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 내려놓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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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가랴 5:1-11
설교제목: 계산기, 내려놓으시겠습니까?
[서론]
얼마 전, 제가 아는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배당을 지을 때 설계도대로 짓지 않아, 일부가 불법 건축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 직원이 불시에 찾아와 해당 부분을 철거해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교회 안은 곧바로 둘로 나뉘었습니다.
“법대로, 빨리 철거하자”는 쪽과, “그냥 벌금만 내고 쓰자”는 쪽이 맞섰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 그 교회만의 일이 아님을 압니다.
어떤 대형교회조차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놀랍게도 양쪽 모두 결정의 기준은 같았습니다.
‘비용’이었습니다.
“철거하면 얼마나 들까?” vs “벌금은 얼마일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계산과 이익이 먼저였습니다.
구청 직원이 이런 푸념을 했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드론까지 띄워 불법 건축물을 단속하는데, 걸리는 곳이 교회가 그렇게 많아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교회조차 자신들의 편익과 비용을 기준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세상이 정한 법대로만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불법은 양심에 걸려 잘 안하지만, 편법은 “그 정도야 괜찮지” 하며 합리화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의 중심에는 대개 ‘내 이익’이 자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요?
[본론1]
오늘 본문은 스가랴서에 나오는 여덟 가지 환상 중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환상입니다.
여섯 번째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일곱 번째는 뒤주 속 여인의 환상입니다.
우리에겐 낯설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백성들에게는 강력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왜 주님은 이런 환상들을 스가랴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이 여덟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먼저 당시 상황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 그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성전은 초라했고, 주변 민족들의 방해로 건축은 중단되었습니다.
가뭄과 경제난까지 겹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적으로 무기력해졌고, 기대와 너무 다른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결국 성전 건축은 16년 동안 멈췄습니다.
예배와 헌신은 형식만 남았고, 사람들은 자기 집을 짓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 몰두했습니다.
그럼 왜 성전 건축이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이 집이신 분입니다.
성전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백성과 함께하신다는 언약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무너진 채 방치된다는 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자, 거룩한 삶을 지켜내는 구심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환상을 통해 성전 건축을 재개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여섯 번째 환상, 날아가는 두루마리입니다.
길이 20규빗, 너비 10규빗, 약 9m × 4.5m 크기입니다.
아파트 3~4층 높이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두루마리는 보통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크게 만드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볼수 있도록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숨김없이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두 가지 죄에 대한 심판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도둑질하는 자, 다른 한쪽에는 거짓 맹세하는 자가 끊어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도둑질은 십계명 제8계명, 거짓 맹세는 십계명 제3계명에 해당합니다.
도둑질이 이웃과의 관계를 무너뜨린다면, 거짓 맹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그 당시 백성들은 영적으로 무기력했고, 율법은 더 이상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도둑질과 하나님의 이름을 판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죄악에 대해 공개적으로 심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건물로서의 성전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백성들의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살곳이 필요해서 혹은 더 많은 예배를 받기 위해 필요로 하신게 아닙니다.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기도, 헌신은 모두 거룩한 삶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거룩한 삶을 단순히 예배 많이 드리고, 기도 많이 하고, 말씀 많이 읽고, 교회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은 단지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떤 죄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위협하고 있을까요?
“도둑질, 거짓 맹세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도둑질의 본질은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와 생명을 침해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무심코 이런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의 일부를 빼앗는 것과 같습니다.
직장이나 공공의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욕심 때문에 남의 기회를 빼앗는 것도 그렇습니다.
거짓 맹세의 본질 역시 단순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심과 계획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는 것
-기도를 거래처럼 여기는 것
-잘못을 덮기 위해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포장하는 것,
모두 거짓 맹세입니다.
이 모든 것의 뿌리는 같습니다.
하나님 대신 ‘나’를 주인 삼는 자기 중심성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마음을 심판하십니다.
[본론2]
여섯 번째 환상이 죄를 드러낸다면,
일곱 번째 환상은 죄를 제거하는 장면입니다.
일곱 번째 환상인 ‘뒤주 속 여인’입니다.
여기서 ‘뒤주’는 히브리어로 에바, 곡물을 저장하는 큰 용기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 속 에바 안에는 곡식이 아니라 한 여인이 들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평범한 생활도구를 환상에 등장시키셨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특별한 사람, 특별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깊이 스며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죄책감조차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 여인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천사는 그 여인이 죄악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인은 죄악 그 자체이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바벨론을 상징하는 음녀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여인을 에바 속에 넣고, 무거운 납뚜껑으로 봉하십니다.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여인이 날개를 펴고, 그 에바를 바벨론 땅으로 옮겨갑니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의 중심지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신전을 세워, 죄악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완전히 가두십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서 죄를 철저히 제거하시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성전이 성전답게 서려면, 그 안에 죄가 자리 잡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백성들이 죄를 멀리하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스가랴 1장 3절 은 스가랴서 전체의 핵심입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의 마음은 회개한 백성을 향한 회복입니다.
백성이 진심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옮기시고, 죄의 지배에서 해방시키십니다.
이 장면에서 또 하나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9절에 나오는 ‘바람’입니다.
뒤주 속 여인을 바벨론으로 옮기는 여인들이 일으킨 이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즉 성령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납뚜껑으로 덮인 무거운 용기는 사람의 힘으로는 옮길 수 없습니다.
죄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결심과 의지만으로는 결코 이 무거운 죄를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이 불면, 그 죄는 반드시 떠나갑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죄 제거 사역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 성령께 우리의 죄를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고, 말씀과 양심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죄를 드러내고 회개로 이끄십니다.
말씀 묵상과 설교를 통해 마음을 열고, 깨달은 죄를 즉시 돌이키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혼자서는 죄와 싸우기 어렵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통해 권면과 도움을 주십니다.
말씀 나눔, 기도 모임, 성경공부 안에서 죄의 힘이 약해집니다.
성령은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든 죄,
습관처럼 반복되는 자기 중심성과 타협,
겉으로는 감추었지만 속을 무겁게 짓누르는 죄를 제거하십니다.
그 과정이 때로는 불편하고 아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이자 사랑의 손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성령의 충만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에 순종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론에서 우리는 한 교회의 불법 건축 문제를 들었습니다.
그 결정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비용’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기준이 바뀔 때가 있습니다.
말씀보다 계산이 앞서고, 하나님보다 내 편익이 먼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의 마음과 삶의 기준은 여전히 바벨론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뿌리 깊은 죄악이 일상의 한복판에서 계속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스가랴서의 두 환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두루마리를 통해 우리의 숨겨진 죄를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뒤주 속 여인을 옮기듯, 그 죄를 공동체 밖으로 제거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은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가능합니다.
성전 건축은 단지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기준으로 거룩하게 세워지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전은 더 이상 돌로 지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 자신과, 그 몸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참된 거룩의 성전을 세우십니다.
그 성전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오늘도 세워져 갑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성전 건축임을 깨닫고
그 성전을 세워나가는 함께걷는교회 식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