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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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감의 능력

본문: 오바댜 1장 1-21절

찬송: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오늘은 오바댜서 1장 말씀을 가지고 '공감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오바댜는 단 21절로 구약성경 중 가장 짧다. 이 짧은 예언서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한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피를 나눈 형제 민족이다. 야곱과 에서의 후손으로, 같은 조상 이삭과 리브가의 자손들이다. 그러나 이 형제 민족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했고, 결국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에돔은 형제의 고난을 방관하고 조롱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무관심과 냉담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1-7절은 에돔의 교만과 그 결과를 말한다.
에돔은 높은 바위산 세일산에 거주했다. 해발 1,500미터가 넘는 천연 요새였다. 그들은 이 지리적 우위를 믿고 교만했다. 3절은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착각이다. 자신이 가진 조건과 환경을 과신하는 것이다. 에돔은 높은 산, 든든한 동맹, 뛰어난 지혜를 의지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4절에서 선포하신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우리도 때로 이런 착각에 빠진다. 안정된 직장, 든든한 재산, 좋은 인맥을 의지하며 '누가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안전은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
8-14절은 형제의 고난을 방관한 에돔의 죄를 말한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다. 성전은 불타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그때 에돔은 무엇을 했는가. 11절은 "네가 멀리 섰던 날"이라 기록한다. 12절은 더욱 충격적이다. "네가 형제의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형제가 고통받을 때 구경꾼이 되었다. 아니, 더 나아가 기뻐했다. 이것이 에돔의 죄였다. 형제의 아픔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떠하신가. 누가복음 7장 13절은 나인성 과부를 만난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헬라어로 '에스플랑크니스데'이다. 이는 사람의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나'에서 나온 말이다.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의 깊은 연민을 의미한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온 존재가 흔들리는 깊은 공감과 사랑이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예수님은 우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슬픔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것이 참된 공감이다. 에돔의 냉담함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15-21절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회복을 말한다.
15절은 분명히 선포한다.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이것이 영적 법칙이다. 무관심으로 심은 자는 무관심을 거둔다. 그러나 사랑으로 심은 자는 사랑을 거둔다.
17절은 소망을 선포한다. "오직 시온 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하나님은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신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신다. 그리고 21절은 궁극적 승리를 약속한다.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것이 선행선과(善行善果)의 원리이다. 선을 행하면 선한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에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공감하며 살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에돔의 실패는 공감 능력의 상실이었다. 형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다. 그저 구경꾼이 되었고, 심지어 기뻐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다르시다. 과부의 눈물을 보시고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셨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함께 우셨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오늘 새벽,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혹시 내 옆에서 아파하는 이웃은 없는가. 외로워하는 형제는 없는가. 도움이 필요한 자매는 없는가. 그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자. 그들의 눈물을 나의 눈물로 흘리자.
공감의 능력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오바댜서 말씀을 통해 저희의 무관심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에돔처럼 형제의 고난을 방관하며 살았던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깊은 공감의 마음을 저희에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웃의 아픔을 볼 때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무관심의 벽을 허물고 사랑의 다리를 놓는 화평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이 새벽에 말씀 앞에 나온 모든 성도들의 삶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서 공감의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치유의 은혜를, 외로운 이들에게는 위로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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