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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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수련회 어그로(귀신 이야기)
도입: 수련회 어그로(귀신 이야기)
여러분 더운데 귀신 이야기좀 해줄까요?
여러분 저 어릴 적에 저기 시골에 가면 아무도 다니지 않는 버려진 학교 건물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문에는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동상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도는 거예요. 또, 방마다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진짜인지 갈까? 말까? 하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남자친구들은 알죠? 이런 이야기 나오면 “가오”가 발동해서 “야, 갈래 말래?” “갈래 말래?” “갈래 말래?” 하면서 결국엔 밤에 학교에 간 거예요. 그런데 문을 “끼이익” 열려고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한 친구가 담을 펄쩍 뛰어 넘은 거예요. 근데 여러분!! 먼저 들어간 친구가 아무 말도 없는 거예요. “야 잘 갔어” “야! 무슨 일이야?” “대답좀 해”, 그래도 아무 말도 없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담을 폴짝 뛰어넘었더니!!
거기에 뭐가 있었을까요? 수련회 가서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수련회 꼭 오세요.
도입: 어이가 없네?
도입: 어이가 없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볼까요? 여러분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모든 퀘스트를 다 깨고, 최고의 능력치와 아이템을 다 갖췄어요. 그리고 마침내 최종 보상이 있는 ‘영원한 행복의 방’ 문 앞에 딱 도착한 거예요. 이제 저 문만 열기만 하면,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그 문은 손잡이가 없는 문이여서 손잡이를 가져와야 하는 문이었어요. 다행이 여러분은 손잡이 가지고 왔어요. 그래서 손잡이를 붙이고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손잡이가 툭 떨어져버리는 거예요. 세상에, 다른 손잡이를 가져온 거예요. 그래서 문을 열 수가 없는 상황인 거예요. 모든 준비가 다 되었는데, 고작 손잡이 하나 잘못 가져와서 최종 보상을 못 얻는 이 상황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어이가 없네?”
오늘 성경에 바로 이러한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청년이 등장해요.
이 청년은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는 부자였고, 높은 지위를 가졌고, 젊었고, 심지어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이었어요. 이정도면 이 청년보다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해요. 이 모든 것을 가진 청년이 왜 예수님께 달려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생명, 진짜 행복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겉으로는 모든 축복을 다 받은 것 같았지만, 그의 영혼은 텅 비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진짜로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기 위해 예수님께 달려왔던 거예요.
그의 절박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청년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 누리는 최고의 삶을 원한 거예요. 곧 “참된 행복의 삶”을 살고 싶은 거예요.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의 삶, 생명의 삶에 목말라 있었던 거였어요.
전개1: 문 앞까지 완벽하게 도달한 청년
전개1: 문 앞까지 완벽하게 도달한 청년
하지만 그는 그 행복의 주소를 잘못 찾고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노력과 행위로 문 앞까지는 성공적으로 도달했지만, 문을 여는 방법 역시 또 다른 ‘행위’나 ‘업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뭘 더 해야 이 문을 열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거에요.
전개2: 예수님의 ‘어이없는’ 처방전
전개2: 예수님의 ‘어이없는’ 처방전
그때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면서 처방전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처방전이 우리가 보기에도, ‘어이없는’ 처방을 내려주시는 거예요.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라들에게 나눠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거에요. “야, 너가 행복의 문을 여는 문고리라고 착각하고 꽉 쥐고 있는 그 ‘재물’을 버려. 그걸로는 문을 열 수 없어. 그거 내려놓고 내 손 잡아라”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문을 여는 방법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 인생의 핸들을 예수님께 맡기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적용: 나의 ‘어이없는’ 고집은 무엇인가?
적용: 나의 ‘어이없는’ 고집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청년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똑같이 사랑의 눈으로 물어보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네 손에 그렇게 꽉 쥐고 있는 그것은 무엇이니?”
여러분, 여러분을 문 앞에서 멈추게 하는 ‘어이없는’ 고집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놓지 못해서, 문고리를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나의 ‘재물’은 무엇인가요?
어떤 친구에게는 '성적'일 수 있습니다. '이 성적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하는 마음이요. 또 어떤 친구에게는 '인기'일 수 있죠.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이 하나님보다 더 클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스마트폰'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내세울 것 없는 나의 마지막 자존심, '교만한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려놓고, 내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결론: 가장 어이없는 선택, 가장 위대한 선택
결론: 가장 어이없는 선택, 가장 위대한 선택
하지만, 결국 청년은 자신이 꽉 쥐고 있던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도 여러분 손에 있는 것을 꽉 쥐고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은 그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지켰지만, 진짜 행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것을 선택한 길의 끝입니다. 겉으로는 풍족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아무리 해도 충만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십니다. 세상이 보기엔 어이없어 보이는 길,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내려놓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약속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그로 인해 얻는 영원한 기쁨, 영원한 안식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부자 청년이 걸어갔던 슬픔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 초대하시는 기쁨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손에 꽉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그 손으로 예수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생명과 행복의 문을 열고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