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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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views신앙을 삶의 기초에 둔 인생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둔 인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신앙을 선택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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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부름
예배의 부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삼위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함께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시겠습니다.
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가 546장
찬송가 546장
546.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1)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믿고 굳게 서리라
후렴: 굳게서리 영원하신
말씀 위에 굳게 서리
굳게서리 그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2)주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
세상 염려내게 엄습할때에
용감하게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3)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하신 주의 사랑 힘입고
성령으로 힘서 싸워 이기며
약속믿고 굳게 서리라
(4)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성령 인도 하는대로 행하며
주님품에 항상 안식 얻으며
약속믿고 굳게 서리라
합심기도
합심기도
반석 위에 서 있는 삶
반석 위에 서 있는 삶
성경 구절: 마태복음 7:24-27
성경 구절: 마태복음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서론 : 전부와 일부
서론 : 전부와 일부
지금으로 부터 10년 전 제 아내 최지은 사모와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일입니다.
저희는 믿음의 가정을 꿈꾸며 예비결혼학교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비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마음껏 적어서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다 말하지 못했던 것을 신나서 적어 내려갔습니다.
- 예쁘게 말해주기, 연락 안된다고 화내지 말기, 혼자만의 시간 갖게 해주기, 가끔 친구들과의 모임 보내주기, 축구 보내주기, 게임하게 해주기 등등
아주 이 때가 기회다 싶어서 적어 내려 가다보니 어느새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금새 시간이 지나고 서로 적은 것을 교환해서 읽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적은 것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함께 여행가기, 함께 맛있는 것 먹으러가기, 자주 대화하기, 둘만의 시간 자주 갖기…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제 바램은 ‘나, 나, 나’를 위한 것들이었는데, 아내의 바램에는 ‘우리, 함께, 같이’가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생각했습니다.
‘졌다. 이건 이길 수가 없다.’
그 날이 제가 아내 말을 잘 들으며 살아야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날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수없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저에게 있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제가 원하는 것들 중의 일부였습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다른 것들보다 소중했고,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최 사모에게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그 바램의 전부였습니다.
먹는 것도, 일하는 것도, 쉬고 여행하는 것도 함께하는 것을 기초로 두고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는 제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취미로 운동하는 사람이 인생을 걸고 훈련하는 프로선수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생겨납니다.
기초와 기둥
기초와 기둥
오늘 본문 말씀처럼 인생을 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라고 상상해봅시다.
인생의 집을 지어가는데 우리는 기둥을 세우고, 벽을 채워가며 그 위에 지붕을 얹습니다.
좋은 가정을 세우기 위한 기둥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학업과 직장에서도 안정된 인생을 위해 기둥을 세웁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과 식사를 관리하는 기둥도 세워갑니다.
인간관계는 어떻습니까? 좋은 인간관계의 기둥을 세우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신앙 생활도 인생의 중요한 기둥으로 세웁니다.
교회도 열심히 출석하고, 예배도 잘 준비합니다.
헌금과 봉사도 적절하고 행복하게 잘 세워갑니다.
그렇게 가정이나 직장, 건강과 인간관계라는 다른 기둥에 안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최선을 다해 균형잡힌 믿음의 기둥을 세워갑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집 중심에 가장 크고 중요한 위치에 이 믿음의 기둥을 세워두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누가봐도 신앙 생활을 열심히 헌신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저처럼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지요.
자, 그럼 충분할까요?
신앙을 삶에 가장 우선에 두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았으니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명의 건축가와 집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지은 집에 대해서 예수님은 설계나 자재의 차이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기둥을 세웠는가의 차이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두 건축가가 짓는 두 집의 유일한 차이는 기초였습니다.
바로 믿음이 인생에서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 기초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 중에 한 가지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세워갈 건물 기둥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에 빠진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 때는 성령 충만을 간구하면서 업무 중에나 가족들 앞에서는 성령 충만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갑니다.
