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35) 하나님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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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전해진 순간
복음이 전해진 순간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헬라는 외국입니다. 이스라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고, 헬라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의 대명사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흘러가서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까?
전도도 많이 하고, 가르치고, 병을 고치시고, 문제를 해결하고, 기득권자들과의 논쟁과 생명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복음으로 살아온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 가운데 꾸준하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이웃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웃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시점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때 입니다.
이런 때에 일반적으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리고 가슴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 등은 차차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처음부터 직진하십니다.
“다른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씨앗이니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인자
인자
예수님은 이 시점에 자신을 ‘인자’라고 지칭하신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 인자, 하나님의 아들, 주, 어린 양, 선한 목자, 참 포도나무, 길과 진리와 생명, 말씀 등 이외에도 많은 호칭으로 불리거나 스스로 지칭하시는데 항상 가장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신다.
예수님은 늘 그렇지만 특히 자신을 지칭할 때에 매우 정확하게 필요한 단어를 사용하신다.
나는 노영민, 목사, 작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빠, 삼촌, 선생 등등 호칭으로 불린다. 정확한 호칭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에 성도분이 전도해서 새로 오셨는데 내가 그분과 인사하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노아 아빠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매우 적절하지 못한 자기소개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호칭도 매우 다양하지만 그때와 상황에 맞는 호칭이 있고, 그것은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소개하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부르는 다른 호칭들은 특별히 난해할 것이 없다.
예수 - 이름이자 ‘죄에서 구원한다’는 의미
주 - 주인
그리스도 - 기름부음 받은 자(왕, 선지자, 제사장)
그런데 ‘인자’라는 호칭만큼은 매우 의미가 깊고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이때에는 인간이 별볼일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느낌으로 ‘인자’라는 단어가 쓰였고,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서 인자는 하나님께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받는 메시아적 존재를 나타냅니다.
흔히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표현했을 때, 다니엘에서 말하는 ‘인자’로 해석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말하실 때에는 다니엘에서 말하는 신적인 능력을 지닌 메시아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편에서 말하는 연약하고 미력한 인간의 모습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자’에 대하여 묵상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인자’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는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이후에 죄로 인하여 인간은 ‘인간다움’과 ‘사람다움’의 모습과 능력을 많이 상실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원래 인간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인자’라고 자신을 가리킬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까지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만나고 싶어하시는 시점에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지칭하셔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인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이룬 인간이라는 의미로 말씀을 살펴보자는 내용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헬라인들을 바라보며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영광을 얻는 것을 열매 맺는 것으로 이야기 하시며, 그 방법이 죽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의 온전한 모습은 자기가 죽어서 ‘열매를 많이 맺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변해버린 인간의 모습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대로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우리 자신의 형상으로 지각 있는 생물을 만든다는 생각은 우리의 사회적 상상에 끊임없이 따라붙어 왔다. 마찬가지로 유전 및 기타 기술이 개선됨에 따라 향상된 능력을 가진 포스트휴먼 또는 트랜스휴먼을 만들 전망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비성경적 인류학자들과 같이 인간을 설명할 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마치 시편의 인자만을 강조할 때 인간을 벌레, 먼지, 가장 무가치한 존재로 보는 경향과
다니엘의 인자처럼 엄청나게 위대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다.
사람을 인간 이하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노예로 부리거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고, 그들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하거나 자신의 유희를 위해 죽일 수도 있다.
마치 인간을 단백질 덩어리의 알고리즘 기계나 짐승 쯤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인간 이상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되면,
인간을 신격화하거나 초인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역사상 그런 모델들은 많았습니다.
다른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폭력성, 자기 숭배, 타자에 대한 무관심 등
영원한 생명을 찾은 진시황,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 이 시대의 수많은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모두 인간을 인간 이상의 형상으로 바라보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병리현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 증상이 약할 뿐이지 모두 이렇게 치우친 평가나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우리는 온전해져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온전하신 인간의 본을 보이시면서 그를 만나고자 찾아온 이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이
죽지 않으면 죄에 속한 모습으로 그대로 있고,
죽으면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는 다는 것은 자기 안에 가득찬 자기 기만 능력이 충만한 자아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인간은 늘 그대로이며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인해 자기 안에 강력한 자기 기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의심하며 그 자아를 죽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죽는다는 의미인데 이때부터 비로소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열매는 내면적인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은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며,
외적인 열매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 자리에 사랑이 희락이 화평 등등 좋은 성품들이 열리고,
내가 죽으면 하나님과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 인해 결국 헬라인들과 같이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26절에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결론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을 자기 안에 이성과 감정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라는 음성입니다. 내 감정과 이성은 그것이 부당하다며 아우성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을 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에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을 믿기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받는 복을 누리는 것에만 익숙했고 집중한 나머지 그것을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똑같이 받은 므나를 그대로 두는 것과 같고, 그런 사람들은 받은 것을 배가 시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몫을 빼앗기게 된다.
우리는 받는 복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며 소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것을 배가 시킬 의무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맥스 주크스라는 무신론자와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경건한 사람에 관한 실화
맥스 주크스라는 무신론자와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경건한 사람에 관한 실화
무신론자 맥스 주크스는 신앙 없는 삶을 살았다. 그는 신앙 없는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후손 중에 거지로 죽은 사람이 310명, 범죄자가 150명, 살인자가 7명, 술고래가 100명이었고, 여자들은 절반 이상이 매춘부였다. 그의 후손 540명은 주 정부의 돈을 125만 달러나 축냈다.
그러나 주께 감사하게도 이 원리는 양쪽으로 다 통한다!
미국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는 맥스 주크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경건한 여자와 결혼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알려진 후손 1,394명을 조사해 보니 대학총장이 13명, 대학 교수 65명, 미국 상원의원 3명, 판사 30명, 변호사 100명, 의사 60명, 육해군 장교 75명, 목사와 선교사 100명, 유명한 저자 60명, 미국 부통령 한 명, 공무원 80명, 대졸자 295명이 나왔고 그중에는 주자사들과 외교관들도 있었다. 그의 후손들은 주 정부의 돈을 단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