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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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태복음 1:17
성경본문 : 마태복음 1:17
마태복음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설교 본문
설교 본문
서론 / 결론 :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다.
서론 / 결론 :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다.
구원과 구속의 차이
구원과 구속의 차이
오늘 본문은 단지 족보를 정리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인류 역사 속에서 계획되고 진행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구속의 역사로서 성경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구원과 구속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선물임에는 동일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구원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죄에 대한 구원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을 환난으로 부터 구하시는 것도 구원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정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구해내는 모든 활동을 구원이라 한다.
이게 반해 구속에는 명확한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죄와 사망이다.
모든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지게 되었으며, 죽음의 값을 치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속은 우리를 이 죄와 사망으로 부터 건져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개념은 대속이다.
대속이란 대신 값을 치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아무 대가 없이 건져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대신 값을 치루셨다는 것이다.
구속은 이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되는 좀더 구채적인 단어이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계획과 실행을 기록한 역사입니다.
이것을 구속사, 즉 오늘 설교 주제인 구속의 역사라고 한다.
담임 목사님이 안식월을 가지시는 8월 한 달간 7번의 새벽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이 구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먼저 오늘은 구속사의 전체적은 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구속사를 다루기 위해서 가장 먼저 다루어야한 것은 성경이 역사 기록이라는 점이다.
1. 성경은 역사입니다.
1. 성경은 역사입니다.
성경을 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성경을 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성경을 지어낸 신화로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경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 것이 성경이 문학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가 높아진다고도 말하며,
심지어 예수가 실존 인물인지로 갑론 을박하기도 한다.
성경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여부보다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도움을 주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기도 하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기도 하지만 성경을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로 보는 사람들이다.
성경 속에 기록된 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들은 7일만에 세상이 창조되고, 홍해가 갈라지며,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가 역사 가운데 있었던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삶에 필요한 교훈을 성경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사실이기에 삶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여 살아간다.
성경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역사인가?
그렇다면 성경은 왜 역사인가?
성경은 시작과 끝을 이야기한다.
태초부터 시작된 성경은 마지막 날이 올 것은 선언하며 마친다.
그 시작과 끝, 알파와 오메가를 기록한 역사가 바로 성경이다.
또한 성경은 등장인물들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여타 지어낸 이야기들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입체적이다.
성경 속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믿기 어려운 사건들에 대해서 그들의 반응과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그들은 우리들처럼 고뇌하고, 괴로워하며, 심지어는 순종하기 싫어서 도망친다. 요나처럼 말이다.
원수인 나라를 미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지 않으려는 그 치졸함마저 다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이다.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록되는 다윗마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까지 낯낯이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이자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하고, 그 민족의 기원과, 어떻게 이집트에서 탈출했는지, 가나안을 정복하고 또 망했는지,
또 포로로 잡혀갔다가 풀려났는지를 기록한다.
많은 성경의 기록들이 고고학적 발굴과 다른 나라의 역사 기록간의 교차 검증을 통해 증명되기도 한다.
신약은 어떠한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4명의 저자가 각각 기록하며 교차된다.
예수님에 대한 수많은 증인들과, 또한 그 목격자들이 죽기까지 그 기록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는 사실들이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우리의 믿음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2.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록된 역사에는 기록자의 의도와 목적이담겨 있다.
기록된 역사에는 기록자의 의도와 목적이담겨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왕들의 역사다.
왕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어떤 부분에는 왕이 길가다가 넘어진 것까지 기록했다고 한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 1장 1절에는 이 성경이 누구의 역사인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모든 것의 시작에 하나님이 계셨다.
또한 모든 것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도래한다.
성경의 어떤 부분들, 아브라함의 이야기나 요셉, 다윗의 이야기에는 지면을 길게 늘여 할애하고, 어떤 부분은 몇 줄로 넘어가기도 하는데 그것은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련이 깊은 이야기 일 수록 자세하게 다뤄진다.
반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인생의 결말은 허무하면서도 단순하게 다뤄진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의 죽음이 허무한 자결로 끝이나고, 압살롬의 패망이 다윗이 반격을 시작한지 단 한 장만에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인생에는 하나님이 떠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의 주연은 하나님이다.
따라서 성경의 주연은 하나님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바로 볼 때 비로소 성경의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던질 질문 또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한다.
