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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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여름 MT 둘쨋날 아침예배

마태복음 5:1–3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 앉으시자 제자들이 나아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팔복을 말씀하신다. 누가의 평지설교에는 네 가지 복이 나오고 네 가지 화가 나온다. 마태는 여덟 개의 복을 말한다. 이것은 모두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헬라어 원어 성경에서는 먼저 복의 선언이 나오고 “복이 있나니” 다음에 그 복에 합당한 사람의 조건이나 특징이 나오고 “심령이 가난한 자” 그리고 그 복에 대한 설명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가 나온다. 헬라어는 복을 설명하는 접속사 “~때문이다”가 팔복에 다 나온다. 그래서 헬라어 성경대로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팔복의 특징은 첫 번째 복과 여덟 번째 복의 약속이 같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가 반복하여 나오는 점이다. 도입과 결론이 같은 것, 쉽게 말해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수미상관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인클루지오 형식이다. 이 구조를 통해서 팔복은 천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것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더 나아가 첫 번째 복과 여덟 번째 복은 시제가 현재인데 반하여 나머지 둘째부터 일곱 째 복은 전부 미래형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임해 있다. 그렇지만 또는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이중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왔으나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 “Already, but not yet”
첫째 복은 영으로 가난한 자가 받는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누가복음 6:20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하고 말한다. 누가는 반대로 부자에 대해서도 말한다. 누가복음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을 그냥 읽으면 오해하기 쉽다. 마치 가난한 자는 옹호하면서 부자는 비난받을 대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부자라고 해서, 물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는다면 이것은 불공평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다. 또한 마태와 누가가 말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구약에서 가난한 자는 보호 대상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시며 피난처가 되기도 하신다. 구약에서 가난한 자는 특별히 사회의 약자로서 고아,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뜻하기도 한다. 선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힘있는 사람을 비난하며 가난한 자를 옹호했다. 하지만 가난한 자가 다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자도 심판의 대상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다 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면서 악한 자도 있다.
누가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 어떤 부자가 있었다. 날마다 잔치를 베풀며 호화롭게 산다. 그러나 나사로는 거지이며 부자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로 겨우 살아간다. 그러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안긴다. 그렇게 그는 천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자는 죽어서 지옥에 가서 고통을 당한다. 부자가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 품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본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거지 나사로를 보내어 물 한 방울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거절한다. 누가복음 16:25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비유 역시 단순히 읽으면 가난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부자는 지옥으로 간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비유의 뒷부분은 가난한 자는 천국 그러나 부자는 지옥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말하고 있지 않다. 부자가 다시 아브라함에게 요청한다. 세상에 자기의 형제 다섯 명이 살고 있는데 거지 나사로를 보내어 이 지옥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것도 거절한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가 있다는 것이다. 모세와 선지자의 증언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증언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와 선지자의 말이 무엇인가? 구약 성경이다. 여기서 우리는 거지 나사로가 이 세상에 있을 때 모세와 선지자의 증언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모세와 선지자의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옥에 오게 된 것이다.
누가가 말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 이런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는 의지할 곳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해진다.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다. 시편 기자의 말을 들어보라. 시편 40:1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찾는다. 이것이 복이다. 이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부자는 그렇지 않다. 이 땅에서 누릴 것이 많고 돈을 의지한다. 돈이 그 사람의 견고한 성이 된다. 이런 사람에게 화가 임한다. 물론 부자이면서도 하나님을 잘 경외한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 욥, 다윗이 있다. 그러나 누가는 일반적으로 물질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부자에게 화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마태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으로 가난한 자’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이다. 영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 마태가 이렇게 말했을 때는 부자도 영이 가난할 수 있다. 또한 가난한 자도 영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영이 가난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이것은 현재형이다.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이다. 하나님 앞에서 영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이사야 61:1 NKRV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가난한 자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과도 관련이 있다. 이사야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말한다. 실제 예수의 의해 전파된 복음은 가난하고 소외되었던 지역, 갈릴리, 스불론 그리고 납달리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면 마음도 가난해진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복음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의지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 없으면 안되는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꿈사땅 되길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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