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정경
Notes
Transcript
책과 교과서
책과 교과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만화책, 소설책 등등 저희 집안에 나름 큰 책장을 꽉 채울 정도로 책이 많았는데, 물론 제가 만화책을 많이 좋아하기도 했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 라는 소설가의 개미, 라고 하는 소설이나 소설가 이문열 씨가 쓴 삼국지 같은 책들은 최소한 10번도 넘게 똑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 정도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저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수업을 이해하는 게 조금더 빨랐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 제가 천재인줄 알았습니다. 다른 애들은 선생님이 잘 가르치려고 해도 이해를 못하는데, 저는 “왜 저렇게 쉬운걸 이해를 못하지?”하면서 쉽다고 초등학생 동안은 그냥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면서 지냈습니다.
중학교를 들어가서도 집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는 안하고 하라고하는 숙제만 대충 했었고, 교과서로 공부하는건 너무 싫어서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면 전교생 200명 중에 70등 정도 했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나도 안한 것 치고는 성적이 잘 나왔지만 집에서는 부모님께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번은 교과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지도 열심히 풀어서 시험 전에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바로 전 시험에 70등이었다가 전교 10등까지는 올라가더라구요. 그때 깨달은게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성적을 올리는건 교과서와 학습지구나, 공부만 하면 성적이 올라가는 구나”라고 깨닫게 되서 “나중에 필요할 때 해야지”하고 또 공부를 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아무리 세상에 책이 많이 있고 그 책들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려면 교과서와 학습지로 공부를 해야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마치 교과서와 같은 책을 통해서 그렇게 될 수가 있는데요, 바로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등장하는 성경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약 20주 동안 진행했던 예언자들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오늘부터는 성경과 오해라고 하는 제목으로 새로운 말씀 시리즈를 준비했는데요, 그 첫번째 단추로 다름아닌 성경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금더 깊게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경
성경
여러분 성경은 몇 권이 있을까요? 저희는 성경이 66권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여러분 성경은 이 세상에 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성경이라고 하는 말은 성스러울 성(聖)자에 지날 경(經)자를 쓰는데요, 그래서 팔만대장경 할 때에 경 자가 바로 성경의 경자를 쓰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 사람들이 성스럽다고 여기는 책과 글귀는 다 “성경”입니다. 불교에는 팔만대장경이 있고, 유교에는 사서오경이 있고, 이슬람에는 코란을 성경으로 여기고 있죠.
“아니 어떻게 불경과 이슬람 경전이 성경이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당연히 불경과 코란과 사서오경 같은 책들을 저희가 성스럽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그렇습니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능히 저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불경은 저희에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하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경일 수 있어도, 저희들에게는 성경이 아닌겁니다.
그럼 우리가 읽는 “66권의 성경”은 대체 뭘까요? 구약과 신약을 합쳐서 66권으로 되어 있는 성경은 저희가 전통적으로 신앙적으로 “이것이 우리의 성경입니다”하고 정한 “정경”이라고 부릅니다. 따라해볼까요? “정경” “정경”
저희가 지금 읽는 신구약 66권의 정경은, 어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게 아니라, 누군가가 썼고, 누군가가 읽고 성스럽다고 여겼고, 누군가는 “이것을 우리의 성경으로 합시다”하고 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판본
성경의 여러 판본
그럼 먼저 성경이 66권이 된 지가 언제인지 살펴볼까요?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읽고 듣고 심지어 손으로 쓰기도 하는 성경이 66권이 된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식적인 문서로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66권을 “정경”으로 합니다, 라고 정한 것은 4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17세기 중반에 아직 장로교가 세워지기도 전인데요, 영국 국교회 내부에 있는 장로파 사람들이 “영국 국교회의 39개 신조는 불충분하다!”라고 본인들이 몸담은 교회의 교리에 불만을 품고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신학자들을 소집합니다. 그렇게 1643년부터 1647년까지 4년간 기나긴 회의를 통해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게 되는데요, 이것을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라고 부릅니다.
그 내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성경, 혹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는 지금 신구약에 있는 다음과 같은 모든 책이 포함된다.”
그 이후에 나오는 성경이 바로 오늘날 저희가 읽고 있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66권의 성경이었습니다.
그럼 무려 예수님 시대로부터 1000년이 넘게 지나기까지 대체 무슨 성경을 읽고 있었길래 17세기에 와서야 성경이 66권이라는 언급이 있었던 것일까요?
70인역
70인역
먼저 성경에는 단 한권도 원본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신구약을 다 통틀어서도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본의 사본의 사본의 사본 정도에요. 특히 구약 성경의 경우는 워낙의 옛날에 쓰여진 글이다 보니까 아주 오랜 기간동안 여러 나라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서 여러가지 언어로 번역되어 왔습니다.
그 중에서 교회에서 읽는 구약 성경이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70인역이라고 불리는 헬라어 성경이고, 하나는 마소라 본문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어 성경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등장하는 것이 바로 헬라어 성경인 70인역 성경인데요, 70인역 성경은 아무리 늦어도 기원후 1세기에 완성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번역본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사본은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적힌 조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1세기에 살았던 요세푸스 라고 하는 로마의 유대인 역사가가 70인역을 거의 동일하게 인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지어 신약성경에서도 이 70인역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브리서에서 이 본문은 시편 40:6-8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요, 이것이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에 차이가 있습니다.
