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감격에 빠져라_제1장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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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 소년의 고백

하나님을 만나는 이 예배입니까?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장 23절
주일 예배 시간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주님은 내가 처한 큰 위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필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그러한 깨달음이 너무나 절실히 느껴져서 마음이 벅차 올랐습니다.
나는 크게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으신 주님과의 소중한 사귐 없이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 값비싼 진주를 손에 넣을 때까지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잠들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하여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 아파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여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아 하지만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 소원대로 나를 기꺼이 받아주시고 구원하시길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많은 성도들과 천사들로 둘러싸이신 채 당신의 나라에서 높임을 받으시고 모든 영광과 위엄으로 관 쓰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 이 모든 것들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말할 수 없으리만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분으로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 간증은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신자의 고백입니다.
1749년과 1750년 네덜란드의 호로니원에서 일어났던 영적 각성과 회심의 역사를 소개한 자료에서 인용한 것으로 당시 네덜란드에 있던 목사가 스코틀랜드의 동역자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간증을 한 사람은 11세도 채 안 된 어린이였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물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한 여인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녀는 다섯 번이나 결혼했지만 지금 같이 사는 사람도 진짜 남편이 아닌 여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우물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당신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곤고하게 살아가던 이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여인은 그런 물을 원했습니다. 이렇게 물을 길으러 오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갑자기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내 남편이 아니니 내 말이 참되도다.
여인은 예수님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심을 깨달았습니다.
요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서이다.
요한복음 4:19 NKRV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러고 나서 여인은 뜬금없이 이 예배 드리는 장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렇게 사연 많은 삶을 살아왔지만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물로 시작된 대화는 예배라는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과 예배의 관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23 NKRV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배가 있습니다.
예배는 그런 사랑과 경외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한 신자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그의 예배 생활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예배도 중요합니다. 개인 기도와 찬양, 성경 읽기, 묵상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공적 예배는 이것들과 구별되어 강조되었습니다.

예배 신앙의 중심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자신은 피조물임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며 절대적 의존을 고백합니다.
오직 그분을 경배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하는 일에 열심을 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하셨습니다(스 10:1, 느 8:8-9).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편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명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4–25 NKRV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말씀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공적 예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대가 어두울수록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함께 모여 예배했습니다.
소수라 할지라도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이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한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예배를 통해 영혼의 유익을 얻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할 본분을 자각했습니다. 믿음을 따라 살아갈 용기를 용기와 능력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공적 예배를 강조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탈락하고 난 후 잃어버린 첫 번째 복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범죄하기 전까지 그들에게는 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대면하는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숨어야 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이 드린 예배에 의해 판단받았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이 예배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이 예배가 받아들여진 사람은 하나님께 연락되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거절되었습니다.
창세기 4:4–5 NKRV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
노아의 홍수, 하나님은 온 땅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는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무지개를 그 약속의 증표로 주셨습니다(창 9:11-16). 언제였습니까?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와 예배드리던 때였습니다.
경건한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은 평생 예배를 드리며 살았습니다.
예배에서 계시와 믿음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제사는 율법의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절기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와 거룩한 헌신을 함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끊어져야 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무슨 일을 하길 기대하셨을까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진리를 외치는 설교자를 갖게 되었고, 복음이 울려 퍼진 곳에는 예배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들은 온갖 위협과 대적들로 둘러싸인 채 섬겼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거룩한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예배, 하나님께 대한 의무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클락스는 공적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공적 예배에서 죽은 자들이 성자 하나님과 당신의 종들의 음성을 들으며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공적 이 예배에서 성자는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들을 다시 보게 하시며, 말씀으로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사단을 쫓아내시며, 죄인들의 영혼 안에 있는 전 본성을 돌이키시사 예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되게 하신다.
공적 예배는 주님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시는 유일한 통상적 수단이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공적 예배의 의무가 소홀히 여겨지고 있습니다.
공적 예배에 대한 테마는 성도들을 개인 예배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예배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예배는 지겨운 것입니다.
은혜 생활에서 멀어지면 주일 예배에 결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의무를 태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맛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면 예배드리라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기도하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명령합니다. “너희는 예배하라, 너희는 기도하라”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겠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따르는 마땅한 의무를 다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배의 의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서약입니다. 은혜에서 멀어졌다는 것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태만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단어는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무를 행하면서 자신의 마음도 그 의무를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실한 것입니다. 마음이 따라오지 않으면 얼마든지 의무를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배교적인 무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잘 흔들립니까? 마음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겸손하게 은혜를 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형식이 무너지면 내용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용마저 없어져 버릴 수 있습니다. 율법적인 의무감만으로 예배에 참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예배할 마음이 부족해도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 용서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이는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마십시오.
공적 예배에 대해 느슨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다수를 따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영혼의 유익을 위해 공적 이 예배에 참여하기를 힘쓰십시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목회자의 이해를 구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의무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이 예배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신앙 고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은근히 부인하는 것이며, 자신이 구원받은 자임을 인정하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예배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하나님 경배하기를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 영적 유익을 위한 특권

