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위한 조용한 혁명가 2025 0730 사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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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54장 주를 앙모하는 자 /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공동체성경읽기 이사야 39-42장
Isaiah 42:1–9 NKRV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설교문: 상한 갈대를 위한 혁명가

I. 서론: 세상이 원하는 영웅,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이 설교의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이사야서를 1-39장과 40장 이후로 나누어 봅니다. 왜냐하면 39장과 40장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메시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입니다. 39장까지의 주된 배경이 '앗수르'라는 강대국의 위협이었다면, 40장부터는 시간이 150년 이상 훌쩍 뛰어넘어, 이미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바로 그 39장은 제1이사야의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히스기야 왕의 교만 때문에, 이사야는 "보라 날이 이르리니...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사39:6) 라는 끔찍한 예언을 합니다. 이것은 한 나라에 내려진 사형선고와도 같았습니다. 모든 희망이 끊어진,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40장이 열리면서 하늘로부터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는 천둥과 같은 음성이 들려옵니다. 심판에 대한 경고의 시대는 끝나고, 절망의 한복판에 있는 백성을 향한 위로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41장에서는 그 위로가 더욱 구체적인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사41:10)고 약속하십니다.
Isaiah 41:10 NKRV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절망의 선포(39장)에서 위로의 시작(40장)으로, 그리고 굳센 격려(41장)로 이어지는 이 장엄한 약속 앞에서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강력한 영웅을 보내실까? 저 막강한 바벨론을 부술 위대한 왕은 누구일까?'
그런데 바로 그 기대의 정점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예상을 뒤엎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영웅을 소개하십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나의 종'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로 일하시는 이 조용한 혁명가의 모습은 어떠하며, 그분이 오늘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에게 어떤 깊은 위로와 희망이 되시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조용한 혁명가의 세 가지 특징

1. 그는 하나님이 붙드시는 종이다 (1절)
첫째로, 이 영웅은 하나님이 친히 붙드시는 종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이 영웅은 스스로 높아진 자가 아닙니다. 그의 모든 권위와 능력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붙드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수백 년 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이사야가 예언한 '종'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성경 스스로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왜 위로가 될까요? 일본에는 '킨츠기(金継ぎ)'라는 아름다운 전통 예술이 있습니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그 깨진 틈을 옻칠과 금가루로 정성껏 메워서 오히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기법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깨지고 흠집 난 그릇은 가치가 없지만, 킨츠기 장인의 손길 안에서 그 상처는 오히려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무늬가 됩니다.
우리의 가치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깨지고 상처 난 모습을 보고 가치가 없다고, 쓸모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은 그 상처마저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라는 금가루로 메우셔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킨츠기는 이 비유를 한 단계 더 깊은 차원으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다른 새로운 그릇으로 '대체'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진 '바로 그 그릇' 자체를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실패와 상처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시고, 그 깨어진 경험 위에 당신의 은혜를 덧입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창조하십니다. 우리의 과거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재료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 남은 상처와 실패의 흔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회복된 상처는 더 이상 수치와 고통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이렇게 연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이렇게 붙드셨다"고 증언하는 영광스러운 '간증의 흉터'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그대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상처는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는 통로가 됩니다. 상처가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그러한 가운데에도 나를 살려내신 주님이, 나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치는 나의 온전함에 있지 않습니다. 나를 붙드시고 "너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습니다.
2. 그는 세상을 거스르는 방식으로 일한다 (2-3a절)
둘째로, 이 영웅은 세상을 완전히 거스르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2절은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자기를 PR하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주목받는다고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종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일합니다. 그의 능력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의 절정이 3절에 나타납니다. "상한 갈대(קָנֶה רָצוּץ)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פִּשְׁתָּה כֵהָה)을 끄지 아니하고..."
상한 갈대. 갈대는 원래 흔하고 가치 없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상처 입고 금이 간' 상태입니다. 곧 부러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는 존재. 이는 경쟁에서 낙오하고, 관계에 실패하고, 깊은 상처로 신음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꺼져가는 등불. 등불의 심지가 다 타들어가 빛과 열을 거의 다 잃고, 매캐한 연기만 내뿜는 상태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영적으로, 감정적으로 소진(burn-out)된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상한 갈대를 어떻게 합니까? 가차 없이 꺾어버립니다. 꺼져가는 등불은 어떻게 합니까? 쓸모없다며 그 연기마저도 귀찮아하며 꺼버립니다.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연약한 자들을 쉽게 내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입니다. 숙련된 정원사가 줄기가 살짝 꺾인 식물을 보고 바로 뽑아버리지 않고, 오히려 작은 부목을 대주고 조심스럽게 끈으로 묶어 바람을 막아주는 것처럼. 캠핑의 마지막 밤, 마지막 남은 불씨 하나를 두 손으로 감싸 바람을 막아주고, 아주 조심스럽게 입김을 불어넣어 살려내려 애쓰는 것처럼.
그분은 우리 영혼의 정원사이자, 우리 마음의 불씨를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에, 우리를 부수지 않고 오히려 더 부드럽게, 더 조심스럽게 다루시며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우리 주님의 위로입니다.
3.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세운다 (3b-4절)
마지막으로, 이 영웅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정의를 세웁니다. 3절 하반절과 4절을 보십시오. 사42:3-4
Isaiah 42:3–4 NKRV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연약한 자를 꺾지 않으시는 그분의 부드러움은 결코 나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강하고 지치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는 결코 쇠하거나 낙담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이 모습을 묵상할 때마다 등대가 떠오릅니다. 등대는 거친 폭풍우가 몰아친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조용하지만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빛을 비춥니다. 그 조용하고 꾸준한 빛이 수많은 배들을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고, 어두운 바다에 질서(정의)를 세웁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분의 부드러움은 결코 포기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시려는 그분의 계획은, 등대의 빛처럼 결코 쇠하거나 낙담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더디고 조용해 보여도, 그분의 신실한 빛은 마침내 모든 어둠을 이기고 우리를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III. 결론: 상한 갈대를 위한 혁명에 동참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강해지라고, 목소리를 높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영웅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소리치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 같은 우리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 같은 우리를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으로 마침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실 가장 강인한 혁명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부드럽지만 강인한 종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십니까? 사도 바울은 훗날 이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고, 벅찬 감격 속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 다 함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며 읽어볼까요?
Romans 8:38–39 NKRV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그 섬세한 사랑이, 동시에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사랑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연약하게 느껴져도, 당신이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여겨도, 당신을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결코,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 시간 두 가지를 결단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첫째로, 이 자리에 혹시 스스로를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등불'처럼 여기는 분이 계십니까? 더 이상 강한 척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을 꺾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당신을 그분의 사랑에서 빼앗아 갈 수 없음을 믿으십시오. 상한 심령을 위로하시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우리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둘째로, 우리는 이 조용한 혁명가의 제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 주변의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방식처럼 효율의 이름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꺾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번 한 주, 당신의 가정과 직장, 공동체 안에서 가장 연약한 한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꺾는 대신 세워주는 '작은 예수'가 되어주십시오. 그를 향한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당신의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위대한 혁명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꺾지 않으시고,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의 강함이 아닌 주님의 부드러움을 배우게 하시고, 우리 또한 상처 입은 이들을 회복시키는 주님의 조용한 혁명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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