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33) 복음에 미친다는 것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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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없으면(말씀이 없으면)

John 12:2–3 NKRV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복음에 미친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 표본이다.
복음과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 본문의 등장인물은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와 가룟 유다이다.
이 중에 가장 믿음이 좋아보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연히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드린 마리아다.
그러나 여기 나오지 않은 주변 인물들이 보기에는 누가 가장 믿음이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만약에 예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성경 말씀을 알지 못했다면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불의하다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Luke 10:38–42 NKRV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는 이전에 예수님이 집에 오셨을 때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옆에서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화가나서 동생도 일을 도우라고 말했습니다.
마르다가 생각하기에 지금은 손님을 대접해야 하고, 일손이 부족하니 한명이라도 돕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말씀을 듣는 것이 더 귀하니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마리아의 선택이 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이 다 일할 때에 혼자 놀고 있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입니다.
이번 잔치에서도 마리아의 행동에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은 사람들을 당황시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황하고 말았지만 가룟 유다는 그녀를 꾸짖었습니다.
이 향유는 요즘 시세로 약 3-5천만원 정도 하는 값비싼 향수와 비슷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것은 골든 딜리셔스라는 향수로 고가의 향수 기네스에 오른 제품입니다. 한화로 10억이 넘는 금액의 향수입니다. 일단 용기가 14k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2700개의 다이아로 빌딩숲이 연상되는 모습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캡부분은 노란색 다이아로 한번 더 둘렀으니 케이스 가격만해도 엄청날 것 같습니다. 이 케이스를 만든 시간만 해도 1500시간이 들었다고 하니 이것은 이미 대단한 예술 작품과도 같은 상품입니다.
한 성도가 이 향수를 사서 교회에 뚜껑을 열어 부어버렸다고 가정해봅니다. 성도들은 이 향수에 대해 알고 있었고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재정을 담당하시는 분이 화를 내시면서 그렇게 비싼 향수를 사서 다 부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성도를 꾸짖는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하고 생각하시는 분으로 우리는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값비싼 향수를 부어버린 성도는 기이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엉뚱한 행동을 한 사람으로 비춰지겠죠. 우리는 그 재정담당자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가 없기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두 번 다 매우 억울한 상황이 될 뻔 했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두번 다 행동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오해를 받으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마리아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셔서,
그리고 마르다와 가룟 유다처럼 믿음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셔서,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가운데 주신 줄 믿습니다.

죄와 선악에 대한 판단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마르다나 마리아, 나사로, 유다가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와 이 사회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죄에 관한 것은 자주 말할 수록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이 죄로부터 흘러오기 때문입니다.
Genesis 3:4–5 NKRV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이라고 불리는 이 사탄이 죄를 사람들에게 가지고 온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 때에 죄가 시작되는 부분은 흔히 선악과라고 부르는 이 열매를 먹은 시점이 아니라 뱀이 여자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시점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방법은 ‘반쪽짜리 진실과 노골적인 거짓말을 섞어 놓은 자극적인 칵테일’과 같습니다.
여기서 ‘선악을 알 줄’이라는 말은 선과 악을 분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이미 선한 일이 무엇인 줄 분별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이제 네가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여자가 사탄의 말을 듣고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Genesis 3:6 NKRV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생각이 바로 우리도 모르게 우리에게 스며든 교육이며 사상이고 이데올로기 입니다. 이 생각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니 그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선악과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웠습니다. 안먹을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베이스로 살아갈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열매였습니다. 안보고 안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니 그것이 매우 먹음직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말씀이 아닌 자신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습니다.
이 순간 삼각구조의 꼭대기에 있던 하나님은 자신의 자리로 내려오게 되고, 그 꼭대기에 자신이 앉아서 이제 사탄과 하나님 간에 선을 자신이 판단하는 위치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남편에게도 권합니다. 이렇게 인생은 몰락합니다.

선악의 판단 결과는 절망

예수님의 제자인 유다가 와서 마리아를 꾸짖습니다. 마리아가 엄청나게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다 붓는 것을 보고 너무나 아까워하면서 ‘이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줘야지 다 부어버리냐며’ 야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 빠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고상한 거짓말은 절묘하게 창세기에서 사탄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포장된 속마음은 그 돈을 이용해서 자기의 주머니를 채우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하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유익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의 말과 행동이 맞다고 착각하는 ‘자기 정당화’에 완전히 빠져 살고있었지만 실제로는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며 최후에 유익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회 전반에 퍼진 죄의 전염병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경향에 빠져 삽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같이 되는 것이 사회적 선이 되버렸습니다.
대제사장부터 바리새인과 유대 지도자들이 먼저 죄의 노예들이 되었고, 양심에 화인 맞아 이제는 자신들의 행동에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일이라는 자기 최면까지 빠져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가룟 유다는 누구보다 출세에 목말라 있던 사람이었고, 그런 죄의 성배를 마셔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의 판단과 행동 그리고 사탄에게 팔아버리 영혼은 이제 완전히 어둠 가운데 길을 잃어버려 나중에는 예수를 쫓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으며, 이 기회에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팔아 넘기면 오히려 자기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에 빠져 예수님을 팔았다가 이후에 정신을 차리고는 자결하였습니다.

선악의 판단을 원래 자리로

우리는 다시 원상복구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셔서 자기를 희생하여 하신 일은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과의 화목하던 관계로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따먹으면서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가 시작된 것을,
십자가 나무에 다시 달리신 나무의 열매로 스스로 희생하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과 감정이 맞다는 확신이 들 때에 그것을 하나님의 시선을 다시 살펴보고(기도), 성경적인 의심으로 그것을 분별하여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훈련을 계속해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실수하지 않고,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람은 다 가룟 유다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뻔 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도 다 유다처럼 적당히 거짓말하며 스스로에게 타협하고 위로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 중에 누구도 완전한 의인이 없으며 완전한 악인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죄인’이라는 경계를, 타인에게는 ‘의인’이라는 긍휼을 그리고 모든 문제에는 예수님께 맡겨드리는 ‘겸손’을 가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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