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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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율법과 사랑

본문: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찬송: 468장 큰 사랑의 새 계명을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살면서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인정받을까?”, “무엇을 더 해야 좋은 신앙인이 될까?”, “열심히 교회 다니는데 왜 마음에 확신이 없을까?” 등 이런 질문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고민입니다. 우리는 모두 행위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대해 놀라운 방식으로 답하십니다. 질문을 질문으로 되물으시며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복음의 진리를 들어내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이웃을 사랑해라’, ‘사랑을 실천해라’와 같은 단순한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는 놀라운 자기 계시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시간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은혜와 깨달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율법의 요구는 우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제 함께 본문 25절을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25 NKRV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행위 중심적 사고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질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배움의 자세가 아니라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악한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혜롭게 그의 질문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이 율법교사는 율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고 물으시자, 그는 완벽한 대답을 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27절) 였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면, 온 존재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율법의 완전한 요구입니다.
예수님도 “네 대답이 옳도다”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지식적으로 율법교사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서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강도 만나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피하여 지나간”(31-32절) 것 입니다.왜 그랬을까요? 혹시 시체를 만지면 정결법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도 강도를 당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보다 자신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고, 레위인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장 잘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장작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형식적 신앙의 무서운 현실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직분이 있다고, 신앙의 연륜이 길다고,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해서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때로는 종교적 지식이 많을수록 교만에 빠져 사랑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평신도든 누구이든,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율법교사는 또 자기를 옳게 보이려“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자기 의로움이 숨거 있습니다. 선을 행할 대상의 범위를 제한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가족은 사랑해야지, 하지만 원수까지는 아니지 않느냐”는 식의 계산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로마서 3장 20절에서 말한 대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 율법은 거울 같아서 우리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것을 고쳐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본문 33-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0:33–34 NKRV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오늘 본문 속 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을 한번 잘 살펴보면, 그의 모습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멸시받는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혼혈족”이라 부르며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들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앗수르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로서,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혈통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부정한 존재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을 상종못할 상대였으며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을정도였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사람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고 비웃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신들린 자”, “사마리아인”이라고 모독했습니다(요 8:48). 배척받으시고 이단으로 취급받으셨습니다. 경계 밖의 존재,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핍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33절)고 합니다. 헬라어로 ‘에스플랑크니스데’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사람의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나’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의 깊은 연민을 의미합니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온 존재가 흔들리는 깊은 공감과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예수님의 감정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시고” 느끼신 바로 그 마음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 누가복음에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 느끼신 그 마음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마리아인이 “가까이 가서” 도왔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다, 다가가다’라는 뜻의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성육신을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지켜보시거나 피해서 지나가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된 우리에게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하늘 보좌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의 고통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의 행동을 보십시오. 상처를 치료해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고, 돈을 지불하며 계속 돌보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한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인의 행동을 보면 어쩜 예수님과 그 모습이 똑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율법교사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절)이라고 물으셨습니다.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누가 나의 이웃이 되어주었습니까?”라고 바꾸어 물으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찾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강도와 같은 사탄을 만나 죄로 쓰러져 있을 때, 종교 지도자들처러 자기 의로움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지나쳤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역질문에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차마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답변 속에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비를 베푸신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이웃이십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어주십니다. 아무바램도 없이 그저 있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의 이웃이 되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쓰러져 있을 때, 그 누구도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오히려 율법으로 정죄했을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마리아인처럼 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사마리아인처럼 살 수 없습니다. 은혜로만 가능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한계를 드러낼 뿐이지만, 예수님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우리는 참된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보고, 우리가 가진 것으로 섬기는 삶을 함께 살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의 열매 자비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율법이 아닌 은혜로,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어주셨음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았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자비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율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은혜로만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시고 이 거룩한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먼저 우리의 이웃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구원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제 우리도 그 은혜에 감사하여 우리의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신 [이름들을 부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의 마음을 축복해주옵소서.
감사헌금을 드리신 [이름들을 부름] 받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기뻐 받아주옵소서.
선교헌금을 드리신 [이름들을 부름] 복음 전파에 동참하는 귀한 마음을 축복해주옵소서.
생일감사헌금을 드리신 [이름들을 부름]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을 기뻐 받아주옵소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 봉사로 섬기신 모든 성도님들, 각자의 정성과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그 마음을 기뻐 받아주옵소서.
하나님, 이 모든 헌금이 율법적 의무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한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감사와 헌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마리아인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기쁨으로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이 헌금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는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삶을 축복해주옵소서. 농사일로 수고하시는 성도님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치료해주옵소서. 가정의 평안을 주시고, 자녀들과 손자녀들을 축복해주옵소서.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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