교회 밖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쁜 일상에 신앙 생활이 무너지더라도 인생의 다른 기둥들이 그의 삶을 지탱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문제 입니까? 그가 신앙을 아무리 중요하게 여겼었더라도 신앙을 전부가 아닌 삶의 많은 영역중 일부로만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인생의 집을 지탱할 많은 기둥중 하나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기둥이 세워져야할 기초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그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생의 모든 기둥들을 크던, 작던, 중요하던, 사소하던 반드시 이 믿음의 기초 위에 두는 가치관입니다.
앞서 예화로 말씀드린 스포츠 선수를 떠올려볼까요?
그는 식사를 할 때도 기록이나 시합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먹고 마십니다.
운동을 할 때도 무작정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종목에 따라 자신의 시합에 필요한 운동을 하고,
심지어 어떤 선수들은 징크스라는 것이 있어서 시합날의 모든 행동을 정확하게 같은 규칙으로 행동합니다.
제가 들었던 어떤 선수의 징크스는 무조건 경기장에는 오른 발부터 들어가야하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미신적일지라도 괜히 자신의 시합에 불운이 작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선수의 인생의 모든 영역이 시합에서 이기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믿음이 기초가 된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믿음이 기둥이 아닌 기초가 되는 인생은 삶의 그의 모든 영역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움직입니다.
믿음을 인생의 중요한 기둥중 하나로 세우는 것과 기초로 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오히려 기둥으로 삼은 사람들이 더 열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그에게 몰아쳐올 때에야 비로소 믿음이 기초가 되었는지, 아니면 기둥으로 세웠는지가 나눠집니다.
믿음을 기둥 중 하나로 두려한다면, 비바람은 우리의 믿음의 기둥부터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한 때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지만 현재는 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한 때 그렇게 교회를 떠났던 적이 있었던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믿음을 포기하게된 그들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을 지키는 것보다 그들이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인생의 기둥이 무엇이었습니까?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또는 결혼 생활 때문에, 아니면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상처 받았기 때문에?
무엇이 되었든 믿음을 그 모든 것들과 같은 비교 선상에 두는 순간, 믿음의 위기는 찾아올 것입니다.
이러한 비교는 믿음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혜롭게” 타협해도 되는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믿음을 기초가 아닌 기둥중 하나로 삼는다면,
우리의 다른 기둥들이 우리에게 믿음의 기둥을 공격할 빌미를 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믿음을 우선 순위에 두고 이겨내도, 언젠가 한 번, 인생의 위기에서,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로 인해 결국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기초로 둔 인생은 그 위의 기둥들이 아무리 비바람에 흔들려도 결코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죽기 까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목숨조차 믿음을 저버릴 이유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목숨은 그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지만, 믿음은 기초였기 때문입니다.
목숨조차도 믿음과 같은 저울에 올라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을 지키려고 딛고 있는 땅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없듯이 말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서 있는 땅이고, 건물의 기초이며, 가치관의 전제입니다.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해보라는 사단과 세상의 속삭임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기둥을 흔드는 풍파에 단단한 기초를 딛고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과 기초
믿음과 기초
그러나 믿음을 기초로 두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가 가진 믿음을 딛고 서 있습니다.
가상화폐
여기 만원짜리 지폐가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만져보면 조금 독특한 재질로 만들어진 느낌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손바닥보다 조금 큰 한장의 종이 조각입니다.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있고, 만원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종이 한 장이 만원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돈을 보지도 사용해본적도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에게 이 만원을 주고 이걸로 계란을 사오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일까요?
네? 이 종이를 계란으로 바꿔준다고요?
정말요? 그 사람이 이게 뭐냐고 그러면 어쩌죠? 이 종이가 계란과 바꿀만한 것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이런 반응이지 않을까요?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 돈의 가치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당연하다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돈이 가진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같은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사과를 계란과 교환하는 물물 교환이 아닌 화폐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핸드폰에서 숫자 몇 개가 바뀌는 것을 가지고, 그 가치를 지불했다고 믿습니다.
이 뿐이겠습니까?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저기부터 너희 나라라는 그 국가간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나라가 생겼습니다.
