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이 답입니다 2025 0723 사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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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공동체성경읽기 이사야 9-12장
Isaiah 9:1–7 NKRV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열심이 답입니다.

I. 서론: 당신의 열심은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며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 당신의 열심은 안녕하십니까?"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지만, 더 이상 열정을 불태우지 않는 겁니다. 월급을 받는 만큼, 딱 주어진 최소한의 일만 하고 마음은 이미 떠나버린 상태. 어쩌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어디 직장에서만 일어나겠습니까? 우리의 관계 속에서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학업의 과정 속에서도, 심지어는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도 이 '조용한 퇴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뜨거웠던 사랑의 마음도, 세상을 바꾸겠다던 청년의 열정도,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의 열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식어갑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듯, 우리의 열심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다시 열심을 내보려고 애를 씁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강연을 찾아 듣고,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는 자기계발서를 뒤적이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렇게 애를 쓸수록 더 깊은 공허함과 무기력이라는 '어둠' 속에 갇히는 것만 같습니다. 왜 우리의 열심은 늘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이사야 9장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그들의 모든 인간적인 노력과 열심은 절망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나라는 곧 망할 것 같았고,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는 깊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의 열심은 완전히 소진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본문은, 이 모든 인간적 열심이 끝장난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동력이 시작된다고 선포합니다. 그것은 바로, 결코 식거나 닳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소진된 열심이 끝나는 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뜨거운 열심이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 열심의 결정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방전된 우리 삶에 어떤 새로운 희망과 능력이 되시는지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II. 본론: 나의 열심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열심이 시작된다

1. 우리의 현실: 열심이 소진된 시대의 어둠 (1-2절)
먼저 2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사9:2
Isaiah 9:2 NKRV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여기서 말하는 '흑암', '사망의 그늘진 땅'은 단순히 빛이 없는 물리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이는 희망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영적이고 실존적인 소진(burn-out) 상태를 의미합니다. 모든 열심이 재가 되어버린 마음의 상태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사회 발전의 역설을 생각해 보십시오. 무한 경쟁 사회에 던져진 우리들은 남들보다 더 잘나야 생존한다는 메시지를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열심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이라는 그늘로 몰아넣습니다. 이것이 바로 열심이 소진된 시대의 어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 우리의 노력, 우리의 사랑은 언젠가 반드시 바닥을 드러내고, 우리를 어둠 속에 홀로 남겨둡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할 것은 이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나의 열심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거룩한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열심의 빛' (2-5절)
어둠 속에 있는 백성들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2절을 다시 자세히 보십시오. 사9:2
Isaiah 9:2 NKRV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그들이 빛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빛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들이 빛을 켠 것이 아니라, 빛이 그들을 덮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 바로 하나님의 열심이 그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이 빛이 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3절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작은 기쁨이 아닙니다. 1년 농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농부의 환희,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모든 전리품을 나누는 군인의 폭발적인 기쁨입니다. 모든 억압의 '멍에와 채찍'이 완전히 꺾여버린(4절) 완전한 해방과 승리의 기쁨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깊은 밤에 이스라엘 유대광야 한 가운데 갔을때가 떠오릅니다. 암흑에 빠진 광야의 밤. 처음에는 어두움이 무섭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더 깊은 광야에 들어갈 수록 하늘을 보는 순간, 평소에는 도시 불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수만 개의 별들이 보석처럼 쏟아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빛과 열심이 모두 꺼졌을 때, 깊은 어둠 뿐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 비로소 진짜 하늘의 빛이 얼마나 찬란한지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빛'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계획이 실패하고, 우리의 열정이 소진되고, 우리의 힘이 모두 꺼져버린 그 절망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의 열심은 가장 밝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복음주의 구약학자 알렉 모티어의 말처럼, 이 빛은 단순한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친히 우리를 찾아오시는 사건인 것입니다.
3. 열심의 증거: 한 아기, 네 가지 이름 (6-7a절)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뜨거운 열심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까?
6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역설적인 선언을 합니다. 사9:6
Isaiah 9:6 NKRV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불타는 열심이, 온 세상을 구원할 그분의 계획이, 가장 연약하고 무력한 '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힘과 권력, 거대함으로 자신을 증명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작고 낮은 모습으로 당신의 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의 이름 속에,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지가 명확하게 담겨 있습니다.
