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끝에 만난 예수님
인생의 벼랑 끝에 선 그대에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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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I. 본문 해설
마가복음 5장은 치유의 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의 기적적인 병 고침의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치유의 장
마가복음 5장, 치유의 장
거라사에 귀신 들린 광인을 고치시고, 또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인을 고치신 기사도 나옵니다.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이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막다른 골목길 혹은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혈루증에 걸린 거, 예수님을 믿은 거, 병 고침을 받은 것이 모두 다 만남의 하위에 들어가는 것들. 이게 믿음과 다 관련되잖아.)
A.혈루증에 걸린 여인
B.예수님을 만난 여인
C.병고침을 받은 여인
II. 절망 끝에 만난 예수님
II. 절망 끝에 만난 예수님
본문에는 혈루증에 걸려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치유함을 받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에 있어서 만남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만남과 믿음
만남과 믿음
A.혈루증에 걸린 여인
A.혈루증에 걸린 여인
혈루증(chromodacryorrhea)
혈루증(chromodacryorrhea)
[혈루증 심각성]
오늘 본문에는 12해 동안 혈루증(chromodacryorrhea, 크로모 다크리 오르헤아)에 걸린 여인이 나옵니다.
혈루증은 여인의 자궁에서 계속해서 피가 나오는 증상인데 이러한 혈루 증세는 율법적으로도 부정한 것이었습니다(레 15:19-30).
여자는 대개 생리 기간이 되면 혈액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생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냥 피가 계속 멎지 않고 계속 솟아나는 것을 “하혈”이라고 합니다.
계속 하혈을 하는 건데 지금 의학적으로 봐도 하열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질병의 상태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상황 상상1-기간]
성경은 그 여인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병을 앓은 지가 12년이 됐다고 했으니 그녀의 병세가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만약 그녀가 결혼한 여자였다면 한창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나이에 이 여인은 혈루증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여자들이 생리를 하기 시작하는 게 예전에는 발육이 더디었으니까 좀 한 15세 정도 됐습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은 12년 동안 했으면 27세입니다.
그다음에 생리와는 상관이 없이 중년쯤 돼서 만약에 그렇게 됐다 볼때 그거는 이 여인이 30살쯤 돼서 시작된 질병이면은 42세쯤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여자로서 인생의 전성기를 이 질병 하나 때문에 완전히 망친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상황 상상2-소외]
끊임없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피 때문에 생활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 또한 힘들었을 것입니다.
율법적으로도 부정한 자로 낙인 찍혀서 종교적인 소외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혈루병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삶을 포기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고자 백방으로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 병을 고치는 데 있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많은 의사들을 찾았고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더 나빠진 질병의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혈루증 여인의 상황 상상3-의사들]
그런데 그녀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의 결과는 많은 의사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의사라고 언급된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과학적인 방식으로 질병을 다루는 전문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민간 요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낫죠.
미신과도 같은 방식으로 환자를 다루는 사이비 돌팔이들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병에 관한 그 시대의 기록을 보면 혈루증에 대해 대개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은 여러 가지 미신적인 방안을 치료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랍비들의 문헌이나 그다음에 혈루증에 관한 그 시대의 기록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혈루병에 걸린 여자는 아직 일구지 않은 밭에 가서 겅중겅중겅중 뛰면은 혈루병이 낫는다.
현대인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뛰어다니고 그다음에 무슨 불에 태운 무언가를 먹으면 낫는다는 그런 미신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을 괴롭힌 거는 정통 의사만이 아니라 말하자면 민간 요법 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박수 무당까지 다 포함됩니다.
[혈루증 여인의 상황 상상4-재산 ]
이 속에서 여인은 살기 위해 의사를 찾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그녀는 가진 것들을 다 허비하였습니다.
혈루병을 앓고 있는 이 여인은 원래는 재산이 꽤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치료를 받느라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다 날려버렸습니다.
[혈루증 여인과 같은 상황에 대한 메시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당하는 어려움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냥 일반적인 어려움입니다.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돈이나 의사 같은 세상 자원으로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특별한 어려움입니다.
이것은 돈이나 의사 같은 세상 자원으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천상 자원으로만 고칠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만나면 나는 그 일을 계기로서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날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한참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누려야 할 나이에 이 여인은 혈루증을 앓기 시작했고, 그 후로는 모든 어려움들이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급기야 이제는 몸도 완전히 망가져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고, 그 있던 재산마저 다 잃어버렸습니다.
