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율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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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대로
집안 대대로
저는 참 어렸을 때부터 저희 아버지한테 들어왔던 말이 있는데요, 바로 “너는 이 집안의 6대째 신앙인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제 아버지의 외할머니의 외할머니로부터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을 오셔서 복음을 전하고, 그 가정에 복음이 전파되고, 또 그 딸들이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을 오셔서 복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아버지도 본적 없는 세대로부터 지금까지 저희 집안에 복음이 전파되어온 가정을 설명해주시곤 했는데요, 어렸을 때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느낀 것이 참… 쓸데없는 소리를 하신다 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그렇게 믿음이 좋지 않았어서 그랬죠.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씀 안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행한 역사와 세계사 한국사 할 때의 그 역사도 포함된 정말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담겨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소위 “큰 집”이라고 불리는 제 당숙이 계신 집안이 완전 불교집안이었어서 “큰 집”만 가면 다른 가족들은 제사를 드려서 그 제사 끝나고 제삿상을 먹은 것도 기억이 나는데요, 그 집안에도 결국에 복음이 전해지고 그 안에서 집사님, 권사님이 세워지기도 하는 등, 집안과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신앙에는 그 나름의 믿음의 역사가 크게 작용하는 구나, 라는 것을 저희 집안의 내력을 통해서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 성경과 오해 시리즈 두번째 말씀은 바로 유대인들에게 그 민족 대대로 이어져온 신앙과 말씀, 자녀에게서 또 그 자녀에게로 먼저는 입으로 전했고, 후에는 글로 전해온 말씀인 바로 “모세의 율법책”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모세의 율법책 = 토라
모세의 율법책 = 토라
먼저 본문말씀 1절 말씀을 살펴보면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나서 일곱달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에게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와달라고 청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책이라고 등장하는 단어가 오늘의 말씀의 제목이기도 합니다마는, 대체 무슨 책이었을까요?
성경에서 저희가 흔히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 책이 있죠. 바로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권의 책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다섯권의 책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요, 바로 토라(תּוֹרָה)라고 하는 말입니다.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Chapter 8
סֵ֨פֶר֙ תֹּורַ֣ת מֹשֶׁ֔ה
방금 저희가 본 “모세의 율법책”이라고 하는 말의 히브리어 단어를 보시면 “쎄f페르 토라 모쉐”라고 부르는데요, 모세의 토라책입니다.
기록 전승
기록 전승
그럼 토라, 모세율법, 모세오경이라고 불리는 이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올 수 있었을까요?
저희는 먼저 언제 가장 처음 모세의 율법“책”을 “기록”하기 시작했는지 알아봐야합니다. 가장 먼저 글자의 형태로 율법을 기록하기 시작한 때는 모세의 때가 아니라 바로 다윗 왕조의 출범 때였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사울이 죽고 나서,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두번째 왕이 됩니다. 바로 그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기 시작할 때 여러 사람들을 임명하는 장면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그중에 사관이라고 하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쯔키르(מַזְכִּֽיר)라고 합니다. 이 마쯔키르는 “기억하다”라는 뜻의 짜카르(זָכַר)라고 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어서 “기억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서 국가를 세웠는지에 대한 민족의 기억, 다른 말로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구전 전승
구전 전승
그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록다운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늘 새벽기도 나오신 분들은 “어라? 모세가 기록했다고 한 것 같은데?”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네, 모세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을 했다, 라고 출애굽기에 등장하지만, 이것은 자신들의 역사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기록은 아니었습니다.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율법을 기록했던 목적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기위한 일시적인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식물 섬유로 만든 파피루스나 가죽에 쓴 기록들은 도서관 같은 곳에 일부러 “잘 보관”하지 않으면 부패하고 썩어서 파괴되기 쉬운 성질을 가졌습니다. 가뜩이나 그런데 광야를 돌아다녔으니 더 빨리 없어지기 쉬웠겠죠.
그래서 자신들의 기억, 자신들의 역사,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셨다는 내용을 보존하고, 잘 알고 싶으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막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을 전해주시는 내용인데요, 내용인 즉슨 “아빠! 저희가 유월절을 지키고 항상 첫 가축의 새끼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가 뭐에요?”라고 물으면 “아들아, 하나님게서 우리가 노예로 있던 이집트에서 우리를 구원해내셨기 때문이란다”라고 전하라는 내용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물어볼 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부지런히 자녀에게 가르치고 강론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역사인 것이죠. 그것을 저희는 말로 계승한다고 해서 “구전 전승”이라고 부릅니다.
