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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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353장, 352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출애굽 여정의 중반시기인, 시내산 직전인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을 때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많이 고생하고 원망하는데, 오늘 말씀에도 그런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혹시 물이 없어서 불편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영월에 살면서 그런 적이 있었어요.
영월이라는 지역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특별히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곳이 사면이 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겨울 날씨의 영향이 굉장히 컸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막 들어갔을 때, 겨울 방학이 되었는데 날씨가 –20도 가까이 떨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눈도 많이 오고 너무 추운 시간이 계속되니까, 집에 물이 나와야 하는데 샘 근처까지 얼어서 먹을 물도, 씻을 물도 당장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집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샘 근처에서 나오는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물이 없으니까 초창기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이웃 주민들과 함께 강으로 나가 얼음을 깨고, 거기에서 필요한 물을 사용해야 했어요. 그래서 이웃 주민분들과 함께 급하게 물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면서 눈을 치웠는데, 땅이 꽁꽁 얼어서 씻으려고 원주까지 나와야 했고,
물도 사러 나와야 했고, 빨래를 하려면 하루를 잡고 다녀와야 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물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말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어요. 애굽을 탈출하기는 했지만, 당장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을 여러 번 겪게 됩니다. 이건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서 생존에 관한 위기였어요.
이미 이전 15장에서, 마라의 쓴물 때문에 물을 마시지 못해 불만을 토로했다면, 오늘 말씀에 나오는 르비딤에서는 아예 물이 없어서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그런 불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다루시고 해결해나가시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르비딤
르비딤
1절은 보면 이스라엘 여정을 나타내주면서 설명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신광야를 떠나 그 길대로 가서 르비딤에 자막을 칩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여러 의미르 담고 있는데 특별히 ‘르비딤’이란 곳 이름의 뜻은 “휴식, 쉼, 원기 회복”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쉬면서 회복하는 지역인데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쉼은커녕, 마실 물조차 없는 몸과 마음이 가장 지치는 경험을 하게 되됩니다.
근데 하나님은 왜 이런 데로 인도하신 걸까요?
신 광야에서 르비딤까지 오는 길은 민수기 33장에 보면 하나님이 명령하신 여정이었어요.
즉, 이 여정은 백성들이 잘못 들어선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부러 인도하신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백성들을 르비딤,
즉 “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물 없는 곳으로 일부러 인도하신 걸까요?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단순히 지리적인 경로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광야는 자원을 의지할 수 없는 자리,
환경도, 경험도, 인간적인 계산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르비딤은 이름은 쉼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험되는 자리였습니다.
물이 없다는 현실 앞에서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믿음이 얼마나 얕은지를 드러내는 자리였어요.
반복되는 불평, 하나님을 시험
반복되는 불평, 하나님을 시험
2절에 보면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하지만 이건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원어를 보면 거의 싸움을 거는 듯한 어조입니다.
실제로 4절에 모세가 “조금 있으면 돌로 맞아 죽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잘 보면 장면이, 낯설지 않아요.
이미 마라(출 15장)에서도 쓴 물을 두고 불평했고, 신 광야(출 16장)에서는 배고프다고 원망했어요.
이쯤 되면 하나님도 지치실 법 한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또다시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5-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호렙산에 있는 반석 앞에 서라고 하시면서, 그 반석을 치면 물이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 앞을 지나서, 그들을 대표하는 장로들을 데리고 가셔요. 계속되는 불평과 이제는 협박처럼 들리는 백성들의 말을 들으시고도 그들을 버리시는게 아니라 이끄시며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나일강을 쳐서 피로 만들고, 홍해를 가른 그 지팡이를 잡고 가라고 하십니다.
특별히 이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데,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내가 이 지팡이를 통해 심판할 수도 있지만, 백성들을 살리는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반석을 치자, 물이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라운 은혜가 있었던 곳, 그 반석에서 생명이 솟아나는 기적이 있었던 그 장소에,
모세가 무슨 이름을 붙이냐면 7절에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맛사”와 “므리바”**라고 붙입니다.
맛사, 히브리어로 ‘시험’이라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은혜로 응답하신 그곳이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어마나 불평하고 시험했는지 기억하라고 지명의 이름을 나깁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생명을 공급하시고 해오셨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은혜를 주셨고, 우리 삶 속에 역사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를 상처로, 불평으로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셨고, 여전히 공급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시험 같았던 광야도, 다툼이 있는 하루하루의 시간도,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셨던 장소였던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실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늘 신실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다투고 시험하고 넘어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은혜를 주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오늘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
우리의 “맛사”와 “므리바”같은 불평의 자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로 다시 이름 붙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수아
여호수아
이렇게 르비딤에서 사건이 정리되는 거 같지만 아말렉이 갑자기 공격해 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성경은 처음으로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언급해요.
이게 너무 흥미로운 게,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계속 원망하고 싸우고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백성들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줬잖아요.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고 질문했어요(7절).