하나님은 왜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려는가?
구약 성경 중 몇 몇 역사서를 보면 때때로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말씀들도 있다.
룻기나 느헤미야, 에스더를 봐도 그렇다.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장면이나, 초월적인 개입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경의 주인공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같은 질문을 던지며 바라봐야한다.
세상의 학계는 신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성경에서 하나님을 제외하라고 제안한다.
신학이 보편적인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설명이 가능한 이성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학문이 되라는 것이다.
일부 역사비평학자들은 하나님 없이, 신적 존재의 초월적 개입을 제외한 학문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기적을 제외하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주에서 바라보는 성경 해석법이라거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서 선포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통치의 도구로서의 종교로 바라보는 관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여러 모순을 낳았다.
이것이 모순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등장하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 때문이다.
3. 성경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역사입니다.
3. 성경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역사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함께 그 분의 백성들이 등장한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함께 그 분의 백성들이 등장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요 등장인물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들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이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며, 이스라엘 민족과, 또한 신약의 교회다.
하나님이 주연인 성경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 교회는 조연이다.
성경이 반복해서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이다.
긴 역사 속에서 흥망성쇄가 반복 되는데, 그 기준점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에 달려있다.
하나님을 제외하려는 시도가 갖는 모순은 여기서 나타난다.
하나님을 제외하려는 시도가 갖는 모순은 여기서 나타난다.
성경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라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야할 등장인물은 솔로몬일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왔고, 많은 부와 여인들을 거느렸으며,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강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강대함과 부유함이 점차 커질 수록 알 수 없는 긴장이 흐른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존경받고 인정받더라도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이방 민족의 신앙과 뒤섞인 이 시기에 기록된 역사는 마치 절벽 위에 서있는듯 위태롭다.
성경의 역사는 이 백성들에 대한 평가를 평안과 부강함을 기준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이 이 백성에 대해 평가하는 방식은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가장 높이 평가 받았던 다윗에 대한 칭찬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외모도, 그의 용기도, 통치 능력도 아닌 그의 마음이 하나님과 가까웠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제외한 채 바라본다면 다윗은 솔로몬 보다 나을게 없다.
지혜도 부족하고, 나라의 부강함도 차이가 난다.
다윗은 평생 그토록 원했던 성전도 자기 때에 건축하지 못했으나, 솔로몬 때에에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을 가장 위대했던 왕으로 기록한다.
성경이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다룬 역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외된다면, 하나님을 위하여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을 제외한채 성경 역사를 바라보려는 모든 시도가 갖고 있는 모순이다.
하나님이 제외된 성경은 반쪽 조차 되지 못한다.
이 책은 인간이 경험한 사건과, 성패의 중요성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다루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역사는 태초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시작하셨고, 또한 마치실 것이다.
4.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입니다.
4.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입니다.
놀랍게도 이 관계에서 친밀함을 원하시는 쪽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놀랍게도 이 관계에서 친밀함을 원하시는 쪽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끊임 없이 인간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다.
인류 역사 속 어떤 사랑이 이토록 지고 지순 할 수 있을까?
요즘 연애 프로그램이 참 많이 생겨나는데, 개인적으로 남의 연애하는 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연애프로그램이 주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는 아마도 ‘밀당’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밀당이란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인데, 사랑을 얻기 위해서 때로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때로는 밀어내기도 하면서 상대를 애타게 하는 전문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끝없는 밀어내기
인간의 끝없는 밀어내기
우리 인간들은 아주 밀당 전문가들이다.
하루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 없이는 안된다고 고백 했다가, 다음날 목마르다고 원망하는 것이 우리였다.
주신 것을 누리며 감사하다가, 먹지말라는 선악과는 기어이 먹고 마는 인간이다.
순종하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면서, 갈 길을 가르쳐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언제나 밀어내고, 떠나고, 거부하는 쪽은 우리들이었다.
우리의 밀당은 전문적인 연애 기술이 아니라, 죄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밀어내기가 없이 오직 당기기, 즉 부르심만이 있다.
하나님의 끝없는 당기기
하나님의 끝없는 당기기
자기 형상대로 심히 보시기 좋게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인간의 죄로 관계 단절되자, 율법과 제사를 통해 소통할 창구를 열어두셨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그 대가를 하나님이 치루셨다.
