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를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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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본문: 슥 11:1-17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스가랴 1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애가 형식으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심판(1–3절),
둘째, 그 심판과 관련된 두 목자의 이야기(4–17절)입니다.
이 말씀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할 때 어떤 비극이 오는지,
또한 참된 목자의 돌봄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우리 삶을 돌아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자들의 곡소리(1-3)
목자들의 곡소리(1-3)
스가랴는 하나님의 심판을 애가로 선포합니다.
1절에서 레바론의 백향목이 불살라지고, 잣나무가 통곡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왕궁이나 성전 건축에 사용되는 비싼 목재입니다.
이것이 불타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는 지도자들에 대한 징벌을 상징합니다.
2절에서 바산의 무성한 숲이 엎드러져 상수리나무들이 통곡합니다.
바산은 이스라엘 북동지역으로 강우량이 많아 무성한 숲과 비옥한 목초지로 유명합니다.
이곳이 파괴되어 황무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나무들이 불살라져 울창하던 산림이 파괴되고, 비옥한 목초지를 잃은 목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통곡합니다.
젊은 사자들도 사냥의 은신처가 사자져 굶주림에 울부짖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전쟁과 파괴로 인한 국가적 비극을 보여줍니다.
두 목자 이야기(11:4-17)
두 목자 이야기(11:4-17)
4절에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말씀하십니다.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여기서 ‘잡혀 죽을 양 떼’는 죄와 불순종으로 멸망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 명령은 스가랴가 하나님을 대신해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선지자를 통해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이게 하셨습니다.
호세아에게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게 하셨고,
이사야에게는 옷과 신발을 벗고 3년간 벌거벗은 채 살게 하셨으며,
에스겔에게는 포로의 행장을 싸서 낮에는 성을 나가고 밤에는 구멍으로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5절에서 스가랴는 양을 사고 파는 상인들과, 그 양들을 넘기는 목자들을 봅니다.
양을 잡아도 죄 없다 하는 상인, 부자가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상인들이 있습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을 돌보는 것이지만, 그들은 양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 ‘목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양들의 생명에는 무관심했고, 오히려 양들을 자신의 배를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속은 부패했습니다.
힘없는 자를 희생시켜 부를 쌓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포장했습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웃과 임금의 손에 넘기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귀환한 유대 공동체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과 멸망을 예고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헬라, 로마를 거쳐 주후 70년에 멸망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스가랴는 양들이 곧 도살당할 것을 알고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돌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선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위험 속에서도… 양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을 대신 버리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은혜로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스가랴는 양들을 ‘은총’과 ‘연합’이라는 두 막대기로 먹입니다.
막대기는 인도와 보호를 상징합니다(시 23:4).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은총’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기쁨과 즐거움의 관계를,
‘연합’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된 일치를 뜻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너희는 내 소유된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된다”는 은총 언약을 맺었습니다(출 19:5–6).
그러나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우상숭배로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연합의 막대기로 두 왕국을 붙잡으셨지만, 백성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의 기대와 소망은 이제 산산히 부서집니다.
8절 말씀을 보면… 선한 목자는 한 달 동안 세 목자와 맞섭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제재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이 완강했다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너무나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세 목자들…
그들의 냉정하고 이기적인 모습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마음이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절에서, 선한 목자는 마침내… 최후 통첩을 보냅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더 이상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10절, 그는 은총의 막대기를 꺾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었던 은혜 언약의 파기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거두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죄가 그들을 파괴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보호막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이 겪게 될 비극의 역사를 암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사를 움직였던 강대국들에 의해 비극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악한 왕들에게 넘겨져 수치와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백성끼리 내분이 일어나… 서로 물어뜯고 죽이는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극의 역사는 단지 이스라엘만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가 처한 비극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진리를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롬 1:24)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롬 1:26)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8)
하나님은… 말씀을 거부하는 자를 억지로 막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들의 죄악된 욕망이… 스스로를 파괴하게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한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최후 통첩을 받기 전에…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막 안에 있을 때, 그 은혜에 감사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져 있다면,
‘은혜’와 ‘연합’의 막대기를 붙잡으십시오.
나를 돌보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막대기가 부러지고… 은혜의 언약이 파기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12절에서, 스가랴는 상인들에게 목자의 일을 그만 둔 것에 대한 퇴직금 지급여부를 묻습니다.