그런데 9절에서 여호수아가 조용히 등장해요.
그에 대한 설명도 없이, 정말 아무 말도 없이 모세의 명령을 받아 아말렉과 싸우러 나갑니다.
여러분,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의심할 때,
그 안에서도 말없이 믿음으로 움직이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에요.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역자들이었습니다. 급히 허리띠를 띠고 지팡이를 잡고 부풀지 않은 떡을 들고 나온 그들이, 어떻게 훈련된 전사들이었겠습니까? 그러니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절실한 상황에 제대로된 무기하나, 전술하나 없는 이러한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단지 “말씀에 따라”, “명령을 따라”, 싸움터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여호수아에 대한 말씀이 계속 등장하겠지만,
여호수아는 이미 용기와 신실함으로 지도자적 자질을 인정받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모세는 그에게 전투를 맡깁니다.
저희도 종종 이러잖아요.
“사람들이 다 불신앙적인데, 나 혼자 믿음으로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수아처럼,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살리십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언제나 다수의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에요.
진짜 전쟁
진짜 전쟁
이제 여호수아는 전쟁터로 나가고, 모세는 산으로 올라가죠.
11절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팡이를 손에 들고 기도하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라고 말하면서 그 다음절에 모세의 팔이 무거워지자, 아론과 훌이 양옆에서 그의 손을 붙들어 줍니다.
여기서 오늘 말씀이 말하고 싶은게 있는거에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싸웠듯, 이 전투의 승리도 보이지 않는 산 위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 모세가 하고 있는 기도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에요.
그 기도자체가 이미 전쟁 이에요
그리고 모세는 이미 이때 80여세가 넘은 할아버지였는데 지금 지팡이 들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다른 의미로 보면 참 연약한 노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은 연약한 자의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이 장면에서
지금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도님들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여호수아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이라면, 모세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아론과 훌은 기도자를 붙드는 사람이에요.
저희 모두가 각자의 자리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인데,
이 세 부류의 사람이 함께할 때, 믿음의 공동체는 아말렉 같은 세상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모세의 자리가, 여호수아의 자리가, 아론과 훌의 자리가 모두 귀했습니다.
교회는 함께 싸우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승리하는 공동체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같은 승리를 향해 나아갈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말렉의 전투에서 승리한 다음에 모세가 제단을 쌓습니다. 15절에보면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단을 쌓으며 약속을 붙들었던 것처럼,
이제 모세도 그 전쟁터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리는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단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죠.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를 건넌 후 모세는 노래를 불렀어요.
그 노래는 감격의 고백이었죠.
그런데 이번엔 제단을 쌓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제사를 위해 쌓은 최초의 단이에요.
제단은 ‘기억’과 ‘헌신’의 장소입니다.
찬양이 감정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라면,
단을 쌓는 것은 삶 전체를 드리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찬양하는 것에서 멈추는게 아니라 예배자의 삶을 나태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 전쟁이 자기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깃발 아래 있었기 때문에 승리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말렉과는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라는 이말씀은
이 전쟁은 단발이 아니라, 세대를 넘는 신앙의 전쟁이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 전쟁은 오늘만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자녀도, 우리의 손주들도 이 싸움의 후속 주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신앙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본 출애굽기 17장은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며 얼마나 자주 메마른 르비딤을 만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고, 예상치 못한 아말렉의 공격에 당황할 때가 우리 삶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르비딤에서조차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승리를 주시며, 그분의 이름을 새기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이 본문은 한 사람의 순종이, 한 사람의 기도가, 한 사람의 헌신이 공동체를 살리고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처럼 말없이 명령에 순종하고, 모세처럼 산 위에서 기도하며, 아론과 훌처럼 함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믿음의 공동체는 아말렉 같은 세상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이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도, 전쟁이 몰려오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 단은 찬양을 넘어서 삶의 헌신과 믿음의 기념비가 되고,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믿음의 흔적이 됩니다.
오늘도 여호와 닛시, 우리 깃발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각자의 르비딤에서 단을 쌓는 믿음의 순례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물이 없는 르비딤과 같은 인생의 자리를 지날 때에도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반석을 치셔서 생명의 물을 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불신과 원망의 자리에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용납하시고
기어이 은혜로 응답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믿음의 전쟁이 멈추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처럼 말씀에 따라 나아가게 하시고,
모세처럼 기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시며,
아론과 훌처럼 함께 손을 붙드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 단을 쌓게 하셔서
우리 가정마다, 교회마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이 세워지게 하시고,
그 깃발 아래에서 다음 세대가 믿음을 배우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이 시간, 육체의 연약함과 질병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몸이 아파 예배에 함께하지 못하는 성도님들,
치료 중에 있는 분들, 마음이 지치고 무너져 있는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치유의 손길로 찾아와 주시고
그들의 아픔 가운데도 주님의 임재와 평강이 넘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오니
우리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루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