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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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나 붙잡아 주시는 주님
흔들리나 붙잡아 주시는 주님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1장 1-9절에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가 많더라도 하나님의 교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교회를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를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에 대해서 상고해보겠습니다.
1.흔들리는 우리
1.흔들리는 우리
고린도 교회는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고린도에 위치 했습니다. 이 교회는 바울이 세웠지만, 많은 문제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 그들이 직면했던 다양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교회 내 분쟁과 분열이 있었습니다.(1-4장)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하며 파당을 짓고 있었습니다(1:12). 또한 도덕적 타락(5-6장)이 있었고, 결혼과 이혼 문제(7장)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8장)와 예배의 질서 문제(11장)도 있었습니다. 영적 은사를 오용하는 모습(12-14장)과 부활 신앙에 대한 의문(15장), 그리고 선교와 연보 문제(16장)까지 다양한 문제로 교회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양한 요소로 인해 신앙이 흔들립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배후에는 영적인 세력이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마귀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거짓 가르침을 통해 진리를 왜곡하고, 다양한 시험과 유혹으로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세상은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통해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또한 명예와 성공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육신 또한 정욕, 탐욕, 교만 그리고 습관적인 죄를 통해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유혹에 넘어진 사람들의 예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마가는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났지만, 후에 세상의 편안함을 추구하여 사역을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능력이 있었으나, 육체적 유혹에 굴복하여 결국 그 능력을 잃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와 동행으로 복을 받고 있었으나, 물질적 풍요를 선택하여 소돔에 정착했고, 그 결과 아내를 잃고 가정은 파탄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마귀, 세상, 육신은 끊임 없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으려 합니다.
또한 예상치 못한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시험 받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 속에서 낙심하고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초대교회 성도들도 동일하게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들도 여러 이유로 흔들렸습니다. 내적 원인으로는 에베소 교회의 첫사랑 식음, 사데 교회의 영적 죽음,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과 영적 자만이 있었습니다. 외적 원인으로는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의 잘못된 교훈, 버가모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세속적 유혹, 도덕적 해이, 그리고 여러 교회가 경험한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우린 모두는 이처럼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흔들리는 우리를 견고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방법
2.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방법
X 1)붙잡아 주시고 성장시키는 주님의 모습
X 1)붙잡아 주시고 성장시키는 주님의 모습
주님은 흔들리는 우리를 어떻게 붙잡아 주실까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아셨지만 그를 위해 기도하셨고 그가 다시 일어나 회복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자녀를 붙잡아 주듯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아이 중 한 아이가 어린시절 걸음마를 배울 때 손을 잡고 한발 한발 걷습니다. 손을 잡아 걷긴 하지만 몇 번이고 넘어집니다.
중요한것은 넘어졌다고 해서 제가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다시 일어나도록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십니다.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게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경고와 함께 붙잡아 주시려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도 고린도 교회가 비록 지금은 여러 이유로 흔들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 한 알이 공중에 새들이 와서 거하는 큰 나무가 되고 씨를 뿌려 추수하게 되는 것은 교회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누룩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성도가 있는 교회를 반드시 성장시키십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장의 모형으로 광야 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그들은 인도하시고 보하셨습니다. 그들의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셧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과 약속의 땅, 그 사이의 시간이 광야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늘에 속한 본향, 그 사이의 시간이 교회입니다.
그 사이의 시간 동안 주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성장시키십니다.
2)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모습
2) 붙잡아 주시는 주님의 모습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습니다.
X (1) 미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붙잡아 주신다.
X (1) 미쁘신 하나님의 성품으로 붙잡아 주신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주님은 미쁘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며 끝까지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후에 신앙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것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세 번 물음으로 다 덮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이후에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처럼 반석처럼 살았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붙들고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신실하신 주님께 항상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면 붙잡아 주십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교회에 오면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면 배터리가 없어서 마음이 조마조마 했던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겁니다. 중요한 전화를 앞두고 배터리가 1%라면 마음이 어떻까요? 집이나 회사에 들어와서 충전기를 꽂으면 걱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만했던 마음은 조금씩 방전되기 시작합니다. 거의 고갈되면 분명 마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아가면 언제든지 주님께서는 충전해주시지 않습니까?
오늘 교제 진짜 가기 싫었는데, 집에 돌아갈 때는 충전되어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 충전이 보장되어 있으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를 붙잡아 주시는 모습을 나에게 충전기를 꽉 꽂는 모습으로 상상해 보십시요. 시도 때도 없이 주님께 붙잡히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2) 말씀으로 붙잡아 주신다.
(2) 말씀으로 붙잡아 주신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말씀을 통해 붙잡아 주십니다. 지금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우리는 말씀에 붙잡혀 사는 자들입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옳게 분별하여 이 땅을 살 수 있고, 또 때마다 시마다 필요한 힘과 위로를 공급 받습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꼐서 말씀을 통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붙잡아 주십니다.
고층 빌딩은 바람에 취약합니다. 바람에 흔들립니다. 이렇게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댐퍼라는 첨단 기술을 도입합니다. 중심을 잡아주고 흔들림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 우리나라에 가장 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에도 상층부에 500톤가량의 거대한 추가 설치되어 있고 실제로 바람에 의한 흔들림을 완충하는 역할을 합니다.
‘댐퍼’가 건물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서 있게 하는 역할을 하듯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안전장치 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우리는 말씀의 힘으로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3) 성령으로 붙잡아 주신다.
