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반석입니까 2025 0810 마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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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참조 2013 1020 새하늘오후예배 / 당신은 반석입니까 / 마16:13-19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함께 앉으신 주위 성도님들과도 함께 사랑의 인사 나누면 어떨까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실제라고 하였지요? 그렇다면 좀 부끄럽더라도 우리 실천을 한 번 해봅시다. 말로만 사랑한다, 축복한다 하지 마시고 나의 작은 변화로부터 천국이 시작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인사할 때는, 동성끼리는 한 번 안아주시면서 이성끼리는 악수하면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해보겠습니다.
사랑을 받았습니까? 우리 가운데 예수의 사랑이 넘쳐나고 있음을 느끼시나요? 아멘!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의 사랑과 성령의 임재가 함께하는 공동체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돌아오는 목요일이면, 우리가 그동안 함께 기도로 준비한 2025년 전교인 수련회가 시작됩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위대한 교회를 꿈꾸다’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저는 ‘당신은 반석입니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옆에 앉으신 분들을 향해 한 번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돌입니까?’ 이게 무슨 엉뚱한 질문인가 궁금해 하실 분도 계실텐데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이 말의 의미를 깨닫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가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는 어떤 도시였을까요? 왜 마태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간 도시의 이름을 굳이 성경에 기록하게 되었을까요? 그냥 한 도시에 이르러~ 라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 대해 우리가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 빌립 2세에 의해 창건된 도시였습니다. 처음에는 빌립보라고 불리우다가 후에 로마 황제 가이사 디베료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곳입니다. 즉 황제의 도시라는 뜻이지요. 최고의 권력자를 기념하는 도시였으니, 그 도시의 당시의 위상이 어땠을까요? 실제로 지리적으로도 풍광이 좋은 곳이었고, 황제를 기념하는 도시기까지 했으니, 아주 휘황찬란하고 멋진 도시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곳은 그리스/로마 문화의 온갖 신전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 이 황제의 도시에 예수님과 그의 열 두 제자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누구라 생각하느냐? 너희들 나를 지금까지 열심히 고생하면서 따라왔는데, 너희들 나를 누구나 생각하느냐?
왜 이런 질문을 하필이면 이곳에서 하셨을까요?
왜 이런 질문을 하필이면 이곳에서 하셨을까요?
여러분 한 번 상상해볼까요? 예수님과 12제자의 모습과 그들 뒤로 펼쳐져 있는 황제의 도시를 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가 그 황제의 도시와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었을까요? 번쩍번쩍 빛나는 보석들을 하나씩 차고 노예들을 거느리면서 행차하고 다녔을까요? 아니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가난한 여행객들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곳에 지금 그들이 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당시에 어땠습니까?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의 직업은 무엇이었죠? 네,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베테랑 어부였던 베드로가 그날따라 밤새 그물을 내렸으나 잡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라.’ 그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정말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베테랑 어부였던 베드로도 이런 경험은 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부였기에 이 정도 잡힌 양이면 돈으로 계산했을 때, 얼마가 될지도 단박에 알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이지요. 저 예수님만 붙잡으면 난 이제 어부로서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거야.’
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함께 누가복음 5장 11절 보실 까요?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갈 때, 그 엄청난 양의 물고기는 어떻게 했나요? 자신이 드디어 어부로서 대박을 쳤는데, 그것을 어떻게 했습니까? 버려두고.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본문으로 돌아와서 제자들과 예수님이 이른 곳이 어디라고 했죠? 황제의 도시. 황제의 도시를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베드로는 이러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요? 아, 그 때 예수님 따라갈 때, 물고기 잡은 거 처리는 좀 하고 올 걸, 아, 그거 다 팔아서 은행에 넣어서 이자 좀 받아먹고 있을 걸. 그러면 나도 지금은 거지꼴이지만, 여차하면 저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들처럼 살 수 있었을텐데.
여러분,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를 배경으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의 의미가 좀 다가오십니까? 그 질문에 함축된 감정들이 느껴지십니까? 예수님만 따르지 않았더라면, 아니 따라도 내 주머니는 좀 챙겨놓았으면, 지금 이렇게 초라해지지는 않았을텐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황제의 도시와 자신의 모습이 비교가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이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들이 가진 것 다 버리고 날 따랐는데, 너희는 날 누구라 생각하고 따라오고 있느냐?