옛 말에 “긴 병에 효자가 없다” 라고 한 것처럼, 이 여인은 이처럼 위중한 병세인데도 그녀를 부축하거나 돌보는 가족도 없이 홀로 길거리에 나왔습니다.
B. 예수님을 믿은 여인
B. 예수님을 믿은 여인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여인]
여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 길거리로 나온 것은 사람들로부터 한 가지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었습니다.
선지자 혹은 랍비라고도 불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리는 예수님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큰 능력으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이제 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봤고, 가진 돈도 다 허비하였으니 여인은 아무도 의지할 길이 없는 고립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혈루증의 증세는 점점 더 중하여 지고 있었으니 이 여인이야말로 인생의 벼랑 끝에 선 것과 같은 처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작은 믿음이 생긴 여인]
비록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고 본 적도 없었지만 여인의 마음에서는 소문을 들은 이후로 작지만 분명한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불행한 여인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은 그녀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들려온 소문은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눈 먼 자와 절음발이, 소경과 문둥병자까지 고쳐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을 고칠 수 있는 분이시라면 자신도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이 확신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생긴 여인]
이 믿음의 음성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식을 듣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강력하고 웅장한 북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질병을 치료하실 수 있을 거야.
나는 반드시 그분을 만나러 가야 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다. ”
이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해졌는지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예수님을 찾아가서 옷을 만진 여인]
이제 그녀의 마음은 확정되었습니다.
더 이상 효과도 없는 치료에 연연하여 의사들을 찾아다니는 일에 희망을 걸지 않기로 했습니다.
마침 예수께서 그 동네를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은 치마 속에서 혈루증 때문에 허벅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무리들 가운데 끼어들어 갔습니다.
여인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한 여자라고 느껴서 예수님을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모인 무리들의 뒤로 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막5:27).
여인의 마음 속에는 자기가 예수님 몰래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혈루증에서 나음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바른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와 같이 율법적으로 불결하고 더러워 비참하게 된 병자조차도 고쳐주실 자비로운 분이시며, 또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여인]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여인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옷자락을 붙든 것은 곧 그 믿음의 절대적인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돋보기를 생각해 보라.
날이 매우 춥지만 돋보기를 종이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그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종이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가다가 마침내 불이 붙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온 마음과 정신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를 질병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구원의 길이 없다는 고백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복음]
이 여인은 그동안 다른 길을 찾았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고자 사모했으나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들에 비춰서 현실을 해석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혈루증으로부터 고침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예전과 같이 의사나 예전처럼 의사나 미신과 같은 세상 자원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이제껏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천상의 자원 곧 예수님의 영적 능력으로 고침받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문으로만 들은 이야기지만 그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분이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실 것과 자기를 능히 고쳐주실 줄을 굳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여인의 메시지-적용]
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손에 아무도 모르게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 천하를 움직일 만한 큰 믿음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생의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위기를 만날지라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주님을 만나게 하시기 위해 허락한 어려움인 줄을 깨달으라.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라.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라.
주님을 만나 불쌍히 여김을 받고 주님이 해결해 주실 간절한 믿음을 가지라.
C. 병 고침을 받은 여인
C. 병 고침을 받은 여인
[예수님은 여인을 치료하심]
이 가엾은 여인이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즉시 혈루의 근원이 말라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혈루증에서 고침받았음을 즉시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막5:29).
이것은 저절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된 일이었습니다.
12년 동안이나 그녀를 괴롭혔던 혈루증의 근원을 예수님께서 완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치료는 실제임]
우리가 우리의 불행의 문제를 다룰 때에는 피상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능력으로 간섭하셔서 우리의 불행의 문제를 다루실 때에는 이렇게 근원적으로 고쳐주십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여인을 찾으시어 치료 선언을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은 여인은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이 누군지를 찾는 예수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이때 여인의 마음은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감사함과 기쁨의 감정이 서로 교차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마음을 다독여 주시며,
이 여자의 믿음을 따라 혈루증으로부터 완전히 병고침을 받았음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녀의 혈루의 근원이 마른 것이 수표에다가 금액을 표시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이 선언 선언은 그 금액이 적힌 수표에 사인을 한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그녀를 구원하였습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모든 환란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구원의 열매-샬롬;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회복]
비록 처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절망의 터널에 있는 것 같은 때였지만,
거기서 믿음의 불씨를 지피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 복음의 빛이 아주 희미한 작은 빛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믿음으로 굳게 붙잡았을 때
그것은 여인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빛의 기둥이 되어 그녀를 어둠 속에서 건져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히 가라(휘파게 에이스 에이레넨).
