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함께: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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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과 함께: 우리가
제목: 성령과 함께: 우리가
본문: 사도행전 16장 6-10절
본문: 사도행전 16장 6-10절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1983년 창년 2년차 해태 타이거즈에 새로 부임한 김응룡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감독님, 내년 시즌 목표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는 겨우 15명의 선수로 팀을 꾸린, 그야말로 '미니' 구단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하위권을 예상했고, 팬들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응룡 감독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목표야 물론 우승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저었지만, 그 다음해 해태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이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을 위해 헌신했고,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3연전에서 싹쓸이 승리를 거두며 그것을 발판으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로도 좋은 성적을 내며 강팀으로 군림했는데, 해태는 단일 구단으로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차지한 전무후무한 팀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우리'였습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함께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라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사도행전에 '우리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전까지는 바울 일행을 '그들'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우리가'로 바뀝니다.
이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이 시점부터 바울과 함께 동행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친히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막힌 길의 선물
막힌 길의 선물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사람들은 바울을 강인하고 담대한 사도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실제 바울은 상당히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에 대해 언급합니다. 세 번이나 하나님께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허락받지 못한 지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1차 전도여행에서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수차례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앞으로 바울에게는 더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매질, 더 많은 감옥, 그리고 마지막에는 참수형까지 말입니다.
가난한 전도자 바울에게는 아마도 아플 때 찾아갈 의사도, 병원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주님만 의지하며 연약한 몸을 이끌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바울의 이런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바울이 앞으로 겪게 될 고난들과 그의 몸의 한계를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해두셨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을 드로아로 인도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누가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의사였으며, 당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었습니다.
바울과 누가의 관계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성경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 10절에서 처음으로 "우리가"라는 표현이 등장하며, 이 시점부터 누가가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로아에서 갑자기 "우리가"라는 복수 표현으로 전환된 것은 단순한 문체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이 시점부터 직접 바울의 전도여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또한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전도자가 평생 자신만을 위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가진 전담 의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재벌이 아니었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치거나 병이 들어도 의사를 찾아갈 경제적 여력조차 없는 가난한 전도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자신이 죽는 날까지 자기를 돌보아 줄 의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이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드로아로 내려간 직접적인 목적은 마게도냐 환상을 따라 유럽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여정 가운데 바울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 누가를 만날 수 있도록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디모데후서 4장 11절을 보면, 말년의 바울이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다른 동역자들은 다 떠났지만 "누가만은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정말 끝까지 함께한 동반자였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바울의 사명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동반자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누가는 단순히 의사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울의 영적 동반자였고, 더 나아가 바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하나님의 기록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 출신 선지자 실라로부터 초기 교회의 역사를 전해 듣고 누가복음도 기록했습니다.
만약 누가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의 놀라운 사역들이 그냥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누가를 통해 바울의 삶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 10절에서 "우리가"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바울 혼자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예비하신 동역자와 '함께' 사역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십니다. 우리 각자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동역자들을 미리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때로는 가족이, 때로는 지인이,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우리의 '누가'가 되어 줍니다.
연약함의 온기
연약함의 온기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인정함이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쉼비바존테스'인데, 이는 '함께 결론내리며'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바울 혼자 결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다고 가르쳐 줍니다.
바울이 환상을 보았을 때, 그는 누가와 실라, 디모데와 함께 그 환상의 의미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그 결과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다"라는 공동의 확신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과 함께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누가가 바울과 함께 동행하면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정된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바울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 길은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픔과 추위,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그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아플 때마다 의사로서 치료해 주었고, 바울이 외로울 때마다 동반자로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모든 사역을 지켜보며 기록자로서 사도행전을 써내려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과 함께하는 동역의 모습입니다. 각자의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서로를 섬기고, 서로를 세워주며,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누가에게는 의술이라는 은사가 있었고, 바울에게는 복음 전파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은사였지만 성령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봉사의 은사를, 어떤 분은 기도의 은사를, 어떤 분은 위로의 은사를, 어떤 분은 섬김의 은사를 받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사들을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되어 함께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누가가 각자의 은사로 서로를 세워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은사로 서로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올해 우리 중앙교회의 목표는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더불어, '우리'가 되어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내주신 '누가'는 누구입니까? 내가 힘들 때 함께해 준 사람,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사람, 나의 짐을 함께 나누어 준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 각자에 보내주신 동역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도 누군가의 '누가'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연약함을 따뜻하게 돌보아 주고, 누군가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어 주고, 누군가의 꿈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되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령과 함께 - 우리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바울의 연약함을 아시고 의사 누가를 보내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각자에게 필요한 동역자들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고, 성령님께서 보내주신 동역자들이 함께합니다. 해태 타이거즈가 '우리'가 되어 V9의 기적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과 함께 '우리'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적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함께 걷는 동행의 기쁨을 누리며,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이 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성령님, 감사합니다.
바울의 연약함을 아시고 의사 누가를 보내주셨던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동역자들을 보내주고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성령님과 함께, 그리고 성령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각자의 연약함도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도 아시는 성령님, 바울과 누가가 서로의 은사로 서로를 세워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선물이 되게 하십시오. 서로의 연약함을 돌보고, 서로의 짐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세워주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 중앙교회가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로 세워져 가는 과정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 함께 나아가게 하십시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함께 분별하고, 함께 순종하며,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십시오.
성령님과 함께 걷는 동행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며,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