다. 사실 선택의 기준은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문제입니다.
바로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은 누군가를 괴롭히는 선택이었습니다. 나를 지키자고 누군가를 죽이는 삶, 우리가 살아가는 경쟁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우리들의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의 중심에 오직 ‘나’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반대로 히브리 산파들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산파들은 하나님을 선택한 겁니다. 히브리 산파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있기에 그들은 ‘내가’ 살자고 ‘누군가’를 죽이는 삶을 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중심에 있기에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누군가를 살리는 인생을 선택한 겁니다. 히브리 산파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선택 앞에 항상 고민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내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선택 앞에서 항상 어렵고 실패한다면 내 중심에 ‘나’로 가득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중심에 나로 가득하다면 이제 내가 중심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선택합시다. 하나님을 선택할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히브리 산파는 그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때 그들은 밟아도 밟아도 꺾이지 않고 번성했습니다. 반대로 ‘나’로 가득한 바로는 누군가를 밟는데 자기가 지쳐서 쓰러지는 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어떻게 선택을 잘하는가?

그러면 초반에 말했던 어떻게 선택하면 잘 할 수 있을까요? A대학이냐, B대학이냐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A 남자냐 B 남자냐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제가 결정해드립니다. 미안해요 사실 잘 모릅니다. A냐 B냐 어렵죠? 그래서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A에 있는지 B에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학이라면 기독교 학교 A에 하나님이 있고, B학교는 기독교 학교가 아니어서 하나님이 없는 걸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라’ 이 말은 그런 선택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여러분 선택 앞에 기도하고, 선택을 놓고 하나님께 여쭈며 말씀을 읽으십다. 너무 뻔하고 쉬운 대답갖죠? 그러나 여러분 선택 앞에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선택할 때 하나님은 그 선택을 통해 우리를 붙잡으시고 인도하실 겁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선택입니다. A냐 B냐 이것을 하나님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임을 알고 묵묵히 걸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A냐 B냐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그곳에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파도를 잘 탈 수 있냐? 파도를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파도는 그저 흘러오는 겁니다. 큰 파도를 주면 큰 파도가 오는 거고, 작은 파도가 오면 작은 파도가 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파도를 잘 올라타면 됩니다.
우리의 선택도 그렇습니다. A냐 B냐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그 파도에 올라타는 겁니다. 기도함으로 A를 선택하든 B를 선택하든 그 곳에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과 은혜로 우리는 그 파도를 올라타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작은 선택들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매번 여러분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려고 기도하고 씨름했던 그 모든 순간이 쌓였을때 여러분 그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과 감각으로 선택했을때 위기 가운데서 아무리 하나님을 선택하고 싶어도 하나님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순간에도 하나님에게 묻고 기도하며 했던 선택 속에서 하나님의 파도가 무엇인지, 어떤 파도가 우리를 더 앞으로 인도할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지고 만들어가십니다. 히브리 산파는 그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선택한겁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니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의 인생을 책임지셨습니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선택하라

특별히 여러분 선택의 기준에서 생명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이스라엘 아이들의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내어주는 그 희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도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이웃’ 특별히 ‘고통 받는 이웃’의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기를 권면합니다.
세월호 사고 학생 중 ‘양온유’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배가 기울어지는데 안에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침몰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온유 학생은 밖에 있어서 배가 기울어 갈 때 바다로 뛰어들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유는 바다로 뛰어드는 선택이 아니라 배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합니다. 배 안에 있는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들어간 겁니다. 온유에 의해서 5명의 학생들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나오지 못하고 배와 함께 침몰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온유는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온유처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온유가 보여주었던 그 선택, 생명을 위한 선택을 보면서 저는 예수님의 선택이 생각났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해 십자가에 내던지는 그 사랑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라 말합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온유와 같이 매일의 삶에서 이웃의 생명을 위해 선택하는 삶인거 같습니다.
온유와 같은 상황에서만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사는 것처럼, 우리 중심에 고통받는 자들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고통 받는 자들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기도하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선택 속에서 이웃을 위한 선택에 고민을 함께 하라고 권면합니다. A대학을 갈까, B 대학을 갈까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조금 바꿔봅시다. ‘하나님 제가 어느 곳으로 가야 고통 받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요?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을까요?’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어떤 선택을 원하시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또 바뀌어야 합니다. ‘나’에서 ‘고통 받는 이웃’에게는 어떤 선택이 생명을 주고 자비를 베풀 수 있는지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겁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중심에 있는 것이 여러분을 선택합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을 둡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합시다. 매 선택 속에서 하나님에게 묻고 기도함으로 선택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선택하며 우리의 선택을 고통 받는 자들의 생명까지 나아갑시다. ‘나’를 위한 삶을 넘어서서 ‘이웃’을 위한 삶의 선택을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중심과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을 두고, 고통 받는 자들의 이웃을 함께 둡시다. 그리고 선택 속에서 그들을 위한 선택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붙잡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선택할 때 은혜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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