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하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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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64장
마가복음 9:41-50
우리가 교회가 다르다고 해서, 교단이 다르다고 해서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자들과는 언제나 연합하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는 일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세계 교회는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분열의 영이 있다고도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남북한이 갈라지고, 우리 장로교단도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또한 용서하며 함께 가는 일을 모색해야 합니다. 서로를 향해서는 물 한잔과 같은 친절과 열린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친절과 섬김은 나 자신에게로 상이 돌아옵니다.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향해서는 서로에게 물 한 잔 주는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41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 한잔을 베푸는 대상은 믿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같은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서로의 길은 다를 수 있지만 예수를 믿는 과정과 방식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각자 다르고 달란트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그들을 위해 물 한잔 주는 것과 같은 친절과 자비를 행했을 때 그 상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 우리는 같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예의와 호의와 친절은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 일이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자 분부하신 일입니다.
우리에게 칭찬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42절에서부터는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굉장히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라고 하십니다.
‘실족’이라는 단어는 σκανδαλίζω 라고 해서요. 넘어뜨리다, 범죄하게 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돌이킬 수 없고 떨어져 나가는 개념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누군가를 발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죄를 짓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은 범위가 협소합니다. 이 단어는 어떤 결과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려 넘어지게 하다’나 ‘~의 타락을 일으키다’와 같은 의미가 적절합니다. 누군가를 걸려 넘어지게 하다. 누군가의 타락을 일으키다. 이런 의미가 적절하겠습니다. ‘실족’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만 조금 더 강한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타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신앙이 주저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먼저 천국 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영혼을 죄짓게 하지 말고, 한 영혼이 넘어지게 하지 말고, 한 영혼이 타락하도록 하지 말고 먼저 죽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개인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잘라버리는게 낫다고 하십니다. 내 발이 죄짓는 곳으로 자꾸 가면 못가도록 발을 못 쓰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팔 다리와 눈 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굉장히 강한 말씀인데요. 이것은 한 영혼의 소중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할 바에는 먼저 천국에 가라는 말씀입니다.
48절에 ‘거기에서는’이 나오는데요. 이것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앞에 지옥이 가장 가까이 있으니 지옥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맨 마지막절에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나옵니다. Isaiah66:24
Isaiah 66:24 DKV
24 “그들이 나가서 나를 거역하던 사람들의 시체를 볼 것이다. 그들을 갉아 먹는 지렁이는 죽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태우는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역겨워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맨 마지막 말씀을 인용하여서 그 지옥에 대한 묘사를 다시 말씀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자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니 “서로 화목하라”라고 50절 끝에 말씀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자, 걸려 넘어지게 하는자는 지옥에 갈 것이니 실족하게 하지 말고, 타락하게 하지 말고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소금이라는 단어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49절에서는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 지내던 방식을 말합니다. 레위기 2:13에 보면요.
“네가 바치는 모든 곡식제물에는 소금을 넣어야 한다. 네가 바치는 곡식제물에는 네 하나님과 언약을 세울 때에 넣는 그 소금을 빼놓지 말아라. 네가 바치는 모든 제물에는 소금을 넣도록 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에스겔 43:24에 보면요. “네가 그것들을 주 앞에 바칠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짐승들 위에 소금을 뿌려서, 나 주에게 번제물로 바치게 하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실족하게 하면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고, 지옥의 불에 무서움을 말씀하시면서 그 불과 함께 제물을 드릴 때 소금을 치고 소금에 절이는 것과 같은 제사의 방식을 말씀하십니다. 당시 구약의 제사 방식과 제물을 드릴 때 사용하던 소금을 치는 방식을 이야기하십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던 말씀을 하시면서 불에 소금 쳐져서 드려지는 사람을 희셍제물로 이어지게 만드십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마지막 50절에서 감자기 소금은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소금이 되어서 서로 화목하라고 결론을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실족하게 하면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고 그 지옥 불과 소금이 쳐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불이 이제 지옥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희셍제물로 오버랩되면서 바뀌게 됩니다.
예수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처럼 제자들도 이제 희생제물이 되어서 다른 영혼을 살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불로 소금치는 것과 같은 고난의 시간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러한 불시험과 핍박과 고난을 지나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하지 않고 한 영혼을 살려내는 일은 불로 소금치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견디는 일입니다.
9장의 내용은 예수님의 영광과 고난과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모두 담고 있는 큰 의미의 말씀입니다. 변화산의서의 영광,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고요. 누구든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9장의 마지막 말씀으로 강력하고 두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하지 말고 너희가 불에 태워지는 희생제물이 되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는 말씀으로 마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신 말씀대로 희생 제물의 소금이 되어서 잘 절여지게 하고, 맛을 내어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을 화목하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하지 말게 하시고, 내가 희생제물이 되고 내가 희생제물의 소금이 되어서 더 잘 타게 하고, 맛을 내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희생제물이 되셔서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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