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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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잘못

오늘 본문말씀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율법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 지난 주 21장 말씀에서 마지막 35-36절 말씀에
Exodus 21:35–36 NKRV
이 사람의 소가 저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살아 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반으로 나누고 또한 죽은 것도 반으로 나누려니와 그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줄을 알고도 그 임자가 단속하지 아니하였으면 그는 소로 소를 갚을 것이요 죽은 것은 그가 차지할지니라
한 사람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받아 죽이면, 그러니까 일종의 교통사고가 난거죠. 교통사고가 났는데 정말 어쩔 수 없이 난 사고일 경우에는 그걸 받친 사람도 같이 나눠서 감당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받친 사람이 억울해보일 수도 있는데, 소는 자동차랑 다르게 사람이 잘 컨트롤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이런 우연한 사고일 경우에 받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소도 똑같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으니까 함께 나눠서 해라, 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그 다음 말씀인 36절에는, 받는 버릇이 있는지 알고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으면, 그러니까 확실하게 들이받은 소의 주인의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온전히 배상하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두가지 말씀의 차이가 뭘까요? 첫번째 35절 말씀은 완전히 부지 중에 일어난 일, 그러니까 전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일어난 “사고”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겁니다. 의도도 하지 않았고, 직접적으로 저지른 것도 아니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범하는 “죄”가 아닐 때에는 함께 그것을 감당해라, 라는 말씀이구요,
두번째 36절 말씀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버려둔 것, 그러니까 직접적인 “잘못”이 그 주인에게 있는 경우인데, 다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딱히 들이받을 의도는 없었기 때문에 잘못은 있지만 심각한 “죄”라고 불릴 법한 것은 아니기에 홀로 배상을 하되, 즉은 것은 가져가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죄는 마음과 행동

