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2. 다윗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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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하 7장 15~17절(구약 473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2. 다윗 왕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히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성공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있는지 잠깐 영상을 통해 같이 보겠습니다.
# 영상: 5분 57초
어떠신가요? 나에게도 성공한 사람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까? 나도 이렇게하면 성공할 것 같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특별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다윗 왕에 이야기를 통해 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본래 양을 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고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는데요. 이는 기적적인 일입니다. 당시 양을 치는 일은 비교적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속하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매우 고되었고 노예와 하인과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계급과 신분이 뚜렷했던 고대 사회에서 이처럼 목동이 왕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왕 중에 목동 출신은 다윗 왕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은 양을 치는 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택하심임을 보여주는데요. 지난 시간에 나눴던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므로 버림받게 됩니다. 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새롭게 세워질 왕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시는데요.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이 일은 비밀리에 이뤄졌기에 세상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다윗을 주목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잘 아는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쓰러트린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골리앗은 키가 약 3미터에 달했는데요. 약 57kg의 갑옷을 입었고 창날의 무게만 약 7kg의 창을 든 거인이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다윗은 갑옷을 입을 만큼 자라지도 못했고요. 양을 칠 때 쓰는 지팡이와 시냇가에서 골라낸 돌 5개와 그 돌을 던지기 위한 무릿매가 전부였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던 골리앗이 말합니다.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들고 나왔냐(삼상 17:43)’라고요. 그만큼 다윗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다윗의 그 초라한 무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돌팔매를 맞은 골리앗은 쓰러졌고 그 틈에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다윗의 활약으로 블레셋 군대는 물러가고 다윗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세상의 주목은 다윗에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삼상 18:7)’는 말이 생겨났는데요. 이는 사울이 무찌른 적은 천 명이라면 다윗이 무찌른 적은 만 명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사울보다 더 큰 업적을 세웠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다윗의 인기가 올라가자 당시 왕이었던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이는 다윗에게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적이 생겼음을 뜻합니다.
이 분은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라는 미국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국 곧 ‘NSA’에서 정보 요원 또는 컴퓨터 기술자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미국이 테러 방지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적인 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국정원 불법 사찰 사건’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잖아요. 이와 유사한 것을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내용이 담긴 국가기밀문서를 스노든은 영국의 가디언지나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력한 언론사에 넘겼습니다.
좋게 말하면 내부고발자 역할을 한 것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국가기밀을 빼돌린 이적 행위 혹은 간첩 역할을 한 것이지요. 결국, 이 일로 인해 스노든은 미국 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돼요. 그러나 그는 홍콩을 거쳐 러시아로 망명하였고 현재는 러시아에서 시민권을 얻어서 러시아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가 미국에서 ‘시티즌포’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 2015년에 개봉했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미국의 무서움을 새삼 생각했는데요. 전 세계를 상대로 불법 사찰을 했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미국의 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태어나고 자라난 나라에서 발붙이며 살지 못하니 말입니다.
이와 유사하게요. 다윗이 사울 왕의 적이 되었다는 것은 스노든이 미국의 적이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결국, 스노든이 러시아로 망명을 했듯이요. 다윗도 자신이 쓰러트렸던 골리앗의 나라인 블레셋에 망명해야 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끊임없이 군대를 보내어 추격하고 목숨을 위협하며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본 블레셋 관료들을 속이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삼상 21:14)’하기도 했습니다.
수치스러웠던 시간을 뒤로하고 심지어 복수의 기회가 왔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지 않는다(삼상 24:6)’라며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 다윗을 향한 질투에 눈이 멀어버린 사울 왕은요. 결국,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생을 마칩니다. 그렇게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 남쪽 지역 곧 유다의 왕에서 7년 후 37세에 온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됩니다.
이 분은 장성호 감독님입니다. 이분이 최근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를 만든 감독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킹 오브 킹스’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영화가 북미에서 큰 흥행을 거둬서 우리 돈으로 약 830억 원의 이익을 얻었고요. 봉준호 감독님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보다 더 큰 이익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공은 사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버틴 결과인데요.