의사를 믿어야 병을 진료 받습니다. 뭘 찍은 것 같지도 않는데 엑스레이 사진에 뼈가 찍힌다니 믿어지십니까? 안 믿으면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공부는 어떻습니까?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믿지 못하면 배울 수 없습니다. 책의 내용을 믿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갈까요?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준 부모인지 갓난아기 일때의 기억이 있지 않는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고, 그 말을 믿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땅이 무너질까봐 한 걸음도 내딪지 못하고, 독이 들었을까봐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기초가 되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믿음이냐에 따라 그것이 모래가 되기도 하고, 늪이 되기도하고, 단단한 반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반석과 모래
반석과 모래
그렇다면 그 중 어떤 믿음이 반석이 되고, 어떤 믿음이 모래 같이 흩어져버릴 믿음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반석입니다.
그 밖에는 그것이 아무리 안정적이고, 신뢰감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언제 흩어져버릴지 모르는 모래에 불과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는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평생을 놀고 먹을 수 있는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이제 평안이 먹고 마시고 누리자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2장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많은 재물도 그 사람를 영원히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 가족, 명예, 성공 모든 것이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연인도 죽음이 가져오는 이별을 넘어설 수는 없고, 아이는 언젠가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원한 명예도, 영원한 성공도 없기에 무엇도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을 기록과 승리를 위해 살아가는 운동선수도 은퇴 이후에는 모든 훈련을 중단하고 습관이 바뀌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영원히 지탱해주는 믿음의 반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그 사랑을 십자가로 증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반석입니다.
로마서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반석이 됩니다.
우리가 세울 인생의 집은 바로 이 믿음 위에 세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는 것이,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목적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구원 받았다는 것이, 내가 말하고 걷고, 행동하며, 먹고, 마시고 숨쉬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행하는 삶”이며, “그리스도의 세계 위에 두 발을 딪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골로새서 3장에서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아멘
이것은 마치,
이번 유치부 성경학교 주제처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과, 성품과, 마음이 내 안에 가득 채워져가는 삶입니다.
누가 쿡 찌르면 “예수 그리스도”, 툭 건드리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품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 나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예수님을 닮아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들려짐을 알고 겸손합니다.
밥을 지으며 감사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정직하고, 겸손하고, 또한 정의롭습니다.
가까이는 가족을 온유하게, 멀리는 업무상 만나는 사람에게 마저도 가식적이지 않고 사랑과 선행으로 대합니다.
또한 우연으로 생성된 우주의 먼지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믿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범사에 주님께 하듯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연적인 진화의 산물로 찰나 같이, 먼지 같이 잊혀질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냅니다.
그렇게 나의 내면과, 내가 인지하는 세상이 온통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한, 말 그대로 예수님의 존재감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 바로 반석 위에 서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한 순간도 부인할 수 없는, 그 마땅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모든 기둥을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의 기초 위에 쌓아서, 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믿는 온전한 믿음을 기초로 삼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건축되어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들에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존재감이 드러나시길 축복합니다.
이 시간 함께 믿음과 삶 찬양하신 이후에 기도하시겠습니다.
믿음과 삶
믿음과 삶
믿음과 삶을 살아내는 실력이 너무나 다른 내 모습을 볼때에
이 모습도 주가 사랑하실까 자신없는 내 모습 그저 주님 앞에 있네
나 같은 자도 사랑하여 주시고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으셨네
아픔 속에 주를 작게 여긴 날 꾸짖지 않으시고 내 손 잡아 주시네
오직 주님 안에 두렴없네 고난을 통해 날 만드심을 믿네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강한 손 날 붙드시네
오직 주님 안에 소망있네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주님
주님만이 내 모든 것 되시네 주의 선하심 나 노래하네
기도
기도
주님,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인생의 모든 기둥을 세워,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게 하소서.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 되게 하소서.
주신 말씀과 은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신 이후에, 각자 기도하시다 귀가하시겠습니다.
함께 주님을 세 번 부르고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