θυσίαν καὶ προσφορὰν οὐκ ἠθέλησας,
σῶμα δὲ κατηρτίσω μοι·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내게 한 몸을 준비하셨습니다.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Chapter 40
7 זֶ֤בַח וּמִנְחָ֨ה׀ לֹֽא־חָפַ֗צְתָּ
אָ֭זְנַיִם כָּרִ֣יתָ לִּ֑י
주께서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내 귀를 여셨나이다
명백하게 히브리서 10장 5절 말씀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을 인용했다는 뜻이죠.
그래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특히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는 이 70인역을 주된 기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구약이 46권, 신약 27권의 총 73권을 정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도표가 가톨릭 교회에서 수용하고 있는 외경의 목록들입니다. 처음 들어보시거나 교회에서 자주 듣기 어려운 성경의 이름들이죠? 종교개혁 이후에 생겨난 개신교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이름들일 겁니다.
마소라 본문
마소라 본문
여기서 이 성경들, 저희는 정경 바깥에 있는 성경이라고 해서 외경이라고 부르는데, 왜 이 외경들은 오늘날 저희의 성경에 들어가있지 않은 걸까요?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구약 성경의 권위를 헬라어 성경인 70인역이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인 마소라 본문에 두고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히브리어 성경인 마소라 본문이라고 불리는 것인데요, 종교개혁가들은 헬레니즘 문화,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받았을 수도 있는 70인역 성경보다, 히브리어로 적힌 구약의 성경인 이 마소라 본문을 더욱 신뢰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마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외경에 적인 제목을 적은 것인데요. “외경: 이 책들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지는 않지만, 읽기에 유익하고 가치가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때는 외경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성경과 동등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정경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지만, 읽을 가치는 있다 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아까 말씀드린대로 영국 국교회 내부에 장로파 사람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통해 위경을 완전히 가치가 없는 책으로 정해버렸습니다.
“3. 일반적으로 ‘외경’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은 신적 영감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의 정경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아무 권위가 없고, 또한 다른 인간적인 저작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사용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8.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 성경과, 헬라어로 되어 있는 신약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직접 영감되었다.”
바로 이 두 구절들로 인해서 장로교에서는 마소라 본문을 기준으로 하는 66권의 성경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신앙고백 하나로 완전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그 뒤로도 많은 성경의 번역본들이 외경을 포함하냐 마냐로 인해서 논쟁도 잇따랐고, 심지어는 분열도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영국과 미국등 영어권에서는 오늘날까지 나름 권위를 가지고 있는 번역본이 바로 킹 제임스 성경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원래 외경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19세기 말, 1885년에 공식적으로 외경을 지우게 되면서 오늘날 아주 많은 개신교회들이 외경이 사라진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해사본
사해사본
여기까지 저희가 왜 성경이 66권으로 읽고 있는지에 대해서, 주로 외경의 여부를 가지고 아주 간략하게 역사를 살펴보았는데요, 외경이 헬라어 성경으로 쓰여졌고, 히브리어 성경에는 없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이것을 뺀 성경을 읽어왔지만, 그것 아십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마소라 본문은 기원후 10세기에 쓰여진 것들, 아무리 빨리 잡아야 기원후 900 몇년 정도에 쓰여진 것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70인역 성경보다도 1000년 뒤에나 완성된 책인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야, 히브리어 성경 원본 같은게 진짜 있긴 한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대략 80년 전에 아주 골때리는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1947년에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에 있는 한 마을에서 길 잃은 염소를 찾아다니던 젊은 목자가 바다 근처에 있는 동굴에다가 돌멩이를 하나 던졌습니다. 근데 거기서 무슨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 거예요. 가보니 가죽과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들어있던 도자기 항아리를 깨뜨린 것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해 사본입니다.
아까전에 저희가 읽는 성경이 마소라 본문이라는 히브리어 성경을 기준으로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70인역보다도 한참 후대의 사본인데, 이 사해사본은 무려 2200년전, 기원전3세기경부터 쓰여진 실물 사본입니다. 이 사해사본이 신기하게 마소라 사본과 1000년이나 떨어져있는 사본인데, 사해사본의 이사야서 두루마리가 마소라 본문과 거의 95%이상 일치합니다. 나머지 5%도 그냥 철자가 틀리거나 단어 순서만 바뀐 것이지 내용상으로는 거의 변함이 없었던 거예요. 유대인들이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거의 변함없이 똑같은 사본들을 써온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저희는 고작 100년도 안된 세월 동안 개역한글, 개역개정, 새번역까지 다양한 번역을 가지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1000년 가까이 거의 변함없이 똑같은 사본들을 써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저희들이 여지껏 제외해버렸던 외경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집회서, 토빗기 등등 교회에서는 들어볼 일도 없는 성경들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기 전부터 기록된 이 사해사본에 기록되어있었습니다. 그럼 저희는 대체 이 외경을 포함시켜야할까요? 아니면 지금까지대로 66권의 성경만을 읽어야할까요? 저희가 지금 대한성서공회가 발표한 개역개정을 읽어왔는데, 대한성서공회가 가톨릭이랑 같이 번역한 공동번역에는 외경이 포함되어있거든요? 그럼 그 공동번역을 읽어야할까요?
