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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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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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26절부터 40절에 담겨있는 빌립과 에티오피아 관리인 내시의 이야기 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여 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성령을 베푸는 안수를 돈으로 사고자 했다가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돌이키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본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사람들의 병이 고침을 받기도 하고 성안의 모든 사람이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기에 머물고자 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회심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들었으니, 이제 그들이 믿음 안에서 성숙하는 일을 돕기 위하여 그들에게 그 복음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빌립은 이제 이곳에 교회를 세우고 양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이곳에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면 빌립에게 성령이 말합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나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가사”라는 지명이 현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입니다. 블레셋의 옛 동네 이름 가자 혹은 가사라는 발음으로 한 것이지요. 아주 오래된 동네입니다. 삼손이 자주 찾아갔던 동네이기도 합니다. 지금 들려오는 굶주림과 전쟁의 소식으로 인해 정말 마음이 아픈 곳이지요. 다시 그 땅에 평화가 임하고, 복음 안에 자유를 누리는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어쨌든 성령은 빌립을 광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광야로 가라고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큰 기쁨이 있고 열매가 있고 할 일이 많은 사마리아에 머무르겠습니까? 아니면, 아무 것도 없고 기대할 수 없는 광야로 내려가시겠습니까?
광야는 모험하는 장소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하고 먹을 것과 머무를 곳을 찾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오늘 날과 같이 여행갈 때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미리 호텔을 예약하고 먹을 장소를 찾아서 무엇을 먹을 지 준비해두고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준비하고 예약할 수 없지만, 또한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지요.
빌립에게 광야로 내려가라고 했을 때에 빌립은 즉시 순종합니다. 27절에 보면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 저것 따져보고 준비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바로 일어나 광야로 간 것입니다. 안정이 아니라 모험을 택한 것입니다.
스위스 의사이자 상담가였던 폴 투르니에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인생은 안전하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험 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스릴을 찾는 위험한 도박이 아니라,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과 성장을 모험이라 불렀습니다.
성경 속 베드로도 그런 모험을 경험했습니다.
풍랑이 이는 갈릴리 바다 위에서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이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 밖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믿음의 모험이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경험은, 배 안에 안전하게 앉아 있었더라면 절대 누릴 수 없는 것이었죠.
폴 투르니에는 말합니다.
"모험은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드는 것이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계산기를 두드리며 안전만 확보하려 하면 모험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발을 내딛는 순간이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 삶에도, 하나님께서 “오라” 하시지만 여전히 배 안에 머물러 있는 영역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믿음의 모험의 출발점입니다.
모험은 뛰어드는 순간 시작됩니다.
모험은 믿음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또한 우리에게 믿음을 가장 극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로 믿음으로 뛰어드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를 더하여 주셔서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경험하게 하실 것이고, 결국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광야로 내려갔을 때에, 그는 에티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관리인을 만났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재무장관 정도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이스라엘 간의 뿌리깊은 관계는 주전 10세기, 솔로몬 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멀리서 찾아온 시바 여왕 이야기(열왕기상 10장)는 에티오피아 왕 연대기에 의해 왕국 건설 전승으로 발전합니다. 이 둘 사이에 태어난 메르네크 1세가 본국으로 돌아온 후 악숨에 왕국을 창설했다는 것입니다. 그 뿌리에서 태어난 친 이스라엘 에티오피아 왕국은 매년 이스라엘 절기(유월절)마다 이스라엘에 공식 사신을 파견해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8장의 에티오피아 내시는 개인 자격으로 이스라엘에 온 것이 아니라, 왕의 파송을 받은 국가 사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당시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이방인의 뜰도 있었지요. 이 내시도 개인적으로 유대교로 개종을 하고서, 유대의 중요한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왔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예루살렘을 찾았든, 그는 분명 예루살렘 성전에서 열린 절기에 참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곳에서 자신은 철저히 차별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 어떤 성경학자는 그가 내시이므로, 이방인의 뜰까지도 들어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성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절기에 참석한 내시는 유대인들이 어린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양을 그를 표현하는 비유를 보면서 그가 누구인지가 궁금해졌을 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그는 더 진지하게 알고 싶었다. 이 중요한 시점에 만난 사람이 전도자 빌립이었다.
또 그는 믿음을 단순한 지적 동의로 여기지 않고, 인격적 위탁으로 받았다. 그가 질문하던 바를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을 때(행 8:35)’, 그는 너무 기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유월절 어린 양의 도살과 이사야 53장, 그리고 풍문으로 들었던 십자가에 달린 유대인 이야기가 한 고리로 연결되면서, 드디어 그가 찾던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때 그가 주저없이 요청한 것이 세례였다(행 8:36).
내시는 이스라엘 어디에서 세례를 받았을까? 가사를 따라 지중해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브엘세바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작은 시내가 있다. 이름은 브솔 시내이다.
브솔은 히브리어로 ‘기쁜 소식’이란 뜻이다. 이 뜻깊은 브솔 시내에서 역사상 최초로 이방인이 세례 받고 영혼이 회복된 기쁜 사건이 일어났다.
내시가 세례를 받은 후 보인 태도는 구원받은 자들의 마땅한 변화를 보여준다. ‘내시는 기쁘게 그의 길을 가므로
도대체 내시에게 기쁠 일이 무엇인가? 그는 8천km를 돌고 돌아 고향까지 가는 길, 가사에서 이집트까지 가는 긴 시나이 사막을 지나야 하고, 이집트에서 나일강을 따라 험한 길을 재촉해야 했다. 강도의 위험, 폭우, 폭염의 위험, 굶주림과 목마름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분명히 기뻤을 것이다.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삶의 목적, 생명의 주인, 구원의 확신을 얻을 때 오기 때문이다. 구원은 우리가 가는 길에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길을 간다는 것이다.
빌립의 모험으로의 순종을 통해 에티오피아 내시가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고 그도 기쁨 가운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데살로니카 칙령으로 로마의 국교를 기독교로 정했는데, 누비아 왕국, 지금의 에티오피아는 330년에 이미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것은 아닙니다만, 아르메니아가 301년에 기독교를 국교화함. 로마보다 앞서 국교로 지정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빌립의 전도를 통해 200년 후에 나라 전체가 예수를 믿는 나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험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같아 보이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한계에 갇혀 지내지 마시고, 더 오랜 시간, 더 넓은 지역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모험의 여정을 떠나시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