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바람이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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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도입
여름 수련회 첫번째 날입니다. / 이번 수련회 주제는 부흥입니다 / 사실 부흥이라는 단어는 모든 집회 때마다 쓰이는 어떻게 보면 식상한 단어 / 너무나 중요한 단어인데, 우리 안에서 식상한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속상 / 그래서, 부흥을 뭔가 다르게 표현할 수 없을까 / 엘레베이션처치의 찬양의 제목을 본 따서 “불과 바람이 만났을 때” 마음에 와 닿았다
새로운 바람
더디사이플이 만들어지고 난 후 첫 겨울수련회 주제가 무엇인지 기억하나? / 새로운 바람이었다. /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바람을 비유하며 말씀하셨습니다. /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떻게 언제, 어디로 부는지 우리가 통제할수도 알수도 없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바람이 분다는 걸 압니다. 어떻게 알죠? /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뺨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 나무가 흔들리기도 합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 성령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서 어떻게 부는지 알 수 없지만, 바람에 의한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령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 예배가 회복되고, 믿지 않는 자들이 회심을 하고, 공동체 가운데 활기가 불어오는 등이죠. / 저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이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당연한 걸로 볼지 모르겠지만,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사역을 해본 저는 압니다. / 바람이 불지 않는데, 연을 띠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 별거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계속 망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가는 느낌입니다. / 옆 사람 보며 고백 / 이 바람이 느껴지니?
오늘 사도행전 오순절 성령강림 역사를 보니깐, 성령의 바람과 불이 임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 주제 /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입니다 /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거룩한 불꽃이 각 사람 가운데 임하는 오늘 이 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듣기 전에 찬양합시다
진실한 예배자로 거룩한 불꽃으로 주께 드리기 원하네
삶으로 고백하며 무릎으로 지킬 때 아버지여 영광 받으소서
주 찬양해 전심으로 / 주 경배해 내 온 힘 다하여
나의 생애로 주를 갈망하오니 / 성령이여 임하소서 / 우리에게 임하소서
거룩한 보좌 앞에 나의 삶을 드리며 / 주를 높이기 원하네
주의 얼굴 구할 때 / 주의 영을 부으사 / 성령이여 여기 임하소서
오순절이 필요한 이유
오순절은 무엇일까요?
예전이긴 하지만, 독일의 철학자 한병철 박사가 쓴 피로사회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죠.
성과 중심의 한국사회는 지쳐있고 번아웃되어 있는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 할게 너무 많은 거죠. / 우리는 충만한 상태라기 보단 무언가 지쳐 있고, 소진된 상태죠. / 그래서, 휴일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여유와 쉼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 심지어 한 해를 살아가야 할 이유를 긴 연휴에서 찾기도 하죠.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항상 분주하죠. 항상 바쁘고, 항상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압박을 받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을 주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오순절은 채움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 공허함이 아닌 충만함의 날이죠. / 그렇기 때문에 오순절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수련회가 우리의 영적인 소진됨이 채워지는 오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순절의 원래 의미
본격적으로 말씀 살펴보기 전에,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르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 이게 무슨 말이라면, 오순절은 이전부터 있었던 날이었다라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오순절’은 유대인의 절기였고, 명절이었다라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순절은 어떤 절기였을까?
우선 ‘오순절(Pentecost: 펜느코스트)’이라는 단어는 ‘다섯’을 뜻하는 접두어 ‘Pente’에서 나왔습니다. Pentagon도 같은 어원이죠. / 그래서 오순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 후를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오순절이 되면 처음 거둔 곡식을 가지고 감사의 절기를 드린 것입니다. / 이 절기가 유월절 이후 50일쯤이었고,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던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던 절기였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순절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데 /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사건을 기념하게 됩니다. / 왜냐하면 이 사건 역시 유월절 이후 약 50일쯤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오순절: 율법과 새로운 백성
그래서 구약의 시내산 사건을 첫번째 오순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기념비적인 엄청난 사건인데. / 출애굽기 18–20장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이르자 하나님께서 불과 바람 가운데 산 위에 강림하십니다. / 그러자 산은 진동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번개, 연기, 진동을 보며 두려움에 떨며 말합니다. / “모세, 네가 직접 하나님 말씀을 전해 줘. 우리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우리가 죽을 것 같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기를 원하셨지만, 백성들이 그 임재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죠 / 그래서, 모세만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내려옵니다. / 그 말씀이, 바로 십계명,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여러분, 율법이 주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 나라가 세워지려면 그 나라의 법이 있어야 하죠 /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이 주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은 이제 단순한 유목민 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오순절의 의미였습니다. / 뭐라고요?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산, 새로운 사역, 새로운 백성
그런데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그 의미를 완전히 뒤바꿉니다. / 이날 해가 떠오를 때만 해도 오순절은 과거의 절기였습니다. / 하지만 해가 질 때쯤, 오순절은 **전혀 다른 것**, **훨씬 더 위대한 것**,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새로운 산, 새로운 사역, 새로운 백성**입니다.
