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힘은 작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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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가 힘은 작으나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13절
[서론]
제가 영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가지고 있던 돈이 다 떨어져서 학비를 못낼 지경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져서 당시 다니던 영국교회의 하우스 모임에 기도제목으로 나누었습니다.
솔직히 누가 제 등록금을 내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저 가장 절실한 기도제목이었기에 내놓았을 뿐입니다.
저는 학비를 낼수 없자 교장을 찾아가 장학금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학점도 안 좋으면서 장학금을 요구하는 객기를 부린 것입니다.
그러자 교장이 하는 말이 돈 없으면 휴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너무 서운하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 사물함에 갔는데 어떤 영수증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누군가 제 학교 등록금을 다 냈다는 영수증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누가 그랬을까 한 학기 내내 궁금했습니다.
그 한 학기가 다 지나고 나서야 영국 담임목사님을 통해 그 분이 누군지 알수 있었습니다.
제 학비를 내준 사람은 우리 하우스 그룹의 리더분이셨습니다.
이 분이 어떤 분이냐면 교회 올때 슬리퍼를 신고 오셔서 ppt를 담당하던 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보잘것 없어 보이는 분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분은 장로를 두번이나 도전했다가 떨어진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실하게 교회를 섬기던 분이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연약하고 보잘것 없어 보여도 그 안에 숨겨진 믿음이 있을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국교회가 외형은 작아지고 약해진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제 삶으로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영국에 가기 전까지 영국교회가 거의 죽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교회가면 죄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서 경험해보니 달랐습니다.
아마 영국교회를 직접 경험해본 분들은 대부분 이런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반면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우리 한국교회처럼 단기간에 이례없는 성장을 경험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각 교단별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는 모두 한국에 있을 지경입니다.
편의점보다 교회 수가 더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교회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실력은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언론, 정부, 국회의원들중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집단이 국회의원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그들보다 더 낮았던 때가 있습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는 상태가 바로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두 종류의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두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 교회들을 통해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먼저 사데 교회가 등장합니다.
사데 교회는 사데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인데, 왜 도시 배경이 중요할까요?
주님께서 그 지역의 특성을 아시고, 교회의 영적 상태를 그것과 연결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데는 고대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삼면이 450미터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로 불렸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스스로 안전하다고 자부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차례나 적군에게 기습을 당해 함락된 역사가 있습니다.
성벽만 튼튼하다고 방심하다가 경계에 실패해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은 교만과 방심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사데는 양모, 모직, 염색 산업이 발달해서 매우 부유한 도시입니다.
사금이 많이 나와서 황금의 도시로 불렸고,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한다는 ‘마이다스의 손' 신화도 여기서 유래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외적으로 화려하고 부유했던 도시의 분위기는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 결과 교회도 사람들 눈에 보기에는 크고, 활기가 넘쳐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진단은 정 반대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3:1)
이 말씀은 겉으로 보기엔 사데교회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적 생명이 사라진 ‘식물인간같은 교회’, ‘좀비같은 교회’라는 뜻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이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도 많잖아요.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건강검진해보면 병이 깊어져 있는 경우 말입니다.
자신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방심할때 병은 더 치명적인 상태가 됩니다.
사데교회의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그럼 주님이 사데 교회가 죽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히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2절입니다.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사데 교회는 행위는 있지만 그것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형식과 외형은 있지만 내용과 생명이 없다는 뜻이죠.
말씀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고 순종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4절에서는 그 힌트를 더 주십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 만 남았다고 하시거든요.
'옷이 더럽혀졌다'는 것은 죄와 타협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데 도시는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와 물질주의, 쾌락주의가 만연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거룩함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을 지켜야 할 자리에서 물들어버린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서는 예배를 드렸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의 논리와 방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랐던
것이죠.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져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살아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죽어있는 교회가 바로 사데 교회입니다.