첫째, 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Wonderful Counselor)'입니다.
'기묘자'라는 말의 원어 '펠레(פֶּלֶא)'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적, 경이'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단순히 좋은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과 계산을 뛰어넘는 기적적인 계획으로 우리 인생을 이끄시는 신적인 상담가이십니다. 내비게이션이 때로 이해할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지만 결국 최적의 길로 안내하듯,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생명과 평안으로 인도하는 가장 완벽하고 기묘한 계획입니다.
둘째,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입니다.
이 아기는 연약한 인간 영웅이 아니라,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어둠의 권세를 단번에 깨뜨리실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 자신입니다. 어린아이가 악몽을 꿀 때 부모가 곁에서 꼭 껴안아주면 평안을 되찾듯,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그분의 강력한 임재 자체로 우리 안의 모든 두려움과 불안, 죄의 권세를 압도하고 몰아내시는 분입니다.
셋째, 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과 관계는 조건적이고 유한합니다. 하지만 이 아기는 우리를 영원토록 변치 않는 사랑으로 돌보시는 아버지 같은 왕이십니다.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한번 자녀 삼으시고 영원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에는 만료 기간이 없습니다.
넷째, 그 이름은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입니다.
여기서 '평강', 즉 '샬롬'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온전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훌륭한 지휘자가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로 아름다운 교향곡을 만들듯,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깨어진 내면과 가정, 공동체를 '공평과 정의'라는 지휘봉으로 다스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시는 분입니다.
이 네 가지 이름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III. 결론: 하나님의 열심에 당신의 삶을 연결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각자의 '흑암' 속에서 열심을 내다 지쳐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열심이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는 뜨거운 열심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위대한 약속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이름으로 이 약속에 보증수표를 써주십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우리 다 함께 읽어볼까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아멘! 이 약속은 우리의 신실함이나 노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실패를 모르시는 하나님의 열심에 달려있기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열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키나(קִנְאָה)'입니다. 이 '키나'라는 단어에는 아주 놀라운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대로 '뜨거운 열정, 열의'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뜻은 바로 '질투'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내 사랑하는 대상을 다른 무언가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룩하고 맹렬한 '질투'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열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무언가를 이루려는 뜨거운 열정을 넘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질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어둠과 절망, 죄와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십니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열심'의 본질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자존심과 그분의 거룩한 질투가 걸린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 뜨겁고, 심지어 질투하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앞에,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도전하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뜨거운 하나님의 열심 앞에, 오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도전하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나의 지친 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열심'에 맡기십시오.
이번 한 주간, 당신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문제 하나를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문제를 더 이상 나의 열심으로 해결하려 애쓰지 말고,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이제 이 문제는 저의 열심이 아닌, 저를 향한 하나님의 열심에 맡깁니다." 조급한 내 열심의 엔진을 끄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더 강력한 엔진이 작동하도록 당신의 삶의 자리를 내어드리십시오.
둘째, 두려움 대신 '하나님의 열심'을 믿고 담대히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실패를 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 줄 알면서도 두려워서 망설였던 순종의 한 걸음을 이번 주에 내디뎌 보십시오. 상처 준 친구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 일, 새로운 봉사에 지원하는 일, 믿지 않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나의 완벽함이 아닌,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만족을 넘어, '하나님의 열심'에 동참하십시오.
하나님의 열심은 지금도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 열심에 동참하는 작은 실천을 시작해 보십시오. 힘들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공익적인 단체에 작은 금액이라도 후원하는 것, 공동체 안에서 이름 없는 자리를 섬기는 것. 우리의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위대한 열심과 만날 때,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열심은 소진되었을지라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은 결코 식지 않습니다. 그 열심이 오늘,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찾아오셨습니다. 그 뜨거운 열심의 품에 안겨 참된 쉼과 새로운 힘을 얻고, 그 열심에 동참하여 세상을 향한 빛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열심이 소진되어 어둠 속에 있는 저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의 힘이 아닌, 결코 식지 않는 주님의 열심을 의지하여 살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주님의 공평과 정의를 이루시는 그 뜨거운 열심에 동참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기묘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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