장성호 감독님의 말에 따르면요. 제작해서 상영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성공할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데요. 첫째는 한국 감독이 만드는 애니메이션이 픽사나 디즈니라는 큰 애니메이션 영화사가 있는 미국에서 흥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고요. 둘째는 종교 관련 영화가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투자를 받거나 제작을 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요. 또 그 이러한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코로나와 같은 재난 상황이 발생해서 영화 개봉이 미뤄지게 되었답니다. 그 결과로 영화개봉까지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영화 개봉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그런데도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던 것을 감독님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처음엔 돈을 벌 생각으로만 접근한 것이었지만요.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가 올 텐데, 그때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내게 뭐하다가 왔냐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느냐고요. 그러면서 이 영화라도 만들었다고 얘기하고 싶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영화에 매달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관해 관심하고 그분을 알아가기를 바랐다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인데요. 고난이 때로는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봐요. 장성호 감독님이 고난을 통과하면서 ‘킹 오브 킹스’라는 영화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요. 다윗도 사울 왕의 핍박과 블레셋 관료들 앞에서 미친 척해야 했던 수치의 시간을 통과하고 왕이 될 수 있었죠.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심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기를 좋아한다거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행을 막을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요. 그와 같은 고난을 통해 삶의 성공을 이뤄가길 원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성공이 무엇일까요? 보통의 경우에는 돈, 명예, 권력 따위를 얻는 것이라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말의 한자 의미를 살펴보면요. ‘목적을 이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공은 우리가 어디에 목적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돈, 명예, 권력이 목적이 되는 사람에게 그것을 얻는 것이 성공이지만요. 그것이 목적이 아닌 사람에게 성공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목적을 두는 것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과 사귐에 있고요.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이 삶에 성공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윗이 성공했다는 것이 단순히 왕이 되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사울 왕도 성공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를 성공한 인생이라고 성공한 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성공은 그가 왕이 되었다는 것보다는요. 그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뤘음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요. 사무엘하 7장 15~17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사무엘하 7장 15~17절(구약 473쪽)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방금 읽는 성경 구절 16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집과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보전되고 견고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을 뜻합니다. 이런 거죠. 앞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다윗 가문의 출신이 된다는 거예요. 실제로 다윗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 되었고요. 그 후에 이스라엘 왕국이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졌는데요. 북쪽은 계속 왕조의 변동이 있었지만요. 남쪽 곧 남유다의 왕은 모두 다윗의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더 깊은 의미가 있는데요. 그것은 다윗 가문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뤄짐을 뜻하는 거예요.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복 혹은 하나님의 약속은요.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윗이 참여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거였어요. 좀 과장해서 말하면 메시아를 배출한 가문이 되는 것이죠.
한편 하나님이 다윗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신 것은요. 단지 다윗이 왕이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15절에 보면 ‘사울에게서 은총을 빼앗았다’라고 하는데요. 사울도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요. 사울 왕과 다른 다윗의 특별한 점이 있었기 때문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사무엘하 7장의 내용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어요.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어진 화려한 궁에 있지만, 하나님이 임재하는 언약궤는 초라한 장막에 놓여 있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삼하 7:2)’.
사실 하나님에게는 성전과 같은 거처가 필요 없었습니다. 온 우주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니 온 우주가 하나님의 집이었던 셈이고요. 우주보다 크신 분인데 하나님이 거처할 공간을 어떻게 인간이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자기보다 하나님을 더 먼저 생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처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요. 이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영상은 어제 촬영한 것입니다. 제 아들 영상이고요. 생후 5개월만에 첫 뒤집기에 성공한 영상입니다. 제가 설교를 작성할 때만해도 뒤집기 성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는데요. 어제 뒤집기에 성공하는 바람에 설교를 수정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뒤집기라는 업적을 이뤘지만 아직은 누워서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전부인 작은 존재인데요. 그런데도 그 존재가 주는 묘한 만족감이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집사님이 제게 그러셨어요. ‘목사님은 애기 덕분에 안 먹어도 배부르시겠다’라고요. 그래서 제가 맞장구치며 답했죠. ‘네, 그래서 계속 배가 나오고 있어요’
이처럼 아직은 스스로 몸도 가눌 수도 없는 작은 존재이지만요. 존재 자체가 주는 만족감과 더불어서요. 기쁨을 주는 순간이 있어요. 보통은 아기가 기분이 좋을 때, 쳐다보면 저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는데요. 어떤 때는 막 소리 지르며 웃음을 터트릴 때가 있지요. 물론 제가 웃기게 생긴 것이 한 몫을 하겠지만요. 그렇게 웃는 모습이 좋아서요. 한 번 더 웃겨보려고 별의별 짓을 다 해요. 다들 해보셨죠. 다들 손주들 앞에서 어른의 탈을 벗고 천진난만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지요? 그래서 그와 같은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아실 거예요.