굳이 지난 주 말씀을 다시한번 살펴본 이유는요 그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과 아주 대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1절에는 지난주 말씀 마지막 부분처럼 다시한번 소에 대해서, 즉 재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요,
Exodus 22:1 NKRV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만약에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해서 잡거나 팔면, 소는 다섯 마리로 갚고 양은 네 마리로 갚아라 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저희가 살펴본 두 가지 경우, 사고와 잘못과는 다르게 명백하게 의도적이고, 직접적으로 행한 것이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저지른 명백한 “범죄”입니다.
또한 2-3절을 보시면,
Exodus 22:2–3 NKRV
도둑이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면 피 흘린 죄가 없으나 해 돋은 후에는 피 흘린 죄가 있으리라 도둑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둑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늦은 밤에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이면 살인죄가 없다, 정당방위다 라는 말씀을 하면서 해 돋은 후에는 살인죄가 있다, 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가로등도 없어서 밤이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도둑이 들면, 이사람이 칼을 들고 날 죽이려고 하는지, 아니면 맨 몸으로 와서 물건만 훔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그 때에 그 도둑을 죽인 사람에게는 정당방위가 설립되는데,
해가 뜨고 모든게 훤히 보이는 때에 그를 죽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손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죽인 것이기 때문에 비록 도둑이라고 할 지라도 죽여선 안된다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도둑을 죽인다는 것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아닌데 죽인 것, 그 마음 가운데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때의 살인은 살인 “범죄”입니다.
모세 율법은 사람간의 재산에 관한 문제에서 크게 세 가지의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고 직접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은 것, 즉 마음도 행동도 없는 “사고”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행동은 저지른 “잘못”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마음과 행동이 함께 일어난 “범죄”로 나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배상해야하는 것은 바로 마음과 행동이 함께 동한 “범죄”입니다.
범죄는 그냥 훔친 것 그대로 돌려주는 것으로는 갚을 수 없습니다. 도둑질의 경우처럼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그 마음 가운데 죄악된 마음을 가지고 죄를 범하는 행동까지 했을 경우에는 무조건 갑절로 돌려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많은 사고를 경험하고, 잘못을 저지로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마음과 행동이 함께 나타나는 “범죄”는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냥 예수님께 “죄송합니다 쏘리! 용서해주세요!”하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갑절”의 선한 마음과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Luke 19:8 NKRV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는 예수님께 “만일 제가 다른 사람을 속여서 돈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로 갚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입니다. 만일 저희가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한 “범죄”가 있다면, 그것의 갑절로 갚아나가겠다고 회개하고 다짐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오늘 본문말씀은 또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법 조항에 대해서 잘 드러납니다. 7-8절 말씀을 보시면
Exodus 22:7–8 NKRV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 집에서 도둑을 맞았는데 그 도둑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도둑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어떤 사람이 돈이나 물건을 이웃에게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그 물건을 도둑맞았을 때 도둑이 잡히게 되면 갑절을 배상하라고 하는데, 만약에 도둑이 안 잡히면 혹시나 맡은 사람이 훔쳤을 수도 있으니까 재판장 앞에서 훔쳤는지 안 훔쳤는지 조사를 받아야한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말씀이 굳이 언급된 이유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잠깐 이웃한테 맡아달라고 했는데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고, 맡아준 사람은 자기가 잠깐 맡아줬는데 누가 훔쳐가버린 거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조사를 잘 해서 부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구요,
9절말씀도
Exodus 22:9 NKRV
어떤 잃은 물건 즉 소나 나귀나 양이나 의복이나 또는 다른 잃은 물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양편이 재판장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만약에 두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이건 내꺼야”라고 서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재판장 앞으로 가져가라, 라고 하는데요,
앞서 본 두 구절이나 여기에 등장하는 이 재판관이라고 하는 단어는 사실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는 단어로 원래는 주로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할 때 쓰이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저와 함께 살펴본 출애굽기 18장 말씀에서도 등장했지만 원래 모세가 백성들을 재판을 했고, 그 사건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는 이드로의 제안이 있었죠? 그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재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여겨졌습니다.
Exodus 22:28 NKRV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그래서 본문말씀 28절에도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라는 말씀이 이 재판장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재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더 모독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리 말하면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하라, 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해지는 재판은 그것을 아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억울한 사람이 없게, 또한 공정하게 재판이 이루어져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재판관 위에 계십니다. 시편 82편 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Psalm 82:1 NKRV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진짜 다른 신들이 있어서 그들 가운데 서신다는 말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대리인인 모든 인간의 재판관들보다도 하나님께서 위에 계시며, 또한 그 재판관들 조차도 하나님께서 공정하게 재판하시는 엘로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는 백성들은 단 한명도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리거나 억울하게 물건을 빼앗기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단 한 사건을 재판하더라도 공정하게, 하나님 앞에 공평하고 선한 방법으로 사람의 시시비비가 가려져야합니다.
저희가 살면서 사람들간에 가려야할 시시비비가 있습니다. 꼭 민사 재판 형사 재판이 아니더라도, 이것이 누구 것이냐, 누구의 잘못이냐 등등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통 저희들의 생각으로 마음대로 정할 때도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가장 으뜸이 되시는 재판관이고 가장 공정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겉모습이나 감정이나 내 마음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보아야합니다. 혹여 저희가 사람들 간의 일 가운데서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공정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는일일까?” 고민하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낮은 자들을 보호

마지막은 공동체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본문말씀 21-27절에는 다양한 형태의 낮은 자들, 달리 말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등장하는데요,
먼저 이방 나그네, 다른 말로 외국인에 대해서는 “너희도 이집트에서 외국인이었으니 외국인들을 압제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구요, 과부나 고아, 스스로 돈을 벌 수 없고 힘도 없는 이들을 해하지 말라, 혹시라도 그들을 해하려 했다가는 내가 너희 아내를 과부로 만들고, 너희 자녀를 고아로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자들이 돈을 꾸어달라고 하면 이자도 받지 말고, 당시에 다른 민족 국가들은 20-50% 정도의 이자를 받았다고 해요. 그런 일반적으로 받는 이자도 받지 말고, 만약에 옷을 담보로 받았으면 밤이 되기 전에 돌려줘라, 그게 전 재산인데 그거 빼앗겠느냐? “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27절에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이시기도 하십니다. 도둑질하고 훔친자에게는 반드시 갑절로 갚게 하시지만, 반면에 먹을 것이 없는 자들을 반드시 돕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들어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는 판결도 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는 때리거나 죽이거나 하는 범죄가 아니더라도, 그런 취약한 사람들을 울부짖게 만들면 그것을 죽을 죄라고 정하십니다.
“언더 도그마”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약자가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라고 하면서 약자라고 다 도와주는 건 잘못된 것이다, 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요즘에 특히나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약자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고 해서 약자를 돕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그 마음 가운데 품는 사람들입니다. 공동체에서 약한 지체를 돕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주변에 연약한 지체들을 아낌없이 도울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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