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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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참음
오래참음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이번 주제는 ‘오래참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여러분은 오래참아본 경험이 있는가? 어떤 친구는 부모님이 정해준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게임이나 휴대폰을 하고 싶지만 참고 기다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수 있다. 또 친구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갈등이 생기거나, 서운하게 했을 때 바로 화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기다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성적을 봤는데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 이어가려는 경험이 있을 수 있다. 학교나 학원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당장 힘든 상황을 견디며 학기나 학원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린 경험을 가진 친구도 있다. 또 생일이나 여행, 방학과 같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참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래참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내가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것을 끝까지 기다렸을 때 반드시 엄청나게 좋은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오래참을 수 있는 비결이다. 나는 이전에 일본에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보았다. 그것은 미소녀처럼 예쁜 여배우와 남자 패널들이 상황극을 하는 것이었다. 남자가 화가 날만한 상황을 주고 여배우가 풀어주는 것을 보여주었다. 남자가 투덜대면서 일본어로 “너는 왜 맨날 늦고 그러냐, 너무한 것 아니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여배우가 토끼같은 눈망울로 “미안”하니까 남자가 배시시 웃으며 “그래”하면서 끝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보면서 사랑에 빠지면 사기를 쳐도 용서해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은 오래참습니다”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 누가 오래참으시는 것 같은가? 하나님이 오래참으시는 분이라고 베드로가 소개하고 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먼저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한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이렇게 비웃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온다고 약속한 예수는 도대체 어디 있어? 우리 조상들은 죽었고, 이 세상은 창조된 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면 악한 사람들 심판하셔야지, 전쟁을 일으킨 나쁜 사람들 없애주셔야지 도대체 뭐하고 있으시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들을 향해서 극대노를 하신 적이 딱 한번 있으시다. 그것이 바로 노아시대 때 물로 심판하신 사건이다. 그 당시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들이 하고 싶은대로, 정욕대로 살아가면서 산 위에 방주를 짓는 노아를 비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아를 완전히 바보처럼 여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해도 쨍쨍하고 전혀 장마처럼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은 날이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방주를 통해서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볼 수 있는 산꼭대기에 보여주었지만, 그들은 노아가 배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심지어 홍수가 나서 모든 사람들을 쓸어가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그렇게 세상을 홍수로 멸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이 세상의 하늘과 땅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노아 이후로는 하나님이 더 이상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불로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때에 이 세상은 불로 멸망당할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멸망된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하루가 그저 24시간의 하루로 느껴지고, 천년은 경험해본 적이 없기에 아예 감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고 있지만, 영원하시고 시간의 제약이 없으신 무한한 하나님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하나님은 오래참으시기도 하지만, 심판을 언제든지 내리실 수 있으신 분이시라는 것이다. 노아도 방주를 짓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심판의 때가 곧 다가왔다고 말씀하시면서 40일 만에 완전히 지구 전체를 물로 덮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현재 사는 시간까지 아직 심판을 내리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던 때가 벌써 2천 년 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약속을 까먹은 것일까 아니면 오래 참고 계신 것인가? 우리가 읽은 마지막 절에 이 땅과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주님은 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을 뒤로 미루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심판의 때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래 참으시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만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을 다 이루시고 완성하신 의를 창세 전에 택한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저 세상 밖에 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그렇기에 모두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저 세상 가운데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이다. 그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를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신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세상이 심판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여전히 오래참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오늘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당장에 심판을 내리지시지 않으신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을 지으신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으시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전에 하나님이 파라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면서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집집마다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이 장자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그동안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원망과 불평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백성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때 많은 백성이 물려서 죽어버리게 되었다. 그때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는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모세에게 하나님께 기도드려서 이 뱀들을 없애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실제로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다니까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하시지만, 그럼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끊임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오직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서 사랑에 대한 어떤 개념에 대해서 말해주는 본문이 아니다. 이러한 사랑을 온전히 가능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진짜 이 사랑을 하실 수 있는 분은 누구이신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으시다. 이 본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예수님으로 바꿔서 읽으면 이 본문의 의미를 더욱 깨닫기 쉽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를 닮아가야 하는 것인가? 100% 하나님이시며 100%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살아갈 때, 우리의 성품이 점점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없다. 인간의 얇팍한 감정으로는 한계가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무한하고, 우리가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신 그 사랑을 우리에게 한 없이 베풀고 계신다.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악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일반적으로 내려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내려주시고, 살아갈 수 있는 땅과 하늘과 구름, 자연을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베푸신다. 생각해보라. 만약에 여러분이 아름답게 꾸며놓은 집에 원수를 들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하물며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고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지 않고 지으신 것들을 누리시게 하는 것이 얼마나 한 없이 크신 은혜인가! 그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모두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지옥이 무엇인가? 지금껏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하나도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마지막 때에 심판대 앞에서 한 없이 누구에게나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핑계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우린 다른 어떤 간구하는 기도보다 나를 구원해주신 말도 안되는 은혜를 주셨음에 우리가 기뻐해야할 이유로 이 세상에서는 충분하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이 악해감을 보면서 저들은 언제 지옥가나 하며 분노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한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저들이 돌아오기를 하나님과 함께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은 정말 단순하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믿음달라고 기도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전부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살아가길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