공적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영적 유익을 위한 특권입니다.
주일을 지키도록 신앙의 법을 제정하셨습니다. 주일은 지친 육체가 쉼을 얻고 영원히 은혜로 채워지는 날입니다.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는 날입니다.
공적 예배를 통해 말씀을 깨닫고 권능을 받습니다.
오늘날 누룩처럼 번져가는 예배에 대한 테마를 보십시오.
사소한 이유로 주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배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등록한 교인들의 수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20년 후에는 텅 빈 교회당이 되지 않을까요?
거룩한 주일 사람들은 도대체 예배 드려야 할 그 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을 하느라고 그리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요?
예배 시간까지 아끼며 살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요?
그것들이 정말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일까요? 주의를 거룩히 지키십시오.
힘을 다해 공적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예배를 잘 드리겠노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평생 쫓기듯이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음을 들여 예배하십시오.
예배를 통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십시오.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할수록 영적으로 손해를 입을 것입니다.
영혼은 생기를 잃어버릴 것이며, 진리를 향한 마음의 갈망도 사라질 것입니다.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 은혜 충만하기를 사모할 수 없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기를 간구하십시오.
어떤 이유에서든 이 예배 참석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신앙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병든 것입니다.
그는 이미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신앙으로부터 물러나 있을 것입니다.
몸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을 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거짓 신자가 있는 것처럼 헛된 예배도 있습니다.
거짓 신앙을 가진 사람은 헛된 예배를 만족하지만,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헛된 예배에서 영적인 허기를 느낍니다.
헛된 예배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5:8–9 NKRV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사라질 때 예배는 차가운 형식이 됩니다.
예배는 그렇게 드려서는 안 됩니다. 단지 차가운 형식 속에서 자신의 종교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종교적인 보상 심리가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몸은 주일이 되면 교회에 올 수 있습니다.
한 주간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삶을 한 시간의 예배로 보상하려는 심리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배에서 하나님과 만나지 못해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한 일화가 기억납니다. 외식으로 소문난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교회당에서 기도하던 중이었습니다. 자기 주위에서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큰 소리로 말했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내가 나를 불렀느냐 그 음성을 듣고 성직자는 그만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형식적 이 예배를 되풀이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신성 모독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드리며 만족하는 사람보다는 이 예배를 못 드려서 회개하는 사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1:12 NKRV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예배는 습관적입니까? 성경적입니까? 만약 예배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예배하는 태도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불경건한 예배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예배에 부어질 복은 없을 것입니다.

예배, 하나님과의 만남

예배는 한 사건을 기대하며 이루어지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종교 의례가 아닙니다.
또한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되새기는 기념식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한 목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감화와 교재는 만남의 결과입니다. 예배의 열매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새롭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는 성도들의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 소원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끝납니다.
예배를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능력을 얻습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이 말씀에 감화를 받아 물같이 녹습니다.
모두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경건하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감격 있는 예배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물결이 파도와 같이 뛰놀고, 죄악의 탁류가 홍수처럼 엄몰할지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에서 만난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건지십니까? 흑암과 사망의 그늘 아래 앉아 권고와 쇠사슬에 메인 인간들을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삶과 죽음, 신앙과 불신앙의 갈림길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길을 보여주십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생을 바꾸어 놓습니다. 쓰레기 같은 죄인들을 변화시켜 거룩하신 하나님을 위해 살게 합니다.
진토와 같이 없어질 인간들을 바꾸사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살게 합니다.
사람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구원받은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행복이 있습니다.
참된 위로가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아는 지혜와 세상의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을 잃어버렸다면 주의하십시오.
당신의 영혼이 생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살펴보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영혼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예배 생활을 회복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감격 속에 사십시오.

형식적인 예배를 버리라.