여기서 에이레네는 히브리어로 샬롬과 동치어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과 또한 모든 만물과 함께 평화를 누리는 안녕”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샬롬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 모두를 아우르는 평화로운 상태를 뜻합니다.
따라서 “평안히 가라”라고 번역된 이 부분을 그리스어 성경에서 지적하자면,
“샬롬 속으로 가라”(Go into Shalom)이 됩니다.
이제 이 여인이 어디로 가든지 그녀는 샬롬 속으로 들어간 자로 살 것이며,
평화와 안녕이 그녀와 함께할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그녀의 완전한 치료에 대해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구주로 믿은 이 여인의 몸을 혈루증이
결코 주관하지 못하리라는 선언까지 곁들여 보증해 주셨습니다.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메시지와 적용]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위기에 놓여 있지는 않습니까?
경제적인 문제, 건강의 문제, 사업의 문제나 가족 관계의 문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어려움에서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간절하기만 하면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고쳐주실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영혼이 질병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더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라는 표입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그리스도를 간절히 찾으라.
그분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기를 갈망하라.
혈루증에 걸린 이 절망적인 여인을 고쳐주신 그리스도께서 당신도 그 절망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III. 적용과 결론
우리의 인생은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풍에 돛 달고 미끄러지듯이 잔잔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때도 있지만,
큰 풍랑을 만나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객관적으로 볼 때 불확실한 상황들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혈루증을 앓던 이 여인은 어느 면으로 보나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올바른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의 모든 생각과 관심이 오로지 예수를 만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행사하였으니 반드시 고침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을 만진 것이었습니다.
12년 동안 지겹게 자신을 괴롭히던 인생의 근원, 인생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불행 속에서도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고쳐주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이제껏 산 것도 그분의 은혜로 살아왔고
지금도 은혜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는 그 은혜 속에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미끄러지지 맙시다.
예수님 때문에 희망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희망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는 우리에게 주님은 반드시 기적적인 치유와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소망을 갖고 절망의 벼랑 끝에서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문 듣고 목사님들과 피드백 한 내용]
그다음에 이제 어떻게 어떻게 생각해 이제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해봐.
김학진 목사가 처음에 했으니까 김영수 목사 저는
일단 이제 소감 들어 봤더니 야 이게 벽이 너무 높다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좀 더 시간을 두고 연구했다면 어느 선까지 나랑 얘기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얼마큼
복음을 드러낼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고, 이번 이 설교 보면은 이렇게 막 지적인 부분은 바로 파고 치지는 않지만 너무 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와서 들어도 희망과 소망을 가질 수 있고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또 이게 성경 그대로를 드러냈는데 이 복음이 이렇게 묻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이렇게 성경을 깊이 있게 그 은혜를 드러낼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시간이 좀 걸려요. 그럼 우리 목사님 박 목사님
네 저는 이제 마음속으로 아멘 아멘을 여러 번 하면서 지금 들었고요.
말씀을 보고 또 그것을 깊이 묵상하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더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게 큰 돼지가 끌고 가야 할 그 소지들이 있는 이런 부분들이 끌어내고 정리가 되려면 정말 깊은 묵상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것을 단숨에 사실 할 수는 없겠다. 저도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졌고 왜 이렇게 그동안 너무 조악한 설교들을 했었구나 말씀을 깊이 그 안에서 길러내지 못했고 그것을 또 들리는 설교가 되게 하지 못했구나 이런 반성들이 동시적으로 들면서 이제 개인적으로도 이게 굉장히 은혜가 사실 좀 많이 돼서 제 개인적인 상황 속에서 지금 제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여인과 같은 믿음, 그리고 제가 빨리 이 설교를 제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이런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이제 뭐냐 하면 그래서 이제 시편 119편에서 시인이 얘기잖아 주께서 나의 눈을 열어 주의 법에 기한 것을 보게 해 주옵소서 그랬잖아.
이게 뭐냐 하면은 이제 어두움에는 두 가지 종류의 어두움이 있어요.
기록했나요? 인간의 어두움에는 두 가지 어두움이 있어요.
