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약함을 은혜로 채우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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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낙원의 가족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은 사람이 절대 가지 말아야 할 위험한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뢰밭, 악어 떼를 보면 어떤가?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그렇다. 지뢰밭에 악어가 가득한 곳에 들어가면 큰일난다. 왜냐하면 들어가다가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권 순위가 2위라고 한다. 싱가포르와 공동2위로 무비자 입국 국가 수는 192국이다. 1위는 일본이 193개국으로 우리나라보다 1개국이 많다. 왜 우리나라가 1개국이 모자를까? 다름이 아닌 바로 위에 있는 나라를 입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쉬울 수 있으나, 나가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이렇게 위험한 곳에 직접 들어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위험한 곳이라고 배워왔고, 학습이 되었기 때문에 강요한다고 해서 누구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곳에 만원을 줄테니 다녀올 사람이 있는가? 절대로 누구도 이곳에 들어갈 엄두조차도 낼 수 없다. 법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것은 법으로 우리를 보호한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길 원한다.
창세기 3장에 말씀을 살펴보면 뱀이 등장해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다. “하나님이 정말로 동산 안의 어떤 나무의 열매도 먹지 말라고 하셨어?” (창 3:1) 여자가 대답한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어.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창 3:2-3) 여기서 하와의 말을 보게 되면 ‘너희가 죽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2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강조하셨다. 여기서 ‘반드시’를 빼버린 것이다. 유혹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신 말씀의 강조점을 우리가 마음대로 빼버릴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 진실을 흐리게 되는 순간,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의 흔들림과 유혹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것을 우리도 반드시 강조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뱀은 여자에게 어떻게 강조하며 유혹하는가? “너희는 죽지 않아.”(창 3:4) 죽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지면, 선과 악을 알게 되어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까 봐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창 3:5)라고 말한다. 선악과를 먹으면 사람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모두 진짜였을까? 그렇다면 에덴동산에 살면서 선악을 알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이미 그들이 살았던 곳은 선이 가득한 곳이었기에 선악을 알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돕는 베필을 지으셔서 가정을 주심으로 더욱 ‘좋은’ 상태로 만들어주셨다. 그렇기에 인간은 이미 선한 상태이고, 이미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서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처럼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놓으신 먹지 말라는 금지명령의 핵심 포인트였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일 뿐이다.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시고,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을 수행할 뿐이다. 선의 기준은 누구인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무시무시한 것은 뱀은 여자에게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유혹하고 있다. 이것은 지음받은 피조물이 세상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자가 뱀의 말을 듣고 그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 열매를 보니까 참기 힘든 유혹이 다가온다. 열매를 보니까 “먹음직” 하다고 한다. 식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또 “보암직”하다는 것이다. 눈에 보기에 좋다고 호감이 생기는 것이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선악과의 열매는 갖고 싶고, 바라는 것이 되어버렸다. 탐욕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만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열매를 따먹고 남자에게도 그 열매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은 뱀의 말대로 “눈이 밝아”졌다. 뭔가 대단한 능력이 나올 줄 알았으나 자신들이 벗은 것을 알게되었다. 이것은 곧 성적 수치심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있었다. 옷은 인간의 성적인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처럼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향한 거대한 배신이고, 인간이 하나님께 반항한 사건인 것이다. 뱀의 유혹에 완전히 사기를 당하여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꿈꾸면 안되는 것을 가지려고 한 거이다. 하나님과 아담은 인간 최초로 어떤 약속을 했었는가?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누가 서로 약속한 내용인가? 하나님과 아담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허락하셨는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먹으면 안되는 금지 열매는 무엇이었는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무엇을 약속하는 것인가? 영원한 생명이다. 선악과를 먹게 되면 어떤 형벌이 있는가?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인간과 동등한 위치라서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동의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다. 아담의 순종하는 행동이 가치가 있어서 대단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줄 의무도 필요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놀라우신 은혜로 아담의 순종을 통해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 은혜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쿠데타로 죄가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첫 번째로 교만이다. 사람이 뱀의 말을 들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위치를 잊어버리고, 창조주의 위치를 넘본 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로 탐욕이 생긴 것이다. 뱀의 말을 듣고 사람을 선악과를 탐내게 된다. 그러면서 선악과를 너무나 갖고 싶어한다. 눈에 호감이 가는 것을 갖고 싶어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자기 눈에 좋은 것을 행한다. 자기 눈에 기쁘게 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세 번째로 성의 타락이다. 사람이 벗었음을 알게 되는 성 인식이 변하게 되었다.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벗었음’을 알게 된 것을 강조한다. 옷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나온 문화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다. 사람은 타락하기 전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다. 타락 후에 사람에게 나타나는 감정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는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듣기 싫어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설교 듣는 것, 말씀 읽는 것, 기도하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한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나온 결과는 교만, 탐욕, 성의 타락, 하나님과의 단절은 모든 인류에 누구든 어김없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어느 한 나라 사람들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나타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는 교만이 마음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또 내가 갖고 싶은 무언가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이런 탐욕 때문에 마음으로는 시기, 미움, 질투가 생기게 되고 이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도둑질, 강도, 살인이 일어난다. 더 나아가 성의 타락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켜 버렸다.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타락은 구원이 너무나 필요하고 인간이 타락했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절박해지는 것이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타고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이다. 영어로는 Freewill이다. 자유의지란 모든 강요로부터 자유였다. 어느 누구도 아담이 죄를 짓도록 아담의 의지를 꺾고 억지로 강요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담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사탄조차도 아담을 죄를 짓도록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탄은 그저 유혹 밖에 할 수 없었다. 