언젠가 백화점 앞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개점되기 30분 전부터 문 앞에 사람들이 북적대 거리고 있었습니다.
백화점이 창립된 지 몇 해째 되는 기념일인데 선착순으로 특별한 사은품을 준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 그 선물을 받겠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은 가난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꼭 그것을 갖고 싶어서였습니다.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 새벽 시장으로 나서는 장사꾼들을 보십시오.
원하는 물건을 싼 값에 사기 위해 애를 씁니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예배에 대한 열심히 그만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우리의 열심이 세상 사람들이 금과 은을 구하려는 열심에 뒤져서야 되겠습니까?
세상에 대한 열망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감퇴시킵니다.
세상 사랑은 주님 사랑을 몰아내고, 죄는 마음의 은혜를 사라지게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관심거리가 무엇입니까? 자랑거리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신앙의 기쁨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감격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예배의 기쁨에서 떠나 있습니다.
그가 열망하는 것은 세상에 있으니 어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자 갈망하겠습니까?
습관적인 지각, 힘없이 드리는 찬양, 간절함이 없는 기도, 인색한 헌금, 예배보다는 예배 이후의 시간을 고려한 옷차림, 그리고 축도가 끝나자마자 앞다투어 교회당을 빠져나가는 행동들은 모두 마음 없이 드리는 예배의 단면입니다.
영적으로 소약해졌을 때 교회는 그런 식으로 예배했습니다.
그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일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예배가 주일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중심이 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한 주간을 예배한 힘으로 살고 예배하기 위해 사십시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예배의 감격을 누리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이러한 기도 없이 은혜로운 설교를 기대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설교자의 재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 예배 공동체

교회는 예배를 위하여 부름 받은 기관입니다.
자신이 예배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배하기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은 그들을 예배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영적 상태는 예배를 통해 드러납니다. 예배의 수준은 그 교회의 영적 상태를 말해줍니다.
한 교회의 예배는 신자들의 영적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그것만 못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나 그것을 뛰어넘는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가 드려질 때 교회는 세상의 단체와는 다른 신적인 기관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따라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모임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습니다.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거기서 겸손을 배웁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압니다.
거기에서 회개가 나옵니다. 뉘우침이 있고 돌이킴이 있습니다.
그때 삶의 소망을 오직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두게 됩니다.
이 모든 변화가 예배를 통해 일어납니다. 교회는 단지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매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모임입니다.
그러한 영적 교통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지체들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예배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깨닫는 곳입니다.
어둠 속에 살던 사람들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도 이런 예배 때문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남을 위해 자기를 내어줄 수 있게 되는 것도 하나님과의 만남 때문입니다.
죄인을 위해 애통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예배를 통해서 가능해집니다. 인간의 본성은 예배를 통해 바뀝니다.
예배가 영혼의 변화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가 병든 것입니다.

맺은 말

넓은 의미의 예배인 삶의 예배는 좁은 의미의 공적 예배를 통해 회복됩니다.
예배의 감격이 회복될 때 삶은 하나님께 바쳐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요한복음 4:23 NKRV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모든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곧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지금도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여 당신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예배의 감격 속에서 그들을 만나 주십니다. 세상의 물결을 거슬러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메마른 광야에서 시냇물 찾기에 목마른 사슴과 같이 하나님 만나기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되십시오.
시인의 애달픈 노래가 예배자인 당신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시편 42:1–2 NKRV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커다란 재앙으로 여기십시오.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겠노라고 다짐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으십시오. 간절한 심정으로 교회의 예배와 당신의 믿음을 위해 간구하십시오.
예배가 인생의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드리십시오.
예배가 인생의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드리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스터디 교재
제 1장 어느 소년의 고백
1. '어떤 예배자'를 읽고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2.한 교회의 예배상이 그 교희의 영적인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며, 한 개인의 예배의 현실이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것은 무엇 때문입니까?(26)
3. 요한복음 4장 23절의 앞뒤 문맥을 살펴보고 주님께서 어떤 맥락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26-27)
4. 환경의 어려움이나 개인의 영적 상황과는 상관없이 공적인 예배에 힘써서 참석해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이 우리의 의무가 되는 이유를 예배의 기원과 관련하여 나누어 보십시오.(27-29)
5.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인 예배를 강조하며, 예배드리는 것이 예배드리는 사람과 분리되지 않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
인 실례를 찾아서 기록해 보십시오.
1) 가인과 아벨. (29)
2) 노아와 그의 가족.(39)
3) 믿음의 족장들,(3-30)
4)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30)
5) 오순절 사건 이후.(30)
6.주일은 성도들에게 어떠한 날이 되어야 합니까?(32-33)
7.어떠한 사정으로도 예배 참석에 대한 태도를 게을리하거나 소홀히 할수없는이유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고 있습니까?(학1:5-6)(32-33)
8.예배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도 그에 대해 마음에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어떠한 마음을 반영하는 것입
니까?(37)
9.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항한 두려움과 참된 사랑이 사라질 때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차가운 형식으로 변하고 하였습니다.이러한 헛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마15:8-9, 사1:12-13) (38-39)
10.예배는 무엇입니까? (40)
11.예배와 관련하여, 교회가 이 세상의 다른 기관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41)
12. 세상에 대한 열심과 예배를 향한 열망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42-49)
13. 예배의 수준과 삶의 수준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서로의 신앙의 경험들을 나누어 보십시오.(44)
14.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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