첫째가 뭐냐 하면 객관적인 어두움이 있고 두 번째는 주관적인 어두움이에요.
객관적인 어두움은 뭐냐 하면은 지식이 없어서 몰라서 어두운 거예요.
그것은 지식을 얻으면은 해결이 돼. 근데 주관적인 어두움은 뭐냐 하면은 이것은 영적 어두움이에요.
이 스피치 다크네스라고 불러요. 영적인 어둠이야.
이거는 뭐냐 하면 자신이 선택한 거야.
그래서 이런 영적인 어두움에 있으면 신령한 것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는 거.
그래서 그 선지사에 보면은 하늘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하늘이 열린다는 이게 수동태야. 이게 수동태인데 하느님이 하늘을 열어주신 설교자들이 돼야 돼요.
다시 말할게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주신 설교자들이에요.
기도의 기도 제목의 선두에 있는 모든 걸 다 날리고 그 선두에는 뭐가 있느냐 하나님 나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이 귀한 것을 볼 수 있는 빛을 주십시오.
매일 빌어야 될 기도의 자아 그다음에 짧게 짧게 합시다.
저는 이 제가 설득 제 자신이 이 설교회에 설득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 설득을 설교는 좀 설득하는 부분들이 논리적으로 가야 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또 우리
예 저는 아까 목사님께서도 지적해 주신 것처럼 본문을 다 이렇게 잡는 게 아니라 소지에 있는 부분을 이렇게 했다면 목사님께서는 전체 이 돼지를 통하여 성경 본문을 다 이렇게 아우르면서 또 이제 개인적으로 또 이런 믿음을 갖고 정말 주님의 은혜를 제 자신도 그렇고 우리 교회 성도들도 좀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을 가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이것이 돼지다 그러고 다 이야기했잖아.
근데 그것이 이 설교에서 빠진 거 있으면 한번 찾아봐.
하나도 안 빠졌어. 다 들어갔어. 근데 대지로 들어간 게 아니라 소지로 들어간 거지
그다음에 또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인데 이제 대충 제가 하려고 했던 얘기가 다 있는데 결국 집으로 치면 이제 이 뼈대를 제대로 잘 잡고 이제 들어갈 내용을 이렇게 딱 구획을 해놓으니까 명확하게 이렇게 잘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어떤 틀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고 그 질문이 있는데 첫 번째 이 페이지에서 혈류증에 걸린 여행인데 그러면 이게 이제 특별함을 위한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그 적용을 할 때 지금 우리가 이제 혈류증에 걸린 연인이면 우리도 혈류증에 걸려야 된다 이렇게는 할 수 없는데 그럼 어떻게 이거를 그러니까 이 적용하려면 어떻게 이걸 적용할 수 있을지
왜냐하면 혈루증에 걸린 모든 사람이 불치의 병을 앓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그지 아니 왜 대답을 못해 어떤 사람은 낳은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죠 문두병도 낫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안 고쳐주셔도 낳은 사람들이 있었잖아.
그러니까 율법에 보면은 문둥병이 낳은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구체적인 규정이 나오잖아.
그러면은 혈루병을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이 여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다 이거야.
근데 이 여자는 결국 안 나왔어. 우리에게 적용하면 뭐냐 하면 당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일반적인 어려움입니까?
그래서 세상 자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어려움입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여태까지 모든 걸 다 동원해서 애썼는데 왜 효력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새롭게 만나게 하시기 위해 허락하시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게 적용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여자가 절망 끝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희망을 얻은 것처럼 예수님에게서 답을 찾으려고 해야 됩니다.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는 거 같이 병에 걸리자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그다음에
네 저는 제가 처음에 제지 얘기했을 때 목사님께서 믿음으로 손을 대다 이런 내용이 이제 나오면은 이제 예수님을 만나다보다 그게 더 그 여인의 행동이 더 조금 전달될 때 부각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렇게 살짝 얘기하셨는데 이 설교문을 보면서 이제 이거는 어떻게 보면은 좀 제가 좀 이렇게 좀 웃긴 얘기일 수도 있는데 한국 교회 설교자의 문제점을 나도 갖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늘 성도들이 공로주의를 해가지고 교회 작은 교회도 너무 힘들게 한다.
그런데 이제 저는 또 마음이 급하니까 이런 걸 통해서 너가 옷자락을 만져야 된다.