그 때, 베드로가 아주 위대한 고백을 하지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에게도 가슴 떨리는 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이 이제 얼마나 큰 믿음에서 나왔는지 아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원래 나서기를 좋아했으니까 갑자기 말 했다고요? 아닙니다. 그의 고백은 그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올인한 다음에 나오는 진짜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삶을 온전히 예수께 내던졌을 때, 할 수 있었던 고백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고백이 매일 같이 흘러나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이라 부르시며, 그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반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왜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듣고나서야 교회를 이야기 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듣고나서야 교회를 이야기 하셨을까요?
천주교에서는 이 반석을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가 되어 첫 번째 교황이 된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개신교에서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죠. 베드로의 그 고백은 그의 영성, 그의 영적 상태를 나태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너의 그 영적상태가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석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튼튼하고 쉽게 깨어지지 않고 어떤 풍랑이 와도 그 자리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는 것이 반석입니다. 그러한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흔들림이 없는 것이지요. 즉 네가 그렇게 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면, 너는 반석과 같은 영적 상태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고백 위에, 반석과 같은 그의 영적 상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고 계신거죠.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왜 영적 침체가 오는 것일까요?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시험에 드는 것일까요? 바로 내 영적 상태가 반석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흔들린다는 거예요. 입으로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있으나,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조금만 시험의 풍파가 쳐서 그 위에 세워졌던 내 신앙이 와르르 무너진다면, 내 자신에게 지금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만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나의 메시아요, 나의 구원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 고백이 흔들거리고 있으니까, 반석 되지 못한 영성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신앙이 늘 제자리인 것입니다. 늘 세상의 것과 복음의 진리 사이에서 어떤 것이 좋은가 저울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가이사랴 빌립보, 황제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다 버리고 예수께 나아왔다고 하면서도, 교회 문만 나서면 저와 여러분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는 상황입니다. 돈 때문에 신앙을 타협하시나요? 직장 문제 때문에 신앙을 타협하십니까? 자녀의 성적 때문에, 평균 점수 1점 올리기 위해 그의 영혼의 문제는 정작 바라보지 못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다 버려두고 예수를 진실로 따라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 믿는 것이 황제의 도시에 살기 위한 하나의 악세사리인지 말입니다. 기초부터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니까 태풍이 아니라, 비만 한 번 와도 그냥 천장이 줄줄 새는 것입니다. 우리 영적인 상태가 반석으로 든든히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가 보시기에 칭찬을 마다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쉽습니다. 반석이 나의 영적인 상태를 말한다면 내 안에 예수의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진짜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회가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쓰인 교회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으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 에클레시아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의 교회가 되고 그 교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어 우리 한빛 교회가 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다가 아니라 진짜 예수님이 말하고자 하셨던 것은 네가 바로 내 교회가 되어서, 그리고 그 교회들이 모여서 지체를 이루어 나의 몸 된 교회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를 나의 구원자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사람들, 그렇게 살아가기로 결단한 교회가 위대한 교회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목적입니다.
주님은 우리 위에 교회를 세우길 원하십니다. 공동체를 이루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의 나라와 영광이, 주의 복음이 우리를 통해, 오늘도 예수로 살기로 다짐한 교회 된 우리 각 사람을 통해 전파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 고백이 기초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될 때, 우리 가운데 진정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욕을 먹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거죠. 반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사람이 든든한 반석으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 세워진 교회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온전히 살아 있으면 됩니다. 예수만 내 안에 있으면, 그 사랑이 온전히 내 안에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반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함께 마16: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반석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함께 마16: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아멘.
이 고백은 혈육이 알려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일은 내가 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오셔야만 가능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내 안의 성령이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기록된 것처럼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내가 성령으로 살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성령은 어떻게 받을까요?
여러분 그러면 성령은 어떻게 받을까요?
성령은 주심으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야 받습니다. 누가복음 11:13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예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가 없기 때문인거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영적인 상태가 반석이 되질 않아 그 위에 교회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번 전교인 수련회가 성령 받기에, 성령으로 충만핧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위대한 교회가 되기 위한 첫번째 단계, 성령 받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번에 간절하게 구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한빛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성령을 구합시다. 성령이 충만하여져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고백하여 반석과 같은 영성을 소유하십시다. 그리하여 어떠한 풍파와 어떠한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주만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이번 전교인 수련회가 바로 그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성령을 기대하십시오! 우리를 당신의 위대한 교회로 세우실 주님을 기대하십시오!
우리의 갈 길은 좁고 협착하여 길이 험합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면서 걸어가셨던 그 길, 그러나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이 바로 사는 길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걷고 있는 이 길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잘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너지지 말고 각자가 바로 예수가 세우신 교회 임을 잊지 말며 하나 되는 모든 한빛 교회 성도님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