나중에 조금 더 알아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전 전승은 언제 시작 되었느냐, 그 시기를 대략 족장 시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는 유목민 족장 시대 때부터인데, 이 고대 시대에는 원래 글을 쓰기 보다는 그렇게 말로 자신들의 조상과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말로 전하는 것이 굉장히 보편적이고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글을 쓰는 건 주로 한 곳에 정착해서 나라를 이룬 사람들 중에 특별히 왕이나 귀족 학자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족장 시대 때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옛날 옛날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우르에 살고 있었어요~”하는 형태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러다가 출애굽을 하게 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한 민족의 구전 형태를 띠었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사사 기드온이 온갖 이방 민족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묻는데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구해내셨다고 전해주지 않았습니까!”라면서 이 시기에도 조상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개혁
신명기 개혁
정리하자면, 아브라함때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처럼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서 전해지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단다”라는 구전 전승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스라엘 왕국을 제대로 세운 다윗 왕조에 이르러서 문자와 글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모세의 율법책을 처음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꽤나 잘 보존되고, 다듬어져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8살에 남 유다 왕국의 왕이 되어서 31년간 다스린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을 보수할 때에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요시야 왕이 대제사장이 건네준 그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으며,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라고 이야기하며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감행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요시야가 읽은 책이 아마도 신명기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을 합니다.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먼저는 요시야 왕이 자신들이 이전까지는 죄를 지었던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세우게 되는데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신명기에 등장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 생활을 마치고서 하나님과 언약을 다시 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그리고 특히 중요한 것이 요시야 왕은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 이외의 유다 곳곳에 퍼져있는 산당들을 제거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제사”드리게끔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만이 제사드리기 합당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제 막 애굽에서 나와서 하나님이 계실 곳으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는 광야에서 이동하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성막을 짓지만,
신명기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한 곳을 택하셔서 거기서 제사를 드리게끔 할 것이다, 다른 말로 “이동하지 않는” 성전을 암시하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이 신명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더 드러나죠.
이것 말고도 굉장히 구체적인 부분에서 모세 오경중에서도 특히 신명기의 말씀들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이 발생을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못해도 요시야 왕 시대 때에는 오늘날 저희가 읽는 “신명기 일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아직까지 “이 발견한 책의 말씀”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 민족이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할 완전한 율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에 대한 지침서이자, 특히 다시금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게 하는 “성전의 언약의 책”이었습니다.
포로기 제사 중심 전통
포로기 제사 중심 전통
왕정 시대가 다 지나간 이후에는 바벨론 포로기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완전히 근본부터 뒤집어 엎어버리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바로 그 장소, “성전”이 무너져버린 사건이죠.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요? 얼마나 다시 기억하기도 싫을 법한 사건이었을까요? 오늘날로 따지면 저희 교회가 폭삭 무너진 수준이 아닙니다. 전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가 그냥 하루아침에 다 전쟁으로 무너져내리고 외국으로 포로로 끌려간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절망적이고, 얼마나 “하나님이 전쟁에서 지셨다”라는 생각이 그들 머릿속을 지배했을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바벨론 포로기 때 신앙을 각성합니다. 막 부흥회처럼 뜨거운 신앙의 부흥이 일어났다기 보다는 “언젠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셔서 가나안 땅에 들이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다시 우리의 고향으로 돌려보내실거야”라고 이방 땅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킬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특히 바벨론 포로기에는 성전이 무너진 상황에서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합니다.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에스겔이 제사장이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에스겔이 전하는 말씀 중에는 특별히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등장하는 제사와 성결에 대한 규례를 연상시키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며
예를 들어서 이 말씀에는 내 규례대로 재판하고, 절기를 지키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이 등장하는데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도 이러한 말씀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하나님의 규례 대로 판결하라는 민수기 말씀과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매번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라는 어제 새벽기도때 읽은 말씀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레위기 말슴까지, 이 시기에도 또한 모세 오경을 기록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 때에 특히 이방 사람들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 즉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살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성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다르게 따로 구별된 민족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이것을 레위기에서도 또한 너희가 나에게 거룩한 백성, 즉 다른 이방족속과 만민 중에서도 너를 특별히 구별했다는 말씀으로 바벨론의 제사장들은 오경을 적어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바벨론의 포로기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까지 유대인들은 낯선 이방 땅에서 낯선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조상에게서 들어온 이야기들, 그리고 왕정 시대에 조금씩 쓰여져온 자신들의 역사책들, 요시야 때 성전을 개혁했던 언약의 책이었던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기록이 이제는 이방인들과도 구별되고 오직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남녀노소 유대인이라면 지켜야하는 모세의 율법책으로 차츰차츰 완성되어갔습니다.