예배 때 많이 나와라 막 이렇게 하려고 하니까 그런 것도 꼭 넣으려고 하는데, 목사님 설교문을 보면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자연스럽게 이제 옷자락 만지러 가야겠다라는 마음이 이렇게 순서가 흘러가게 이렇게 되니까요.
그래서 이제 그런 이제 자성과 또 예 그런 마음이
우리의 문제가 뭐냐 하면은 율법적인 설교를 하고 싶어서 율법적으로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적용을 모두 뭘 하는 거에다가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마치 사람들은 그거를 하면 그게 되는구나 그렇게 a를 집어넣으면 동전을 집어넣으면 자판기에서 컵라면에 나오는 것처럼 그 믿음을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거야.
적용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아주 신앙의 내용이 조잡스러워지는 거예요.
조잡스러워지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유명한 설교학자인데 그 사람도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의 설교는 추상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라는 설교를 한다면 자기는 항상 적용해서 항상 하루에 몇 장을 읽어라 이런 식으로 자기는 설교를 끝낸다는 거야.
근데 나는 동의가 안 되는 게 청중을 물로 보지 말라 이거야.
청중이 바보냐 이거야.
마음을 뜨겁게 하면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하는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스스로에게 잘 적용을 하는 거라 이거야.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새벽 기도 나오는 것이 예수님의 옷자락 만지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밤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그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주일날 빠지지 않고 나와서 엄마의 질병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이 오전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은 각각 하나님이 역할을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설교를 그런 식으로 몽졸하게 풀어내면은 나중에는 막 덕지덕지 덕지덕지 의무가 막 쌓이고 마지막에는 그런 거 하나도 하지 못했다라고 하는 자괴감 때문에 결국은 짐을 지고 엎드려진 사람처럼 되기가 쉬운 거예요.
그다음에
저는 설교가 참 쉽다 잘 들린다 그런 생각이 좀 들었고요.
그리고 결국에 이 설교에 그러니까 듣는 모든 사람이 아 내가 혈로증 걸린 여인이구나 그렇게 공감 그걸 공감을 하게 해줘요.
그거를 그냥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하게끔 하는 설교문이다.
그런데 결국에는 소망이 있다. 참 이게 너무 좋습니다.
소망을 주
그러니까 이제 메시지가 단순할 때 너무 길게 끌려고 하지 마.
이게 이런 설교는 딱 해서 가서 여러분들이 좀 더 이제 만질 거 아니야 다 만져서 고쳐가지고 그냥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면 막 갖다가 붙이려고 하지 말고 한 30분 정도에 쌈빡하게 팍 끝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다음에 열렬한 기도를 하게 은혜는 결코 설교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아.
한순간에 그 사람을 파고들어가는 말하자면 이제 개인적인 말씀이 있어요.
가끔 이제 우리 조의연 목사님 레마의 말씀과 로고스의 말씀을 구분하는데 사실 그걸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 조영기 목사님이거든.
근데 사실은 레마와 로고스의 차이에는 그런 그런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 특별히 하나님이 내게 깨닫게 하신 말씀 나에게 특별히 도전을 주신 말씀 그렇게 바꿔서 이야기를 하면은 될 거라고 생각을 해.
그래서 이번 설교는 아주 어려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일부러 감당하기 싫어요. 알 거야.
그래서 그다음에 이제 마지막으로 이제 조 목사가 잘못했어요.
이게 목사님 제가 이제 이렇게 쭉 보면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있으면서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어느 때는 길게 길게 들어가다가 오늘 설교는 되게 명료하게 이제 짧으면서도 아주 명료하게 이렇게 가는 거를 저희가 좀 보면서 질문이 있는데요.
목사님 이게 제가 목회적인 질문인데요. 이제 이 설교를 할 때 이 사람은 이제는 나였지 않습니까?
근데 아까 이제 사업적인 경제적인 관계적인데 목사님 이제 적은 포인트가 이제 그런 부분으로 아까 말씀하셨는데 이제 저희 교회 두 명의 나치병이 있어요.