새로운 산: 불과 바람의 임재
새로운 산: 불과 바람의 임재
그렇다면, 첫번째 ‘새로운 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절부터 4절입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 제자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 하나님이 그 위에 임한 것이죠 /
우리는 이 구절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습니다. / 그런데, 정통 유대인들이 이 본문을 읽으면 놀라 자빠질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이게 말도 안된다고 말할거에요.
불의 의미: 하나님의 속성과 경계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불** 가운데 임하십니다. / 모세가 본 불타는 떨기나무, 광야의 불기둥, 시내산의 불, 다 불이죠. / 불은 무슨의미일까요
1. **불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2. **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줍니다. / 불은 정결케 하고, 정화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3. **불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여줍니다.
4.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은 하나님께 ‘접근 불가’임을 나타냅니다.**
불은 가까이 가면 따뜻하지만, 너무 가까우면 타 죽죠 /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원하지만, 그분이 너무 가까이 오는 건 감당할 수 없습니다. /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던것처럼 말입니다.
이 말이 추상적으로 들려질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겪는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습니다. /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진 않으려고 합니다.** / 왜냐하면 너무 가까이 가면, 뭔가 내 삶이 꼬일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 내 삶의 통제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죠.
아마 오늘 여러분들도 동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은혜받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있잖아요 / 내가 오늘 제대로 은혜받으면 내 뜻대로 살지 못할거 같은 두려움이죠. / 그래서 우린 은혜는 받지만 내 뜻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였어요 / 그들은 아름다움의 불은 원했습니다 / 그래서 시내산에 가까이 가려고 했죠. /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의 불은 견딜 수 없는 겁니다. /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그렇게 말합겁니다 / 우리는 하나님 더 알고 보고 싶지만, 감당할 수 없으니 모세, 당신이 가십시오“ 이것이 첫번째 오순절이였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이 모습이 아닌가 /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지만, 내 삶의 통제권은 내려놓고 싶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산이 되다
그런데, 두번째 오순절날 하나님이 다시 임하셨습니다. / 불과 바람으로 임하셨죠 / 그런데, 보세요 / 불과 바람은 있는데 산이 없죠.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산으로 임했던 불과 바람이 이제 어디로 내려옵니까? / 제자들 위로 내려옵니다. / 우리 위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산이 된 겁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바람과 불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라고 말하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만남의 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의 장막이 되었다라는 것이죠 /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시내산 이전에도 암시되어 있었는데요 / 출애굽 이전에 하나님은 시내산 기슭에서 모세를 떨기나무 속에서 만나셨기 때문입니다.
떨기나무 속의 하나님의 임재
이때 처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만났습니다. / 주목할 점은 떨기나무가 불탔지만, 불타 사라지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 그렇다고 더 큰 종려나무나 참나무로 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불탔지만 여전히 떨기나무였습니다. / 하나님의 권능, 거룩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그 떨기나무 안에 머물며 불타올랐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본성이 다른 존재 속에 임할 때, 그것을 파괴하거나 소멸시키지 않고, 오히려 불타오르게 하고, 빛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첫번째 핵심은 여러분이 믿는 자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장소라는 것이죠 / 그래서 이 장소에 하나님이 임하시는게 아닙니다. 그건 구약적인 사고죠 / 신약적인 사고는 이 공간과 장소가 아니라 여러분 각자 위에 하나님의 불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 옆 사람 보며 “당신은 하나님의 산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우리 안에 임하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불이 성전에 내려오자 제사장들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되어 있죠. / 왜냐하면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 그 임재가 우리 안에 임한다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주장이죠 / 어떤 종교도 이와 같은 놀라운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러분, 믿기나여? /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 그분의 생명이. 그분의 영이 그분의 마음과 영광, 그분의 거룩함, 그분의 아름다움이 우리 안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방이라도 썩어없어질 것만 같은 연약한 떨기나무와 같은 존재들이죠. /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우리 안에 타오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놀라운 말입니다. / 만약 모세가 이 말씀을 읽었다면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나이 든 티를 내자면, 제가 어렸을 때는 휴대폰이라는게 없었습니다. / 집에 전화, 다이얼전화 / 친구 전화하려면 부모님과 통화했어야 했다 / 그러다가 삐삐인데, 음성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기면 삐빅 거리는 기계 / 확인하여면 전화로 확인 / 공중전화에 음성 들으려고 길게 줄을 섬 / 카페 테이블 위에 전화가 있었다 / 이 당시에 개인 휴대폰, 컬러가 있는 터치폰, 영상통화는 SF영화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저희 아이들 보니깐 태어날때부터 스마트폰이 있는거죠 / 그러다보니깐, 아무런 감동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합니다 / 이전의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고대했던 기기였는지를 실감하지 못하기 떄문,
마찬가지로 모세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너가 지금 받은 축복이 무엇인지 아니?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 바위 틈에 숨어서 어렴풋이 봐야 했던 것, 제사들도 함부러 다가가지 못했던 것, 그게 지금 네 안에 들어와있다는 거야.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능력의 불, 심지어 그분의 거룩함까지 네 안에 임할 수 있다고!”
