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이름
Notes
Transcript
Handout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미신과 신앙의 차이
무당을 찾아간 사람이 두 손을 비비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경건합니다.
굿을 잘 하기 위해 용한 무당에게 바치는 금액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람들이 용한 무당에게 받은 부적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우리들이 성경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보다 훨씬 귀하게 다룹니다.
그렇다면, 신앙과 미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미신은 인간이 자기에게 있는 돈이나 능력, 혹은 재주로
신의 마음을 달래고 얼러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신은 ‘자기 자신’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서 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서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인 그분의 말씀 앞에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믿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능력있는 초월자이신 것은 믿는데,
그분이 나의 목적을 이뤄주실 분으로 믿는지,
내가 그분의 목적에 맞게 변화되어야 하는 분으로 믿는지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후자의 목적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미신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도무지 알지 못한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은사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불법을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주님을 부르고,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지만,
그들 자신은 변화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에 이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고
날마다 그분의 뜻을 따라 변화되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난받는 기독교
현재 우리나라에 800만 명이 넘는 크리스천이 있지만,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불만은 더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변회되어가는 참 신앙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달래고 얼러서 나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한다” 말씀하시면
그보다 더 허망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주여 주여” 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명은 지금 내가 사는 이유
우리는 종종 사명을 ‘언젠가’ 할 일로 생각합니다.
졸업하고, 취업하고, 형편이 안정되면,
그때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 속 인물 중에 ‘모든 조건이 갖춰진 뒤에’
사명을 시작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소년일 때 이미 왕의 기름부음을 받았고,
베드로는 고기 잡는 배 위에서 바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사명은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명 속에서 준비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너무 평범해서 소중함을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평범한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고,
그 하루의 선택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합니다.
사명을 미루는 것은 하나님께
‘아직은 제 시간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 이 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사명은 미래의 계획이 아니라, 오늘 내가 숨 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함께 드리는 파송예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선포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해도, 오늘 내가 감당할 순종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주여 주여” 말로만 외치는 외식이나 대단한 능력보다
‘예, 주님’이라는 한 마디를 찾으십니다.
그 한 마디가 순종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주님의 역사의 한 장면이 됩니다.
사명은 한 사람의 이름이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거대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모세를 부르실 때,
마리아를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그 출발점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한 사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구원하셨지만,
길을 걸으며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신 건 한 사람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눈먼 거지, 세리 삭개오…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남은 이유는,
예수님이 그들을 ‘한 사람’으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펼친다는 것은, 거창한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이름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한 사람이 변하면, 그 사람을 통해 또 다른 한 사람이 변하고,
그 변화는 결국 세상을 바꿉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부터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제가 품을 한 사람을 보여주옵소서.”
그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에게 다가가십시오.
그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오면, 우리의 사명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