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고로부터 배우는 성도의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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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이제 에베소서의 마지막 구절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주에 오늘 에베소서 전체를 정리해보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마지막 구절을 살펴보고, 다음 주에 에베소서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는 옥중 서신 중에 하나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1차로 갇혀 있는 동안에 에베소 성도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지요.
그의 서신은 항상 그의 동역자들을 통해서 전달이 되었지요. 오늘 본문에는 두기고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두기고는 헬라식 이름으로 우연히 태어난 자 혹은 행운아 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는 바울과 긴밀하게 동행하던 인물입니다. 에베소 편지뿐만 아니라, 빌립보서와 골로새서도 전달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갇혀있을 때에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왔던 사람이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참고해보면 목회자가 없는 지역 교회에 바울을 대신하여 목회사역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먼저 아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무슨 일이든지 동역자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일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담당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영향력을 좀 더 발휘하기도 하지만, 그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에게도 스카티 피펜이라는 동료가 있었고, 메시나 펠레 등 모든 위대한 축구선수도 그들의 동료가 있었습니다.
혼자 하는 스포츠인 테니스나 골프 같은 경기들도 코치와 경쟁하는 동료가 없다면 탁월한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지요.
모세가 출애굽한 후에 백성의 모든 송사를 홀로 담당할 때, 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을 하였습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도 않으니, 사람들을 선발하여 일을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동역자가 없이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와 같이 교회도 동역이 필요합니다.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고 함께 세워가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역할을 가지고 함께 동역할 때에 교회는 건강하게 지어져 갈 수 있습니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역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바울은 두기고를 가르켜 사랑받는 형제라고 말합니다.
이 때 사랑받는은 “아가페토스”라는 헬라어인데, 아가페에서 파생된 단어 입니다. 아가페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또는 언약적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조건에 달리지 않은 나의 마음의 의지가 달린 사랑입니다.
바울과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와 함께 고난과 핍박을 받은 전우로서 두기고는 바울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두기고도 바울에 대하여 그런 사랑으로 대하였을 것은 확실합니다.
오늘 우리 옆에 있는 성도에 대해서 그렇게 사랑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늘 기도제목이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롬 5:8)
이 때 자기의 사랑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입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제 자매들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서로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점점 균열이 커져서 결국에는 갈라지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죄인된 우리들에게 이러한 모습들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아가페 사랑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가페 사랑을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미워하게 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를 품을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지체를 귀하게 여길 때 상처가 봉합되고 위로와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지요.
두기고는 그 사랑의 능력,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믿음의 동역자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영과 마음에 위로와 힘을 얻어 이 힘든 사역을 계속 감당해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무슨 사역을 할 때에 그 사역을 지속적이고 건강하게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 일에 낙심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아 힘들고 어려워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 모든 핍박과 고난이 있습니다. 반대로 되어야 합니다.
두기고는 또한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입니다.
진실한 일꾼은 충성된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열심히 하고 성실히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앞에 주 안에서 라는 표현을 빼먹지 않습니다. 그냥 그는 사랑을 받은 형제요 진실한 일꾼이니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주 안에서라는 표현을 넣어두었습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주와 동행하면서 혹은 주의 뜻을 따라서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의 반대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진실한 일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열심히 성실히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한국 사람들은 열심이 특심이어서, 무슨 일을 맡기면 허투루 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 민족적 특성을 가지고 교회 일을 할 때에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만족을 위한 열심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열심입니다.
그런 열심으로 인해서 두 가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저는 그 중에 하나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다보니까 다른 사람의 의견과 생각을 무시하기 쉽상입니다. 그래서,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고도 괜히 좋은 소리도 못듣고 싫은 소리를 듣곤 하는 것이지요. 물론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웬만해서는 싫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싫어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지 둘 중의 하나로 열심이 귀결된다면, 그 다음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포기하는 것이고 관계를 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주 안에서, 주와 동행하며, 주의 뜻대로라는 말이 신실함과 어떻게 연결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신실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성실히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때로는 나의 열심을 뒤로 물러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려와 위로를 받아 사역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되게 하고 서로를 세우는 섬김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자들의 섬김은 오늘 두기고가 바울의 서신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처럼 성도들을 위로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주 안에서 성실하다는 것은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낄낄빠빠입니다. 때로는 힘을 빼야 합니다. 때로는 힘을 줘야 합니다.
<기도 제목>
옆의 지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용기와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교회의 리더십이 주 안에서 신실하게 섬기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