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1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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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담대히 나아갈 길

오늘도 청빙기도회의 자리에 나아오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본문은 사사 기드온이 하나님께 처음 부름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기드온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용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구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볼 사사기 6장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기드온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바로 겁쟁이 기드온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겁쟁이 기드온을 어떻게 사사로 부르신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청빙이라는 큰 일을 앞에 둔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게 되는 것일지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여호와의 사자가 오브라라는 지역에서 기드온을 만난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처음 기드온이 등장하는 모습이 사뭇 이상합니다.
11절 하반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드온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포도주 틀은 무엇을 하는 장소일까요? 당연히 포도주를 짜는 곳이겠죠. 그런데 왜 포도주를 짜는 틀에서 밀 이삭을 타작하고 있었을까요. 바로 앞에 그 이유가 등장하죠.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이번에는 미디안 백성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스라엘에 행한 것이 어떤 것이냐, 바로 먹을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사기 6:3–4 NKRV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그러니 원래는 밀을 바깥에서 타작을 해야 하는데, 타작만 하면 빼앗아가고 하니 공개적으로 타작을 할 수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기드온이 택한 방법이 무엇이었냐, 바로 포도주 틀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포도주 틀은 구덩이 같은 것을 깊게 판 후에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짜는 방식을 사용했었거든요. 그러니 안보이는 장소에서 몰래 밀을 타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당장의 먹을 것을 위해 몰래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의 선포를 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정말 대단하고 영광스러운 선포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을 듣고 있는 기드온의 상황이 어떤가요?
몰래 숨어서 누가 볼까 조용하게 밀을 타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큰 용사라고 부르시는 거잖아요.
물론 기드온이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훔쳐갈까봐 몰래 숨어서 타작하고 있는 자신의 앞에서 큰 용사라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어떤 기분이겠어요?
저 같았으면 정말 창피하고 어이가 없었을 것 같아요. ‘아니 지금 내가 이런 모습인데 어떻게 내가 큰 용사야?’
아마 기드온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13절에서 그 마음을 드러내죠. ‘주님 주님이 우리랑 계시면 왜 제가 지금 이러고 있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말해주었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출애굽하게 하셨던 모든 이적들은 다 어디갔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셔서 미디안에 손에 넘겨주신 것 아닙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가 가서 네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라 내가 널 보낸게 아니냐.’
기드온이 다시 대답합니다.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보세요. 저희 집은 므낫세 중에서도 약하고 저는 저희 집에서도 가장 작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너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할거야.’
이것이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방금까지 보았던 기드온. 혹시 내 양식 빼앗길까 숨어서 타작을 하던 모습. 용사의 모습보다는 그저 불만 많고 겁 많은 백성 1과 같은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용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서 민족을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 다른 어떤 이가 와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하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조롱을 했을겁니다.
그것은 기드온 스스로도 했던 생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본문 이후로도 계속 자신이 정말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 확인을 구합니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기드온은 용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애초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는 겁이 많은 사람인데다, 중요한 순간마다 확신을 못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표징을 구하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기드온은 용사라기보다는 요즘 유행어를 사용하면 ‘하남자’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두려워 떨때마다 모든 표징의 요구를 들어주시며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잘 아는 300명의 군인을 통해 큰 승리를 거두어 이스라엘을 구하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이전에 담임목사님께서도 말씀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 즉 상식이라는 것을 뛰어넘어서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보았을때에는 뭐 일 하나를 맡겨도 안될 것 같은 사람인데도, 이스라엘을 구할 사람으로 들어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기드온을 변화시키셨을까요? 어떻게 기드온은 용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사실 기드온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여 여룹바알이라는 칭호를 얻고서 두려워 하나님께 양털로 표징을 구한 것이 기드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모든 승리를 이끌고서도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아들의 이름을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아비멜렉으로 지은 것이 바로 기드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가 승리를 얻었을까요? 사실 그 승리는 그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을 해놓으셨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어떤 말을 했나요? 내가 너와 함꼐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이미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할 승리를 주실 것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저 기드온이 그것을 행할 자로 선택이 되었을 뿐이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기드온이 아니라 어떤 누가 그 자리에 있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한사람 한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로 돌아와볼까요? 어쩌면 우리도 청빙이라는 큰일을 앞에 두고 기드온처럼 두려워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될까? 어떤 분이 오셔서 우리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당연히 두렵고 떨리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죄많은 부족한 인간이기에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늘의 기드온과 같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요, 우리가 대단하고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승리를 우리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단지 그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난번 담임목사님께서 말씀해주신 사사기 말씀에 등장했던 바락과 같이, 두렵고 떨리지만 일단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일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큰 용기를 부어주시고, 택하신 우리 삼일교회를 통해, 새로 부임하실 6대 담임목사님과 함께 주님이 계획하신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지금 이시기에 가져야할 것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어야 합니다.
이미 승리를 계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승리를 쟁취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 승리가 우리가운데 임할지를 기대하며 하나님과 함께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죠.
어쩌면 혹자는 지금 이시기가 삼일교회의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리더가 교체된다는 것은 확실한 것보다는 불확실한 것들이 많아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은 그저 상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기드온을 통해 본 것처럼,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주님은 이 시기를 우리 삼일교회의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드실 것입니다.
어떤 기회일까요? 우리 삼일교회가 더욱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더욱 하나되는 기회이죠.
많은 이들이 이 시대 교회의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를 않고, 신자들의 수도 감소하고, 여러모로 어두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 어두운 시대에 교회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삼일교회가 분명 그 희망을 비추는 교회로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청빙의 시기, 이미 승리를 계획하고 이루실 주님을 기대하며 세상 가운데 주님이 이루실 희망의 승리를 선포하는 선교적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삼일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예수 늘 함께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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