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시련 앞에서 성숙해 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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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 20:3-5(구약 112쪽)
설교제목: 신앙은 시련 앞에서 성숙해 지는 것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어떤 설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방금 읽은 성경 구절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섬김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을까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 오래도록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나라의 멸망을 가져오게까지 했음에도 왜 이스라엘 백성은 어리석게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그 설교자가 이렇게 해설하는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 죄를 범한 것은 그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문제에 즉각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우상을 필요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상을 섬기는 것이 나쁜 일인지 몰라서, 하나님이 금하신 일인지 몰라서 벌인 일이 아니라요. 삶에서 우상과 같은 것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는 것이죠.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란, 여러 종류의 우상을 섬기며 사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관해 때로 우리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고 하나님은 마치 존재하지 않은 듯 침묵하고 계신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의 도움이 우리의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도움인지도 모르는 순간도 있고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셔서 우리가 고난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욥을 들 수 있겠죠. 그는 당시 친히 하나님께 의인으로 평가받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가 처한 현실은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이었죠. 그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많은 재산을 잃었으며, 온 몸이 병들어서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당하는 고통은 그에게 왔던 친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에서 아무런 문제도 잘못도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당대에 의인이라 여겨졌음에도 고통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천상에서 이뤄진 하나님과 사탄의 일종의 계약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욥에 입장에서는 당연히 억울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를 견뎌내기가 참 힘든 것이지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그것은 예외 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서 무조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이 땅에 머리둘 거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욱이 그가 공생애라고 해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 때, 그에 일어난 일은 광야에서 시험받는 일이었습니다. 40일을 금식해야 했고 지독한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이 이처럼 고난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면요. 당연히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상과 같은 것을 만들고 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늘날 그것은 중독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달픈 인생 속에서 술로 마약으로 도박 등으로 도피하며 그곳에서 자유를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파괴할 뿐 결코 온전한 도피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삶에 모두는 각자의 문제와 고난을 마주하게 되니 그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름 도피처를 하나님 외 다른 것으로 만들어 살곤 합니다.
또한, 우상이라는 것이 무조건 어떤 금속 따위로 신의 형상을 새긴 것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설교자는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도 우상일 수 있음을 얘기했는데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중독이라는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고요. 이렇게 보면,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걱정 근심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문제와 고난 앞에서 그것을 담담히 맞이할 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이지요.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고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를 결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주신 율법임을 생각할 때요. 구태여 이런 얘기를 하실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느낌이죠. 결혼하는 부부에게 다른 사람에게 한눈 팔지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얘기하는 것인데요.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두 사람에게는 불필요하다 느껴질 수 있는 말이죠.
그런데, 현실은 사랑해서 결혼한 두 사람에게도 갈등이 찾아오고요. 때로는 다른 이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죠. 그러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하지만 한번 더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 서로를 배신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강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앞서와 같이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곧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죠. 사람은 어리석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상대의 필요도 온전히 채워주지 못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알면서도 잘못을 범하고 실수를 하는데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시면 되지 않느냐고요. 가령,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고난이 찾아올때 하나님이 잘 막아주시고 하나님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살펴주시면 배신하지 말라는 식의 명령은 불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잘 하시면, 우리로써는 크게 어려움 없이 지킬 수 있지 않겠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한 것도 결국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필요를 딱딱 맞춰서 잘 해결해 주시지 않은 것이라면요.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확인되는 것이지만요. 하나님께 속한 그 어떤 사람도 아무런 고난과 어려움 없이 살아간 사람은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은 신실한 사람일수록 더 큰 시험을 주셨죠. 아까 욥을 얘기했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기적처럼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까지 했고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했고요.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하다 그 일로 죽어야 했죠. 그외에도 성경의 주요 인물들은 고난과 시련을 마주해야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길게 돌아왔는데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함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수하로 부려먹는 종이나 어떤 일꾼으로 생각지 않고요. 하나님과 우리가 같은 눈높이에서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때로는 신부라고 여겨주시는데요. 이는 하나님과 우리가 계급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다 친밀한 관계로 나아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에 걸맞는 존재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인데요. 성장은 가만히 이뤄지지 않습니다. 근육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겨난다고 하죠. 이전에 있던 근육이 자극받아서 찢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크고 단단한 근육이 만들어진다고요. 이처럼 고난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요. 이것이 우리가 성숙하고 또는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관계된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결코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분과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교제하는 것과 같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고요. 이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영광의 자리인데요. 우리는 그곳에 초정받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삶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요.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서도록 이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저는 바람이 있는데요. 내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많은 것을 포용하고 담아내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담겨진 것들을 계속해서 빼내어야 할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살면서 부딛히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교회 안에서 심지어 사랑하는 아내와도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비워진 공간이 없어서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비워냄으로써 내가 성숙해지는 것처럼요. 나로 가득찼던 마음을 하나둘 비워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가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또 우리는 놀라운 성숙과 거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주의 말씀을 따라 성숙을 이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것이 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만을 바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