그럼 죽어가는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처음 배웠던 그 가르침을 되새겨기고, 굳게 지키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가르침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가지 동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되새기고, 굳게 지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순종으로 그 말씀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회개를 통해 삶이 변화되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게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십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도둑같이 임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사데 성이 두 차례나 함락된 것도 모두 깨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은 든든해 보여도 경계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교회다닌다고 모두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닙니다.
삶에서 거룩과 순종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겉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어가는 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되새기고, 굳게 지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기본에만 충실해도 주님은 우리를 이기는 자로 세워주십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 주시고, 생명책에 그 이름을 지워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데 교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정말 살아있느냐?, 겉으로만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니냐?’
오늘 이 물음 앞에 정직하게 대답하며 깨어있는 교회와 이기는 성도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를 위해 빌라뎀비아 도시를 알아봐야 겠습니다.
빌라델비아 도시 자체가 크지 않습니다.
지진이 잦은 지역이라 큰 지진으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적이 있는 곳입니다.
그로 인해 재건되기를 반복하며 늘 불안정한 곳입니다.
그래서 도시가 융성하지 못했고, 약 4000명 정도만 거주하고 있는 소도시입니다.
화려한 사데 도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초라한 규모입니다.
당연히 교회도 매우 작습니다.
8절에 보시면 ‘네가 힘은 적으나’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적으나’라는 단어가 쓰인 신약성경을 찾아보면 예수님이 겨자씨 비유하실때 등장합니다.
그만큼 겉보기에는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작은 교회에 대해 주님이 단 한마디도 책망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순결함과 충성을 칭찬하십니다.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상숭배를 거부했습니다.
핍박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며 고난을 견뎌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데 교회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살아있고, 번듯해 보였지만 죽은 교회였습니다.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작고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데 교회는 책망하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께는 충성스럽고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 교회가 지향하며 나아갈 교회는 어느 교회일까요?
사람들 눈에 번듯해 보이지만 죽어가는 사데 교회일까요?
아니면 작지만 말씀을 지키며 믿음을 굳게 붙드는 빌라델비아 교회일까요?
저는 우리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더라도 강한 교회, 살아있는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12절입니다.
이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도 그 사람 몸에 새겨주신다고 하십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늘 흔들리던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안정한 땅 때문에 늘 집을 버리고 피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에 굳건한 기둥으로 세워주겠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성전의 일부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속한 자, 결코 잃어버려지지 않을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눈은 때로 외형을 더 크게 봅니다.
하지만 주님은 작은 교회라도, 작은 능력이라도 그 속에 말씀을 지키고 충성하며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사람들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기둥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흔들림 속에서도 말씀 붙들고 순종하며 인내합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두 교회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데 교회는 사람들 눈에는 살아 있는 교회였지만, 주님 눈에는 이미 죽어 있는 교회였습니다.
반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주님께는 말씀을 끝까지 지키는 살아 있는 교회였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영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영국 교회가 거의 죽어가는 교회라고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작고 연약해 보여도 말씀을 붙잡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살아 있는 신앙의 저력을 보았습니다.
하우스 그룹 리더님처럼 겉으로는 소박해 보였지만 속은 성령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반면 우리는 종종 한국 교회를 자랑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있고, 성도 수와 외형으로 보면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겉은 화려한데 속은 병들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보다 세상의 기준을 더 의지하고,
예배당 안과 밖이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모습은 없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이름만 살아 있는 교회인가? 아니면 적은 능력이라도 끝까지 말씀을 지키는 교회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화려한 외형보다 내 마음 중심과 삶의 순종을 보십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깨어라! 되새기고, 굳게 지키고, 회개하라!”
결국 해답은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복음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되새기고, 그 말씀을 삶으로 지켜내고, 하루하루 회개하며 거룩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길 바랍니다.
작아도 괜찮습니다.
적은 능력이라도 괜찮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며 주님을 끝까지 붙잡는 교회.
그런 교회를 통해 주님은 흔들리는 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 같은 사람들을 세워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삶이 이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기를 축복합니다.
내 이름 하나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사람, 사람들이 보기에 작고
초라할지라도 주님 보시기에 ‘이기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너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나의 말씀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너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내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