아담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도 또는 악을 행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에서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결국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과 동시에 타락으로 곧 자유의지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죄를 지을 자유만 남아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이 때문에 인간은 죄를 짓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아주 담대하게 된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선을 행하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입술에는 속임과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남을 험담하고 욕하는 일을 일삼고 사람을 어떻게든 죽이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18절에 바울이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선이신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전 인격적으로 부패했고, 전적으로 타락했기에 죄로 오염되어 었다. 사람들마다 좋다, 착하다의 기준이 다른 것처럼 절대적으로 선의 기준이신 하나님을 떠나니 선의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애초에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지 않았으면 이런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 나무의 열매 자체에 어떤 신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였다. 먹은 것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죄를 짓도록 선악과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서 주신 동산 각종 열매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죄를 짓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 죄는 이미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내가 나의 삶에 기준이 되는 것이 죄이다. 즉 자신의 앞길을 결정하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려고 하는 불신앙이 큰 문제이다.
장로교에서 표준으로 삼는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4장에서는 ‘죄’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하고 답한다.
Q14.죄가 무엇입니까?
A14.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사탄이 말하는 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죄는 그저 사람에게 피해만 안가면 된다고 우리의 마음 속에 거짓으로 속삭이며 유혹한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수준으로 순종하고 지킬 수 있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 하루종일 생각하지 않으면 ‘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매일 완벽하게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하루종일 생각하면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 유한하고 죄악된 인간의 한계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여러분 중에서 이 말씀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여기서 음욕을 품고 본다는 것은 지나가는 자매를 보고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간음이라는 것이다. 나도 어떠하겠는가? 24시간 하나님을 생각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길가다 지나가는 아리따운 여성을 보고 ‘와.. 예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순간 느끼고, 정신차리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죄의 삯인 죽음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느 누가 영원히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없기에 인간은 절대적으로 돈이 많다고 해서, 권력이 있다고 해서 죄가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수준으로 말씀에 완벽하게 순종할 수 있는 분은 누구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실 수 있는 분이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사망의 권세, 곧 죽음을 이기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약속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여기서 ‘이제’는 현재인가, 미래인가? 현재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사람은 현재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어지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렇게 현재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은 앞으로 닥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다.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사람은 의롭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평을 이루게 된다. 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앞으로 미래의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우리의 정체성과 신분의 변화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구원도 약속하고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은 자가 부활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때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최종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 이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너무나 즐겁고 기쁠 수밖에 없다.
아담은 인간의 대표로서 우리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마치 여러분의 반에서 반장이 선생님께 잘하면 반 사람 칭찬받고, 잘못하면 반 전체가 욕을 먹듯이 아담은 우리 모든 인간을 대표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담에게는 타락하기 전에 그에게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 곧바로 순종할 수 있는 또 시키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불순종의 결과로 언약이 깨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다. 이 죄는 곧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이다. 하나님은 불순종의 결과로 언약이 깨어져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졌으나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언약, 깨어질 수 없는 언약을 약속하셨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은 그냥 죄인을 용서하실 수 없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뤄야하고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언약을 대표로 받아 불순종을 통해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죽음을 물려주었다. 예수님은 새언약으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할 모든 죄와 형벌을 예수님께 다 담당하여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가 구원으로 가는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자에게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예수 공로로 이루신 약속이지만, 우리에게는 은혜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담이 언약을 깨버리고 죄를 지은 것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고, 당연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아래 있는 우리는 아담과 같이 자신의 열심으로 우리 구원의 기초가 되지 않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무엇으로 구원을 얻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악을 해결하기 위해 완전한 순종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저주신 전적인 은혜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것이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낙원의 좋은 것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한 나라의 왕 또는 대통령과 친하면 경비원이 막아도 그 나라에 들어갈 이유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친하지도 않고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들어갈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시고 언제나 긍휼의 마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누가봐도 아파보이고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의사선생님께 데리고 갔더니 자신은 멀쩡하니까 냅두라고 성질내면 어떨 것 같은가? 의사 선생님은 그 환자를 고칠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은 상상 그 이상으로 우리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으신 그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신다.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에 나의 모든 문제와 연약함을 고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누구도 예외없이 모든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문제, 곧 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으면 우리 주님은 영원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도 인격적이신 분이기에 억지로 하실 수 없으시다. 그러니 사랑하는 낙원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내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죄악임을 인정하며 고백하기를 소망한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날마다 고백하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해결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로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도 요한의 말씀을 읽고, 말씀 의지하여 기도하길 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