그들은 스가랴에게 은 삼십 개를 지불합니다.
성전에 던져진 것을 보면, 은 삼십 세겔로 추정됩니다.
은 삼십 세겔은 노예 한 사람의 몸값입니다.
하나님의 목자로서 수고한 대가가… 겨우 노예 값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두 번째 상징적 행동을 지시하십니다.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여기서…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것은… 스가랴가 목자로서 받은 그 삯이,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수고하신 데 대한 평가 가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밤낮으로 돌봐 주신 그 사랑과 수고가…
겨우… 은 삼십 세겔로 평가되었습니다.
노예 한 명의 값에 불과한 그 삯!
그래서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은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져라.”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건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정확히 성취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이 자신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 세겔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사형 선고가 내려지자, 그는 후회하며…
그 은 삼십 세겔을 성전에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그 은을 ‘피값’이라 하여 성전 금고에 두지 않고…
토기장이의 밭을 삽니다.
그 밭은 토기용 흙을 파낸 뒤, 버려진 돌과 깨진 옹기들이 쌓여 있는… 가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들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습니다.
15절부터… 세 번째 상징적 행동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어리석은 목자들의 도구를 빼앗으라고 하십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왕, 제사장, 선지자,
그 모든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더 이상 목자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심판 선언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자의 출현을 예고하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이스라엘 땅에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양이 없어져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잃어버려도 찾지 않습니다.
병들어도 돌보지 않습니다.
건강한 양조차 굶겨 죽게 만듭니다.
이 목자는 이전에 등장한 “어리석은 목자”보다도… 더 “나쁜 목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그들을 다스리게 될… 이방의 악한 왕들을 상징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마저 십자가에 못 박은 이스라엘은…
그 후 수천 년 동안, 잔혹한 강대국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17절, 하나님께서는 양 떼를 버린 목자들을 ‘못된 목자’라고 평가하시며…
이렇게 저주를 선포하십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
팔이 마른다는 것은… 영적인 힘을 잃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이 멀어진다는 것은…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적용점은 무엇입니까?
첫째, 선한 목자를 거절하면 악한 목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로서 인내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거절하면… 거절한 만큼의 결과를 맡기십니다.
교회와 사회가 참된 지도자를 거부하고,
오직 인기 있는 지도자만 따를 때…
결국 파괴적인 리더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이나 성과 중심이 아니라,
영적으로 신실한 지도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지도자를 구하고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도자는…
양을 먹이기보다 자기 자신을 먹이는 자가 되기 쉽다는 경고를… 늘 들어야 합니다.
둘째, 거짓되고 어리석은 리더십의 최후는 무능과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팔이 마르고 눈이 멀어지는 종말은, 사역에서 영적인 힘과 분별력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든 사회든…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지도력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지도자의 자격은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목회자든, 목장 리더든, 교회학교 교사든…
양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돌보는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하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형식화된 율법과 전통, 그리고 기득권을 붙잡았습니다.
결국 메시아를 거절했고,
그 결과 예루살렘과 성전은 무너지고,
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2천 년 동안 수모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을 거부한 리더십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도…
성도를 사랑과 긍휼로 돌보지 않고,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몇 달간 예배에 나오지 않아도… 찾지 않습니다.
성도가 당하는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고쳐주려 하지도 않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생명의 말씀을 제대로 먹지 못해 영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목회를 주님의 사명이 아닌,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신학생들과 목회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어리석고 못된 목자들을 향해 경고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너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너의 팔이 아주 마르고, 너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제가 바로 어리석은 목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가족 교육을 받고 목장에 배치된 성도들이 몇 달 동안 예배에 나오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새가족과 시니어 합창단원에게,
전화 한 통으로 안부만 묻고… 그 마음에 병 낫기를 간절히 기도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저를 향해
“못된 목자”라 하시며, 저주와 재앙을 선포하시는 음성이… 제 귀에 들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하기로 결단했던 그 처음 사랑을 다시 기억하고 돌아섰습니다.
목자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다스림을 거절하지 않게 하시고,
항상 은총과 연합의 언약 안에 거하게 도와 주십시요.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사랑과 긍휼로 돌보게 하시고,
자기 유익이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목자가 되게 하소서.
혹시라도 주님과 멀어진 심령이 있다면,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 은혜 안에 평생 거하는 복을 누리게 도와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