성경=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디모데후서 3:15-17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로 아주 유명한 본문입니다. 특히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말씀은 성경이 사람이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런데 이 말씀을 너무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이해하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바탕으로 성경을 쓴 저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서,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성경을 썼기 때문에 성경이 문자적으로도 아주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 토씨 하나도 바뀔 것이 없고 그대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해”해왔습니다.
그 이유로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근거해서도 나오는데요,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경의 모든 예언이 사람의 뜻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성령의 감동, 하나님의 영감에 집중하지만, 여기서 저희가 놓치는 부분은 “하나님께 받아서 사람들이 말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슴드리면 성경 말씀이 등장하게된 가장 근원에는 하나님이 계시지만, 정말로 그것을 쓴 것은 사람들이 받아서 썼다는 것입니다.
교육
교육
본문말씀 16절로 다시 돌아와서 읽어보면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성경은 아무런 목적없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바른 교육”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 성경이라는 거예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은 그 첫 시작에 왜 누가복음을 썼는지에 대해서 그 목적을 적고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나타난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에 대해서 맨 처음에 본 사람들, 그것을 전한 사람들, 또 그것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그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들었다는거예요.
그리고 누가는 어떻습니까? 그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이 자세히 역사를 살펴보고 공부해보고서, “데오빌로 각하가 알고 있는 것을 더 잘 알게 하려고” 썼다.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 썼다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에도 대놓고 “이건 하나님께 받은게 아니라 그냥 내가 말하는 것이다”라는 내용도 있어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따로 하나님께 받은 계명은 없지만 처녀와 과부에 대해서 “내가 의견을 말한다” “나의 의견으로 너희에게 교훈을 전한다”라고 해서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은 우리에게도
성경의 하나님의 감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들도 꼭 설교 단상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심방을 할 때나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좋다, 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저희 목사님도 “에이~ 집사님 권사님, 나는 그건 아닌 것 같애. 이렇게 하는게 맞잖아요 하하하하 에? 에?”하시잖아요? 또한 저희도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이 있고, 찬양 중에 받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말슴을 읽는 중에 깨달아지는 삶의 교훈이 있는 것처럼 성경을 쓴 사람들이 받은 하나님의 감동은 오늘날의 우리도 충분히 받고 있는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가 완벽한 사람입니까? 살면서 단 한번도 철자를 틀린 적이 없는 사람입니까?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하는 등 죄를 짓지 않는 사람입니까? 성경을 쓴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오류가 있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고, 틀린 말씀을 적어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성경을 쓴 사람들은 비록 부족하고 비록 연약하고 비록 죄인지만,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온전해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마치 예언자들이 끓어오르는 하나님의 정념을 마주했던 것 같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좀더 바른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써내려갔습니다.
정경은 하나님 말씀의 교과서입니다
정경은 하나님 말씀의 교과서입니다
오늘날 저희가 66권의 성경을 우리들의 성경이라고 정한 이유, “정경”으로 삼은 이유는 바로 이 바른 신앙, 바른 교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되는 말슴,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는 말씀의 기준을 삼은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기준이 없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라고 다 여기저기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중에 가짜도 있고 하나님의 감동이 없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니, 잘못된 길에 빠지지 말자고 정한 교과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나아가게 하는 올바른 통로, 즉 하나님 말씀의 교과서로 삼은 것입니다. 마치 교과서를 안읽고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도 어느정도 성적이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외경으로도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어요. 심지어 저희는 성경이 아니라 삶 가운데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하는 신앙 간증을 통해서도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도 신앙이 성숙해질 수 있고, 저는 심지어 훈련소에서 총이 터져서 신앙이 성숙해지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답을 잘 맞춰야 성적을 받는 시험 점수를 잘받으려면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것처럼,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위한 오늘날 우리의 교과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정경 안에 담겨있습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날 저희가 읽는 66권의 성경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하는 말씀일까? 무엇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일까? 무엇이 올바르게 신앙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말씀의 교과서일까?”하는 고민의 결과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감동이 있고, 그 감동을 받아서 교훈의 말씀을 적어내려간 저자들이 있고, 이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있고, “함께 이것을 말씀으로 읽자고 한” 이들이 있기에 오늘날의 정경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저희가 기도하는 중에도 말씀하시고, 찬양하는 중에도 말씀하시고, 삶 가운데 겪는 경험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인가 고민될 때에 그 기준을 삼기 위해서 오늘날의 정경이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 썼기에 부족한 점도 있지만,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읽는 저희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하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저희의 신앙을 성숙시키시고 가르치시기 위해서 주신 정경을 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으며, 또한 정경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춰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