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렇게까지 자비로우실 수 있으신가요?
Notes
Transcript
자비
자비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자비’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뭔가 학교에서 큰 실수를 했을 때 선생님에게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용서를 구하며 자비를 바란다. 또 친구와 다투고 자신이 너무 심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친구에게 자비를 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버스를 딱 탔는데 교통카드에 돈이 부족할 때 버스 기사님의 자비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길을 잃은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도 누군가의 보호 본능과 자비를 믿고 도움을 요청한다. 또 길거리에서 노숙하시는 사람이 돈을 달라는 말이 없이도 돈통을 두고 자비를 구한다. 일상 속에서 자비를 구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약하고 부족하니, 나를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하고 도와달라’는 마음의 표현이다. 자비가 영어로 무엇인가? Mercy, Compassion이다. 그래서 실제로 컴패션이라는 아프리카에 해외봉사하는 기독교 비영리 단체로 유명하다. 성경에서 자비란 “하나님이 죄인에게 베푸는 긍휼과 사랑”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 죄인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푸는 사랑이며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어떤 자비를 베푸셨는지 요나를 통해서 우리게 말씀해주신다. 요나서는 4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선지서이다. 요나의 이름의 뜻은 비둘기이다. 보통 비둘기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렇다. 우리가 공원에 가면 비둘기가 왠지 할 일이 없어보이지만, 비둘기는 소식을 전하는 동물이다.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비둘기에 발목에 쪽지를 묶어서 보내는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을 수 있다. 비둘기는 귀소 본능과 뛰어난 방향 감각과 훈련을 하면 길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현대까지도 자연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요나의 이름이 비둘기라면 누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는가? 그렇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들이다. 요나서의 전체를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다. 어느 날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을 향해 외쳐라. 그들의 죄가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요나는 얼른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하고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도망가는 배를 탄다. 니느웨는 당시 이스라엘의 최대 적국인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잔혹한 민족이었냐면, 전쟁을 일으키면서 민간인들도 학살하여 죽인 해골을 가지고 탑을 쌓는 민족이었다. 그러니 원수 같은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탔는데 갑자기 바다에 폭풍이 일어났고, 선원들이 공포에 떨면서 각자 신에게 기도하게 된다. 그때 요나는 잠을 자고 있었고 선원들이 깨워서 당신의 신에게 기도하라고 그러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알아보자고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딱 뽑힌 것이다. 요나는 이 상황을 보면서 자신이 여호와 말씀에 불순종해서 폭풍이 일어났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고백한다. 그래서 자신을 바다에 던져 버리면 된다고 제안해준다. 요나는 숨참고 Love dive를 하며 바다에 던져지자 사람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러자 정말로 요나가 던져진 후에 바다가 잔잔해졌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여호와를 더욱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희생 제물을 바친다. 그러던 찰나에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게 된다. 그래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 동안 회개 기도를 드린다. 그러면서 주께 맹세헌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다고 고백하며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다고 기도한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셔서 물고기가 요나를 마른 땅 위에 토하며 뱉어 놓았다. 그때 하나님이 다시 요나에게 명령하신다. “니느웨로 가라.” 그래서 요나가 물고기에게서 뱉어낸 욥바라는 장소에서 니느웨까지 거리가 900km정도 된다고 한다. 거의 한달을 꼬박 걸어야 겨우 도착하는 곳이다. 요나는 순종하고,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라고 백성들에게 외쳤다.
그때 900km나 되는 먼 거리에서 온 히브리 사람이 와서 예언의 이야기를 전하니, 진짜 신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니느웨의 왕부터 백성까지 금식하고, 장례식 때 입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한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니느웨를 멸망시키려고 하셨으나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하신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요나는 하나님의 자비에 화를 내며 투덜댄다. “이래서 내가 처음에 도망친 겁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니까 결국 용서하실 줄 알았어요.”라고 말이다. 하나님은 요나가 쉴 때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박넝쿨을 자라게 하신다. 그 그늘로 인해 요나는 편해진 것에 기분이 몹시 좋았다. 다음 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벌래 보내셔서 그 나무를 모조리 갉아먹게 하셨다. 결국 그 나무는 죽어버렸다. 요나가 박넝쿨 하나 죽은 것에도 분노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교훈을 주신다. “너는 박넝쿨 하나에도 아끼는 마음을 가지면서, 내가 저 큰 성 니느웨에 있는 수많은 사람과 짐승들을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요나서는 끝나게 된다.
구약 성경에서 유대인이 하나님의 메세지를 선포하여 이방의 어느 한 도시 전체를 회개하는 일은 요나가 유일하다. 왜 요나는 그렇게 앗수르에게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하기 싫어했는가? 물론 잔혹한 도시의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사상은 유대인들을 제외한 다른 이방인들은 그저 지옥의 뗄감인 존재일 뿐이었다. 이것을 선민사상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만 구원 백성이라고 율법을 잘못 이해하여 착각한 것이다. 물론 이방인 중에서도 항복하고 유대교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받아주었지만, 제사를 드릴 때 성전에 완전히 들어가지는 못했고 이방인의 뜰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것은 받아주었지만, 굳이 이방인들에게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것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와 민족의 조상으로 그를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겠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제사장의 나라로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민족과 나라들에게 복의 통로로 사용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었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메신저이자 선지자였던 요나 조차 다른 나라에게 메세지를 전하기 싫어했던 것이다.
요나를 통해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언제 자비를 넘치도록 베푸시는가? 자신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던 불순종의 죄를 철저하게 깨닫고 회개하여 돌아올 때 하나님은 진노가 아닌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이 앗수르 제국의 니느웨가 돌이킬 때까지 얼마나 오래 참으셨겠는가?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자비롭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기간이 딱 정해져있다. 언제까지인가? 죽기 전까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죽을 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음을 기억해야한다.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이라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만이 회개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개의 마음이 들었을 때 곧장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기 소망한다.
두 번째로 요나를 통해 깨들을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긍휼은 인간의 이해나 기대를 뛰어넘는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원수 같은 사람이나 나라가 있으면 망하길 원한다. 적어도 나보다는 우리나라보다는 못 살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잔혹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우리도 얼마든지 죄에 빠져 살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원수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도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했기에 그들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원수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회개하고 여러분을 힘들게 한 시간들에 대해서 사죄하며 용서를 구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지만, 이방인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지만, 원수 같은 그 사람도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며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자비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깨달은 사람만이 베풀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 같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그 크신 은혜를 믿고 감사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그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착하다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거나, 자비를 베풀었으니까 그에 따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은혜주신 것이 아니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거저주시는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고 그 사랑 안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은혜받은 사람은 내가 착해서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일뿐이라는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람이다. 여러분의 선행의 이유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받았기에 나도 받은 그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여기 모인 꿈사땅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