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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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대

누가복음 10:38–42 NKSV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창세기 18장 1절에서 10절의 이야기에 환대의 이야기가 있다.
아주 무더운 대낮, 근동의 대낮은 너무도 더워서 더위가 집중되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브라함에 더운 시간에 상수리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데
세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얼른 인사를 하며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여기와서 좀 쉬고 가시라며 권한다.
그 더운날 아브라함은 즉시 빵을 굽고, 송아지를 잡고 순식간에 근사한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한다.
뿐만아니라 식사하는 동안에 곁에 서서 계속해서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대접을 받던 손님이 갑자기 아내 사라를 찾는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 다시 올 때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을 한다.
이 말을 숨어서 듣고 있던 사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왜 웃었을까. 이미 아브라함99세 사라는 89세가까이 되었다. 어떻게 그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고 있는 사라는 그 말을 듣고 비웃은 것이다.
아브라함의 극진한 환대로 말미암아 정말 사라는 가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 일이 환대의 전통이 되었다.
환대가 무엇인가?
환대는 타인을 맞이할 때 열린 마음으로 나의 소중한 생활의 영역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환대와 비슷한 말이 있는데 환영이다.
환영은 무엇인가? 오는 것에 대해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환영에는 다양한 기쁘게 맞이하는 행동들을 말한다.
환대와 환영은 다르다.
환대는 기쁘게 맞이 할 사람에 초점을 두어 자신의 소중한 자리로 초대를 하고 함께 한다.
그러나 환영은 기쁨 그 자체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환대하는 것의 대해 칭찬하셨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여인을 칭찬했다.
마태복음 25:40 NKSV
40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
여러분은 환대를 잘 하는 편인가 환영을 잘하는 편인가?
오늘 말씀에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을 집에 초대했다.
그러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각각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환대하는 것을 선택했다.
마르다는 맛있는 식탁을 통해 환대했고
마리아는 열심있는 청중이 되는 것으로 환대를 했다.
마르다의 환대에 문제가 있었다.
마르다가 환대를 하느라 부주해졌는데, 언니에게도 불평이 생겼지만 예수님께도 생겼다.
누가복음 10:40 NKSV
40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내버려 두는 것의 대해서 주님은 지금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합니까?
또하나는 눅10:41
누가복음 10:41 NKSV
41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많은 일을 히면서 많은 일들을 염려하느데, 많은 일들을 생각느라가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 언니는 어떻게 하고 있나?
누가복음 10:39 NKSV
39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은 사실 마르다의 환대하는 모습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환대를 해야 되는 주인공이 있는데도 불평을 환대 받을 사람에게 돌렸다.
환대받는 사람은 충분히 환대만 받아야 한다.
주님이 환대를 받아야 하는데 원망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이웃이나 다른 사람을 환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불편하게 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있도록 하는 것은 진정한 환대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환대하시는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신분과 우리의 미래를 완전히 바꿔놓으셨다.
심지어 왕같은 제사장이자 우리를 자녀 삼으시기 까지 하셨다.
이것이 진정한 환대이다.
환대는 누구를 환영하고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그 대상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저 잘 해야 된다는 염려때문에 대상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한국교회 모습에 마르다가 보인다.
한국교회가 섬겨야 될 주님을 잊어버린채 교회에서 온갖잔치와 프로그램으로 들떠 있다.
그리고 그 일의 대한 염려로 교회는 끊임없이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왠만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에배처소를 옮겼으면 아마 보통의 교회는 성전이전이니 교회당이전등의 이름으로
감사예배를 드린다며 온갖 인사들을 초청하고 돈을 들여 공연자들을 부른다.
결국에는 초대한 사람들로부터 헌금도 하게 한다.
마이크를 잡고 축하의 말이라도 한 사람에게는 거마비라며 돈도 다시 지급해 준다.
예배처소를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옮겼는지를 재껴 두고 그 일 하나만으로
온갖 이벤트를 벌인다.
변치 않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우리는 자리만 바꿨을 뿐이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의미가 생기거나 다른 의미 때문에도 아니다.
오직 주님 한분만 위해 예배하기위해 어떤 처소도 우리는 지금까지 장소에 의미두지 않고 예배드렸다.
주님께만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어버린채로 하나님을 섬기려하고 있다.
우리교회가 앞으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향해 “좋은 몫”을 택했다 라고 하신다.
그저 예수님께 집중하기로만 한 것을 칭찬했다.
오늘 우리도 모든 결정이나 모든 사항 앞에
주님께 집중하며 결정하고 뜻을 정하면 좋겠다.
주님이라면, 주님께 한다면, 주님을 위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결국 마르다는 모든 음식 준비가 끝난다음에 음식을 주님앞에 가지고 가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이 음식을 오로지 주님을 위해 만들었지…지금 내가 무슨일을 한 거지...
아차 싶었을 것이다.
오늘 이곳에서 이웃을 환대할 텐데, 씁쓸한 조건과 불편함으로 하지 말자.
교회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할 텐데 그 일을 하는 이유가 주님을 위해서라는 것을 잃지 말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환대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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