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22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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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29장(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른 새벽, 저희를 주님의 전으로 부르시고
주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밤새 저희를 지켜주시고, 새로운 하루를 은혜로 시작하게 하신 주님,
이 시간이 세상의 분주함이 아닌,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고요한 예배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삶의 무게에 눌릴 때가 많지만
이 새벽에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말씀으로 중심을 세우게 하시고
주의 위로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드려지는 우리의 마음과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하루의 모든 시간 위에 주님의 선하신 손길로 동행하여 주옵소서.
또한 오늘도 정성껏 드리는 일천번제와 감사헌금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손길들 위에 주님께서 갚아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채워주시되,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는 열매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에게 제사 지냈던 고기를 먹는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우상에게 제사 지냈던 고기를 먹을 자유도 있고, 먹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앙적으로 전혀 문제 되지 않는 행위, 다시말해 우상에 제사 지냈던 고기를 먹음으로 내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바울 자신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아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겠다고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믿음이 작은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철학자나 수사학자들이 강연이나 가르침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스승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후원금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철학자나 수사학자들이 강의를 하고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례나 후원을 받지 않고 직접 손으로 일하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말씀을 전하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 셈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런 헌신적인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재정적인 후원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바울의 사도권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생겨 났습니다.
여기서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바울이 고린도에서 자비량으로 사역했다고 해서, 모든 사역자들이 그래야 한다거나, 교회가 사역자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9장 초반에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재정적 후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3-14절 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고전9:13-14, 우리말성경]
13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제단을 섬기는 사람들이 제물을 나누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로 먹고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0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역자가 교회의 후원을 받아 사역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사역자가 재정적 후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부터터 정하신 원칙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서 만큼은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인 빌립보 교회로부터는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사역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울이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은 현상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한 동기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이 의심을 받으면서까지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사역을 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12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포합니다.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바울은 누릴 수 있는 권리 다시말해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사역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범사에 참았습니다. 여기서 참았다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인내하고 자제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참았다는 것은 불편을 감수했다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오해를 감수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돈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게 되면 당시 사람들이 복음을 지식 상품이나 사상으로 오해할 충분한 여지가 있었습니다. 복음을 세상의 철학이나 웅변처럼 마치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염려가 된 것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생명인데 그 본질이 흐려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 한 것과 같이 당시 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후원금을 받으면 “저 사람도 결국 돈 때문에 전하는거 아니야? 라는 세속적인 오해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애초에 그런 오해를 철저히 차단하고자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15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말 성경입니다.
[고전9:15, 우리말성경]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쓰는 것은 여러분이 내게 그렇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나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이런 내 자부심을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역은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과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취미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세상의 웅변가들처럼 명예를 얻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오해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값을 매길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기에, 그것이 세속적인 목적과 섞이는 순간, 복음의 순수성과 영광이 흐려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내가 복음을 위해 살아온 그 모든 자랑이 헛되게 되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명예나 생계 수단이 아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포합니다.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생의 사명이었습니다. 16절에 부득불 할일 이라는 표현은 마치 빛을 져서 갚아야 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만하는 피할 수 없는 의무감을 느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자신의 삶이 오직 복음을 위해 존재 해야 한다는 깊은 소명의식을 가졌습니다.
마치 죽음에서 건짐 받는 사람이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평생을 헌신하는 것 처럼,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빛진 자이며, 이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바울은 자신의 상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힙니다.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바울에게 있어서 상은 재정적 후원을 받지 않는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진짜 상은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음으로 복음이 더 순수하게,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유익이나 편안함을 위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복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권리도 포기함으로 여러 불편함을 감수했습니다.
바로 이 자발적인 희생과 헌신,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삶이 바울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자 자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정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때로 너무 쉽게 나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인정받아야지, 이건 내가 마땅히 누려야 권리임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을 가리지 않기 위해 자존심과 편의 심지어는 생계에 대한 권리까지 기거이 내려놓는 태도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바울과 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가정에서 내가 먼저 양보하고, 가족들을 섬길 때, 그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작은 언쟁에서 이기려 하기보다, 평화를 위해 한걸음 물러설 때 가정에 진정한 복음의 기쁨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직장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동료들을 사랑으로 대할 때, 복음은 빛이 납니다. 나의 이익보다 회사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동료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질 때, 이러한 삶을 통해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기 보다, 성도인 우리의 삶으로 보여질 때 가장 큰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꺼이 내려놓고 희생할 때, 세상은 비로소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나의 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한 만큼, 복음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로인해 한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오늘 하루 내가 기꺼이 누려야 하는 권리를 포기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하루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내려놓음과 희생을 통해 하나님은 많은 이들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복음이 전달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 내가 내려놔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를 구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깨닫게 하신대로 내가 기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함으로 나를 통해 복음이 전해져 한영혼이 구원받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손해가 아니라, 영광이었고, 오히려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길이었습니다.
주님 우리도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때때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 한마디를 삼키고, 양보하며, 용납하며 복음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가 주님을 만나는 복된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다함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