(3) 성령으로 붙잡아 주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구원과 동시에 첫번째로 받은 선물은 성령입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선물로 받은 성령은 우리 안에서 나를 붙잡아줍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하고 우리 내면의 능력을 강하게도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4)기도로 붙잡아 주신다
(4)기도로 붙잡아 주신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복음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를 위해서 예수님꼐서 기도 하셨던 것처럼 구원 받은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5) 교회를 통해서 붙잡아 주신다
(5) 교회를 통해서 붙잡아 주신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때때로 보이는 형제, 자매님들을 통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넘어졌을 때, 교회가 없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분이 한 분도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사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고 또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습니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시기 때문에 붙잡혀 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는 세상의 가치나 물질에 의지하고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교회에 딱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자 비결입니다.
(6) 징계를 통해서 붙잡아 주신다
(6) 징계를 통해서 붙잡아 주신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징계를 통해 돌이키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를 다시 붙잡기 위함입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믿음을 바로 세우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금을 연단하여 정금으로 바꿔가듯이 우리에게 더욱 순결한 믿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요나를 통해서 이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했을 때, 그를 그냥 포기하고 놓아 버린 것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 붙잡았습니다. 그냥 놓았다면 요나는 다시스에서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주님께서 징계로 붙잡아 주셨기 때문에 그의 삶은 말씀을 순종하는 쪽으로 전환 되었습니다. 징계를 통해 주님이 그를 붙잡아 축복의 길로 옮기신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3.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이유
3.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이유
주님은 우리를 왜 붙잡아 주실까요?
1)불신자를 건지기 위해
1)불신자를 건지기 위해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하나님은 영혼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중요한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는 명령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먼저 우리를 견고하게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견고해질 때, 불신자들에게서 복음을 더 확신 있고 힘 있게 전할 수있습니다. 이 것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2)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자 되기 위해
2)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자 되기 위해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가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마치 벽에 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못이 단단하게 박히면 크고 무거운 물건도 안전하게 걸 수 있지만, 어설프게 박힌 못은 작고 가벼운 물건조차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꼐서는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분은 단단하게 박힌 못처럼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믿음을 보실 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단단하게, 견고하게 만드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시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에 더욱 효과적으로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우리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4. 견고한 신앙을 가지려면
4. 견고한 신앙을 가지려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자주 흔들리기 때문에 견고하면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견고한 신앙은 개인적인 능력과 좋은 환경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울은 키가 컸고 개인적인 능력도 있었지만, 결국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고 결국은 죽었습니다.
삼손도 뛰어난 힘을 가졌지만 한 이방여인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버리고 신앙은 회복했지만 결국은 죽었습니다.
개인적인 능력과 좋은 환경이 오히려 죄로 치닫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1) 복음이 확실해야 한다.
1) 복음이 확실해야 한다.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그리스도의 증거, “복음이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견고한 신앙을 가지려면 기초가 단단해야 하는데, 그 기초는 복음입니다.
바닷가 해변에서 정성껏 모래성을 또는 이름을 멋지게 만들어본 기억 있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만들다가 파도 한번에 무너져 버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오랜시간 정성을 다해 만들었지만 파도 한번에 무너지는 것
그것은 기초가 모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우리는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앙을 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은 모래와 같습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교회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신앙의 기초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8장에 예수님이 소경을 두 번 안수하여 치료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가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 지라”우리가 복음을 여러번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이해도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어떤 분들의 신앙이 힘이 있냐면 복음에 대해서 확실한 분들이 힘이 있습니다. 우리도 먼저는 복음의 기초를 든든하게 세워야 합니다.
2) 교제 안에 들어와야 한다
2) 교제 안에 들어와야 한다
‘견고케’하신다 와 ‘교제케’하신다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교제를 통해서 우리를 견고케 하십니다.
오늘도 말씀 후에 교제가 이어집니다. 참 신기한게요. 다른 분들의 간증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을 얻고 마음이 견고케 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 교제 안에 우리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구원 받은 사람은 교제에 붙으면 붙을수록 강해집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힘과 생명력을 공급 받아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듯이 우리는 교제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3) 순종함으로 신앙이 견고해진다.
3) 순종함으로 신앙이 견고해진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48장의 말씀은 이 진리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네 자손이 모래 같았겠고 네 몸의 소생이 모래 알갱이 같아서 그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겠고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구절에서 “만일 들었더면” 즉 “만일 순종했더라면”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순종했다면 받았을 축복을 설명하십니다. 강과 바다와 모래의 비유는 하나님이 베푸시고자 했던 넓고 풍성한 복을 상징합니다.
순종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위는 우리의 신앙을 견고하게 만드는 기초가 됩니다.
따라서 순종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신앙을 견고케 하는 영적 훈련입니다.
4) 고난을 통해 견고케
4) 고난을 통해 견고케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적절한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며 그로 인하여 강건하고 견고하게 하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고난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명검(名劍)의 탄생 : 무쇠는 처음부터 날카로운 칼이 아닙니다. 뜨거운 불에 달구어지고, 수천 번의 망치질을 당하며, 차가운 물에 담금질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불순물이 제거되고 강철이 됩니다. 이 강철을 다시 갈고 닦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예리하고 단단한 명검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혹독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제련 과정 없이는 결코 최고의 칼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은 인물들을 보면 한결 같이 다 혹독한 고난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요셉과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인생 속에 시험을 허용하신 이유는 그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믿음이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나를 더 강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모든 고난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부러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명검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 결론
□ 결론
우리는 오늘 흔들리는 우리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마귀와 세상, 그리고 우리 자신의 육신으로 인해 우리는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미쁘심으로, 말씀으로, 성령으로, 기도로, 교회를 통해, 때로는 징계를 통해서까지 우리를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이를 기억하고 우리의 복음의 기초를 단단하게 하며 교제 가운데 순종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