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감격에 빠져라_머리말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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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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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에 부치며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라
무기력하게 드려지는 예배에 가슴이 아파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예배의 현실에 함께 아파해 주었습니다. 바로 24년 전 출간되어 약 13만 부가 팔린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입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예배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증가하였습니다. 예배를 대신하여 은혜를 끼치려는 프로그램들이 제시되었지만 그럴수록 참된 이 예배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를 위해 이 예배는 진리와 성령 안에서 드려져야 합니다. 이 예배 안에서 동일한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성도들은 지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신앙적 무지로, 또 부분적으로는 영적인 무기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처음 출간된 책의 내용을 크게 변경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요즘 시대에 맞게 간결한 문장과 박진감 있는 필체로 다시 썼는데 이는 더 잘 읽히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디 이 책을 통하여 조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예배의 감격을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22년 1월 그리스도의 노예 김남준
책을 열며, 어떤 예배자
책을 열며, 어떤 예배자
어느 가족의 예배 이야기
어느 가족의 예배 이야기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1장 13절
“엄마, 아빠! 오늘은 예배 시간에 졸지 마. 나 창피하단 말이야. 알았지?” 주일 아침, 교회로 가면서 양쪽에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성가대의 송영이 끝나고 신앙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윗몸을 숙이고 빈자리를 찾아 간신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 예배가 시작된 지 벌써 5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주보에 적힌 별 표시를 따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독문을 읽은 후 지루하게 느껴지는 장로님의 대표 기도가 끝나자 성경 봉독이 있었습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했고 이윽고 설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설교였습니다. 귀에는 설교가 들렸으나 눈으로는 주보를 보고 있었습니다. 교회 소식을 낱낱이 읽고 틀린 글자를 잡아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설교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몸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간의 피로가 엄습하며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설교자의 어조가 상승할 때에는 졸음에 겨우 눈을 치켜 떴지만 무거운 추가 달린 듯 눈꺼풀은 이내 다시 감겼습니다. 설교를 듣는다기보다는 졸음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칭얼대며 졸랐습니다. “엄마, 아빠! 졸지 말고 빨리 요금 내고 집에 가자.” 이 짧은 예화는 오늘날의 예배 생활을 꼬집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웃었지만 곧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된 예배 정신을 잃은 시대
참된 예배 정신을 잃은 시대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심각합니다. 그것은 예배의 감격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에게 예배는 형식적 의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배우고자 하는 갈망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불붙는 설교도 사라졌습니다. 참회하는 예배자들의 눈물도 없습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감염병 사태로 이제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는 개념조차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목사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2시간 예배드리고 가는 것으로 신앙생활 잘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예배드린다고 해서 예수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주일 예배 시간이 얼마나 짧아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일 낮 예배, 언제나 정해진 시각에 시작해서 예정된 시각에 끝납니다. 예배가 끝나고 커다란 출입문이 열리면, 교인들은 앞 다투어 쏟아져 나옵니다. 예배당 돌계단에는 정오의 햇빛이 쏟아집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교인들에게서 세상을 변화시킬 영적 군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예배가 끝났지만 예배당 구석에 남아 회개하며 흐느끼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세상과 자신을 이기고자 결의에 찬 마음으로 예배당을 나서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오늘 깨달은 말씀대로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되뇌면서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예배당을 나와야 합니다. 그래도 세상을 이기며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을 보십시오. 해방감을 느끼며 예배를 마칩니다. “휴우, 드디어 예배가 끝났다!”
예배드릴 때는 그렇게 우울해 보이던 사람들이 끝날 때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습니다. 그들 중 태반은 예배 시간에 들은 설교의 성경 본문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예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왜 거기에 오시겠습니까?
필요한 영적 진단
필요한 영적 진단
신앙의 수준은 예배가 말해주고, 예배의 수준은 신자의 삶에 묶입니다. 신자는 예배를 능가하는 삶을 살 수 없고, 삶을 능가하는 예배도 드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힘을 잃어가는 예배에 답답해 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예배는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그것으로써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려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예배 속에 즐길 만한 요소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연극과 공연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예배를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처럼 만드는 것이죠. 이런 시도들이 예배 분위기를 바꿀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영적인 각성이 필요하던 시기에, 교회는 이런 식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얻는 구원, 자기 깨어짐이 없는 신앙생활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신앙에 대해 무엇을 느끼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혹시 하나님은 이런 교회들을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여기지 않으실까요?(계3:1)
영적 풍성함을 누렸던 때에 당신이 어떻게 예배드렸는지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과의 감격적인 만남이 예배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눈물 흘린 것이 언제였는지 반성해 보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늘날 예배 현장에 찾아온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사도들이 강단에 선다면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종교 개혁자들과 위대한 부흥의 시기에 살아 있는 예배를 드렸던 성도들이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린다면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요? 이제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할 때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의 영적 생활의 근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 그 예배는 진리와 성령 안에서 들려져야 합니다.
이 책에서 예배에 관해 논하는 것은 단지 한가로운 토론이나 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만나는 예배를 사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진지하게 읽음으로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거룩한 예배를 회복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그 소망은 제게 피어린 갈망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배의 회복 없이는 신앙의 회복도 교회의 회복도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영광은 예배의 영광입니다. 아아, 언제쯤이면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가득하게 될까요? 그날이 올 때까지 마음을 다해 기도합시다.
우리의 예배가 불꽃처럼 들려지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