저는 오늘 성경 구절을 통해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가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부모를 향해 웃음짓는 어린 자녀의 모습과 그 자녀를 한번 더 웃게 만들려는 부모의 몸짓 같은 것이요. 이와 같은 하나님과 다윗의 사랑의 관계가 결국 다윗에게 큰 복으로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해요.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받지 못했던 약속이고요. 다윗 왕만이 유일하게 받았던 특별한 약속이지요. 이와 같은 은혜가 다윗에게 임한 것은요. 다윗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뤘기 때문이라 여겨져요.
반면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 다윗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범죄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유명한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삼하 11장)’이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이는 다윗이 왕이라는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유부녀였던 밧세바를 성적으로 착취한 사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내몰아서 죽게 만들기까지 했죠. 다시 말해 다윗은 간음과 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통해 금지한 일이기도 했어요.
둘째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함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사건입니다(삼하 24장).’ 왜 인구조사가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는지 의야해 하실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것에 관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고요.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다윗이 이러한 일을 벌인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인구조사를 기뻐하지 않으신 것은요. 이 인구조사라는 것이 순수하게 사람들이 몇명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요. 다윗이 자신의 군사력과 힘을 과시하려는 수단이 되었고요. 이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 또는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는 교만에 따른 결과였습니다. 그러니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자신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사건이지요. 이러한 다윗의 어리석음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많은 백성들이 죽게되는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다윗 왕이 범한 죄를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사울 왕이 다윗 왕보다 낫다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사울은 간음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더욱이 다윗처럼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 당하게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오히려 사울 왕보다 다윗 왕이 더 실패한 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에 관하여 참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3:22)’이라고요. 죄질의 정도만 놓고 보면, 사울 왕보다 다윗 왕이 더 악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제물을 탐내었다가 버림받은 사람인데 비해 다윗 왕은 간음과 살인을 비롯하여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두 왕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사울 왕은 자신의 잘못은 뉘우치고 회개하지 않았고요. 끝내 회개하지 않은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반면에요. 다윗 왕은 자신의 잘못에 관해 철저히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울을 실패한 왕으로 다윗을 성공한 왕으로 더 나아가서는 신앙생활의 성공과 실패 혹은 삶의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됨을 생각합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아서 때로 실수하고 잘못을 하죠. 문제는 그것을 돌이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적대자들에게 팔아 넘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다 예수님께 크나큰 죄를 지은 인물임에 틀림없죠. 은혜도 모르고 스승을 팔아넘긴 제자, 스승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모른채 한 제자 어느 누구도 결코 죄의 무게가 가볍다고 할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외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했나요? 스승이 적대자들에게 붙잡히자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도망갔습니다. 인간인지라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제자들은 얼마든지 치사하고 비겁해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지만요. 다른 제자들 특히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과 재회할 때 과거의 실패와 잘못을 돌이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회개가 결국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데요.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이까요? 성경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방향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챙겨서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았던 둘째 아들이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생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이러한 회개가 결국 삶에 있어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 왕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여러 굴곡이 있습니다. 고난의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께 은혜받고 목동에서 왕으로 극적인 출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먼 미래에까지도 왕위를 보전해 주셨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윗 왕은 훌륭한 왕으로 성공한 왕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도 죄의 문제가 있었고 그것은 다윗 왕의 이력에 큰 오점이 될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요. 그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다윗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성공의 교훈은 이러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성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고 신앙인의 성공비결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디를 향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는 길은 진정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입니까? 바라건대,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신앙생활에서 또 삶에서 성공을 이루는 복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