성취된, 지켜나갈 모세의 율법책
성취된, 지켜나갈 모세의 율법책
그리고 마침내, 오늘 본문말씀에서 등장하는 장면의 시점까지 오게됩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제사장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나옵니다.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는 모든 유대 백성들 앞으로 그 모세의 율법책을 들고 나갑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수문 앞 광장이라는 곳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스라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율법책을 읽게됩니다. 백성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에스라가 읽어주는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는 특별히 오늘 하루를 위해서 만든 나무 강단 위에 섰고, 그 오른쪽에 6명, 왼쪽에 7명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높은 나무 강단위에 서있었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다 그가 책을 펴는 것을 볼수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에스라가 책을 펴는 순간 모든 백성들이 일어섭니다.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리고 모세의 율법책을 펼친 에스라가 외칩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에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고서는 모두 얼굴이 땅에 닿을때까지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어요~”라고 했던 전래 동화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구원하셨단다”라고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우리 민족이 이렇게 왕국을 세울 수 있었어”라고 했던 민족의 역사서였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합니다”라고 했던 언약의 말씀이었으며, “우리가 포로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셨고 다시금 우리를 고향 땅으로 돌려보내주실 거야”라고 읽었던 모세의 율법책이 성취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앞으로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지켜나갈 유대인의 정경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사 속 이야기, 이야기 속 역사
역사 속 이야기, 이야기 속 역사
흔히 모세오경을 비롯한 성경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이해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이야기”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는 성경이 꾸며낸 이야기, 즉 소설이나 다름없다, 허무맹랑하다, 그 안의 내용은 믿을 가치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대해서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런 편견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기록한 것,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섭리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해내신 문자 그대로의 “역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가 함께 살펴본 모세오경은 어떻습니까? 꾸며낸 소설같은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정말 수천년전 모세 라고 하는 한 인물이 써내려간 “역사”입니까? 분명한 것은 모세오경은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고, 사실만 기록한 역사도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특히 오늘 살펴본 모세의 율법책은 역사 속에서 쓰여진 이야기고, 이야기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입니다.
역사 속에서 쓰여진 이야기란 기원전 2천년 전의 아브라함-이삭-야곱이라고 하는 족장 시대 때부터 성벽 재건 후 까지 정말 실제로 있었던 역사 속 아주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며 써내려갔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이야기 속 역사란 모세의 율법책이 완벽한 사실을 담아낸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이야기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언약과 사랑과 섭리가 나타나는 역사가 담겨 있어서 읽는 중에 오늘날 우리의 역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 그대로의 역사도 아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한 에스라는 아마 히브리어로 읽었겠죠? 그런데 아마 함께 듣던 백성중에는 이미 너무 오랜기간 동안의 포로 생활 때문에 히브리어를 알아듣지 못한 백성도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그래서 에스라 옆에 있던 13명의 사람들은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을 통역해서 전해주었고, 백성들이 그것을 다 깨닫게 되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포로로 잡혀있던 과거에서 돌아온 자신들을 떠올리며 감동을 받았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들을 들을 때에는 그렇게 살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거를 후회했을 겁니다. 우상숭배하고 “가나안땅에 못들어가겠어요”라고 말한 죄 때문에 광야를 헤매면서 벌을 받던 백성들을 보면서 더욱더 그러했을 겁니다. 마지막에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켜 행하십시오”라고 했을 때에 “아멘! 그리 하겠습니다”하고 다짐하면서 펑펑 울었을겁니다.
사실을 적은 역사도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 말씀을 듣는 모든 백성들에게 모세의 율법책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본문말씀 5-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모세의 율법책을 읽은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경을 역사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멘으로 응답하고, 말씀의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