한 분은 누계입을 걸린 권사님이 한 분 계시고 그 분의 둘째 딸 가정이 목사님 오셨을 때 그 사이가 크게 은혜를 받고 등록까지 할 마음이 있었는데 그 딸이 왜 우리 엄마는 이 병에 걸렸나 하면서 그게 아직도 안 풀어진 분이 한 분 계시고 또 한 분은 여기 위로 개그맨 자살한 박지성이라고 그게 여기서 어떤 약을 써도 열이 안 내려서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리고 잠을 못 자다 보니까 모든 일상의 삶이 다 무너지는 건데 그 이분이 이제 5년 됐는데 약을 이만큼씩 경희대 한의대 서울대 다 다녀도 민간 문법이고 뭐고 다 해도 이게 안 되는 거예요.
그분이 이제 저하고 성경 공부 5~6년을 했는데 예수님 사랑이시라면서요.
예수님 고쳐주신다면서요 그렇게 하는데 제가 이제는 뭐 신의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런 이제 실존적인 문제이다 보니까 이제 그분은 이런 말씀을 나를 낫게 해주셔야 되는 거예요.
근데 제가 아까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그 부분이 좀 와닿는데 그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었다.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것과 고쳐주실 걸 굳게 믿었다.
이 부분에 이 부분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하게 됐고요.
누게릭 걸린 권사님은 되게 심실한데 필사하다가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면서 처음에는 막 여기가 조금씩 이상하다가 이제 나중에는 이게 루게릭이 된 거거든요.
그래서 그 두 분이 좀 저는
그러니까 나는 이제 가끔 이제 소위 얘기하는 데어디시 신종론의 문제라거나 이건 하나님이 의 정의로우신 분이신데 왜 이렇게 우리가 고난을 겪어야 되냐는 문제잖아.
그래서 내가 항상 즐겨 하는 말은 그거야 뭐냐 하면 계란 알 속에 병아리가 다 이제 깨어났어.
근데 의식이 다 돌아왔단 말이야. 이제 바깥으로 나올 때가 다 됐단 말이야.
근데 그 병아리가 눈을 떠보니까 자기는 이렇게 하얀 거에 둘러싸여 있는 거예요.
그게 병아리가 아는 세계의 전부야. 근데 그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오면은 병아리들이 맨 처음에 두리번거려요.
이렇게 옷이 몸이 촉촉하게 젖은 상태에서 왜냐하면 알 속에서는 한 번도 상상도 못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니까 지적인 충격을 받고 그리고 병아리가 두리번거리는 거예요.
그러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고통과 불행의 이런 문제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 같은 경우 보면은 맨 처음에 신앙이 어렸을 때는 욥이 자기가 의로운데 왜 이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중에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니까 자기가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만약에 그런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 궁금한 거를 자기가 기도로 하나님께 직접 물어보라고 나는 권해.
그것이 믿음을 가는 길이에요. 하나님 왜 우리 엄마는 심실하게 구역장 권사로 살았는데 왜 루게릭병에 걸립니까?
저 사람은 맨날 나쁜 짓하고 온갖 죄악을 더 다 저지르는데도 저렇게 건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이제 시편 73편인가 거기에서 보여주는 나는 날 아침마다 여호와로부터 질책을 보나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이제 신정론에 대해서 의문을 갖다가 마지막에 이제 불연 깨닫게 되잖아요.
성막에 들어갈 때 그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에서 깨달으면서 나는 무지하기가 짐승과 같았습니다.
여호와께 가까이하는 것이 나에게 복입니다 라고 하는 그런 고백을 하게 되잖아.
조인희 목사도 똑같은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교인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야.
그거를 잘 다루어줘야 돼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신실한 사람도 암에 걸려서 죽을 수 있다.
그렇지만은 그것이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게 하시면서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셔서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무엇을 주시잖아.
근데 왜 우리 교인 전부 다 데리고 가 가지고 영화 보게 한 영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그거 교회 오빠 이 이관희 씨 얘기 있잖았네.
그런 걸 서 그러니까 당신이 궁금하면 하나님께 직접 그렇게 여쭤봐라.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왜 이 불행한 일이 생기느냐고 묻지 말아라.
그것은 이 세상이 불완전하고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도 관리 안 하고 단 거 많이 먹으면 당뇨병 걸려 그리고 죽을 수도 있어요.
근데 다르잖아. 왜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는 척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인하고 죽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고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잖아.
그러니까는 그거를 모두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내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다 해서 인생이 지나는 그런 죽음에 두려움조차도 넘어서는 힘입니다.
그걸 가지고 설계 속에서 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혈루병에 걸린 것 같은 사람이다라는 걸 느끼게 만들고, 그리고 내가 주님을 만나야지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거는 공감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