구속은 대가를 대신 치룸으로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성경의 역사는 끊임없이 대가를 대신 치루시고, 먼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밀어내도,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래, 니들이 싫으면 나도 싫다는 없으셨다.
안타까워하시고, 분노하시고, 슬퍼하시며, 심지어 질투하시는, 흔히 말하는 자존심도 체면도 남겨놓지 않는 사랑이다.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절대적인 사랑,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인간의 끊임없는 거역과, 하나님의 지고지순하신 절대 사랑으로 인해 이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구속의 역사가 되었다.
5.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입니다.
5.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시는가?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속하시는가?
하나님의 유일한 구속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이 땅 위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본체를 통하는 것이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심으로 인간의 죄의 값을 대신 치루셨다.
성경의 등장인물 중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십자가 대속을 향해 나아간다.
예수님은 수도 없이 중단할 기회가 있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훌륭한 율법 스승, 훌륭한 4대 성인중 한 사람으로 인정 받는 선에서 정당히 사역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다.
예수님은 마지막의 마지막에도 십자가를 지지 않으실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제자들도 예수님께 그렇게 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선택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순종하여 십자가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빼고 이 죽음을 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 죄를 대신 치르신 구속이 목적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죽음을 설명할까?
만약 하나님을 뺀다면, 에수의 생애가 대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 죽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죽음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바보 또는 미치광이로 치부하기에는 예수님의 일생은 일관되게 십자가 대속을 향해 나아갔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구속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언제 계획하셨을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언제 계획하셨을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이 창세 전부터 이미 계획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의 말미에 도저히 안되겠어서 충동적으로 일으키신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유의지를 주시기 전부터 우리가 죄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하실 것을 알고 계셨다.
심지어 그 거역하는 본성 때문에 인간 중 누구도 스스로의 행동으로 구원받지 못할 것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사 창조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한 구속 계획까지 가지고 계셨다.
그것이 창세 전부터 영원토록 계획되어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지만, 특별히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을 참 사랑한다.
이 하나님의 모습이 끝없이 변화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서 얼마나 나에게 큰 위로를 주셨는지 모른다.
변함 없으신 그 하나님의 계획은 태초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없으신 것이 마땅하다.
그 분은 감정이 풍성하시나, 결정에 있어서 충동적이실 필요가 전혀 없으시다.
이미 모든 것을 아실 뿐만 아니라, 계획하심에 따라 한치에 어긋남도 없이 행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기 위해 한치의 어긋남이도 없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 입니다. 이것을 구속사, 즉 구속의 역사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 입니다. 이것을 구속사, 즉 구속의 역사라고 부른다.
구속사 신앙은, 성경의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연결한다.
신약의 27권 뿐 아니라, 구약의 39권에서도 말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구속사 신앙에서는 성경의 모든 역사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약속 하시고, 예수님이 성취하신다.
구약의 제사, 어린양, 성경인물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형으로서 나타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은, 예수님의 때에 완성된다.
구약의 모든 백성들은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오시기를 소망하며,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그들 가운데 오신다.
이렇게 성경의 모든 역사가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오시기 전인 창세기를 비롯한 구약부터, 마지막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듯이 말이다.
나는 8월 한 달간 이 구속의 역사를 다뤄보려고 하는데 사실 연속 설교로 하기에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구속사적 관점에서 결론은 매일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일관된 답이 되기에
1500년간 40여명이 넘는 저자가 기록한 성경이
결국은 같은 주제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한 권으로 작성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무리
마무리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경은 2000년 전에 이미 지나가버린 죽은 역사이거나, 혹은 교훈을 주기 위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다.
구속의 역사는 실제적 사건이며,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구속의 역사는 실제적 사건이며,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사실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살아있는 현대사가 된다.
오늘날 구속의 역사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기록된 성경 시대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지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기 좋아하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보면서도 꿀이 뚝뚝 떨어지게 바라보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우상 숭배에도 똑같이 질투하신다.
나에게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처절한 부르심은 구약에서나 지금에나 동일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은 2000년 전에 잠시 열렸다가 닫혀버린 구원의 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해 오래 참으사 선택하신 자기 백성을 모두 구원하실 때까지 열려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사건이다.
구속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시다.
구속을 기억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시다.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의 값을 치루셨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기록된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