그리고 모세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 “너는 지금 그 사실에 감격하고 있니? 네가 그런 존재라는거에 감격하고 있니? 이 놀라운 진리가 너의 삶을 사로 잡고 있니? 이 사실이 너의 삶을 사로잡는다면, 너는 그분을 닮아가는 능력을 얻게 될거야”
여러분, 떨기나무는 여전히 앙상한 떨기나무지만,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아름답고 강력한 떨기나무가 되듯이, 떨기나무와 같은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불이 임하면 영광스러운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곳에 아직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분들 있을 겁니다.
무엇을 믿어야 할지, 또 믿어지지 않아서 답답한 분들은 아마 이러한 생각을 할 겁니다. / 교회에 온지 얼마 안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사람도 똑같은 고민일 수 있습니다. / 많은 설교를 듣고 기독교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언제쯤 나는 진짜 믿음을 가지게 될까요? 언제쯤 나에게 믿음이 실제가 되는 걸까요?”
“지금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데, 언제쯤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걸까요”
그러면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느낌이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돼” / ”감정이 없어도 순종해라“ 물론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 제가 에프라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무언가를 느낍니다. / 왜 하나님의 영을 불과 바람이라고 했을까요? / 그것은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밖에 나갔는데,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고, 나무도 풀잎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바람이 없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고,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을 흔들리게 되고 움직이게 됩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수 없지만, 바람을 느끼듯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걸까요?
“나는 지금 만족해, 난 언제나 예배의 자리를 지켜왔고, 가끔 예배 때 감동을 느끼긴 해, 그러면 된거 아냐?” / 이건 성령의 역사가 아니죠, / 이렇게 말한다면, 성령을 모르는 겁니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진동케 하고, 움직이게 합니다. / “전 하나님 더 알고 싶어요. 아직 목이 마릅니다. 주를 향한 갈망이 저를 괴롭게 합니다. 제 마음은 메말라있고, 공허합니다. 주님, 오늘 밤 오셔셔 저를 채워주세요”
마음이 요동칩니다. 때로는 탄식이 있고, 눈물이 있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보며 괴로워합니다. / 이것이 바로 성령이 하는 일입니다. / 말할 수 없는 탄식 가운데 있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멈추지 마세요. 하나님을 향한 추구를 멈추지 마세요. 계속 구하세요.
단순한 깨달음과 감동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성령을 더 깊이 경험할 때까지 그분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의 신앙이 시내산을 바라보기만 하는 첫번째 오순절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 이 밤에는 하나님이 산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두번째 오순절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 더 원합니다 (가사)
새로운 사역
새로운 사역
오순절이 보여주는 두 번째 위대한 사실은 우리가 산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오순절과 두 번째 오순절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오순절은 모세 사람만 올라가고, 나머지는 다 멀리서 기다립니다. / 오직 한 사람만 하나님을 경험하고, 오직 한 사람만 메시지를 받아 내려옵니다. / 그리고 모세는 율법을 가지고 내려오죠.
여러분,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 율법은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 정직해라, 베풀어해라, 사랑해라, 신실하라, 율법은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오순절에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4절을 보면, 그들 모두가 말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그냥 말한게 아니죠 /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 당시 그곳에는 20개가 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이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모두가 자기 언어로 알아 듣습니다. / 놀라운 기적이죠.
우리는 여기서 보통 “방언”자체에 관심을 두지만, 더 놀라운 것은 다음입니다. / 1장을 보면 방안에 120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들 모두가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무엇을 말했을까요?
…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자신의 언어로 선포하는 것을 들었다라고 말하죠.
“하나님의 큰 일”이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라는 뜻인데, 제자들은 이 일을 찬양하고, 노래하며, 기뻐하며, 그 위대한 일을 전했다라는 것입니다. / 자,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이후에 베드로가 나와서 설교를 하면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선포합니다.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이제는 한 명의 선지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 모세, 특별한 한명이 아니라 너희의 아들 딸들, 젊은이, 늙은이, 남종과 여종 모두가 예언할 것이다 / 이게 무슨 뜻일까요?
첫번째 오순절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산 위에 올라가게 된다라는 것이죠./ 심지어 모세보다 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 모세는 불을 보았죠. 그런데 우리는 불을 받습니다.
그리고, 모세 한 사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모두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율법에서 복음으로
모세가 말한 첫번째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 우리가 해야 될 위대한 일들이었습니다. / 정직하라, 사랑하라,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당신이 해야 할 위대한 일들,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지만, 두번째 오순절 날에 모두가 무엇을 말하기 시작합니까? /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 이게 무슨 말일까요?
복음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다
크게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 하나는 "신을 만나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고행하는 데 있지 않다라고 말하죠. / 복음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이미 하신일에 관한 것입니다. /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제 역사에 관한 것이죠
여러분 그렇습니다 /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복음은 완전히 다른 종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당시 가난한 자들과 노예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요. / “서로 사랑하세요. 선한 일을 해야 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전했을까요? / 만약 그렇게 복음을 전했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겁니다.
착하게 살아야지, 나만 생각하지 말고 사랑해야지”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삶이 바뀌지 않기 때문압니다. / 여러분도 경험했겠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아무리 머리로 배워도 그대로 행하지는 않잖아요. / 아는 것으로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전한 복음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였습니다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전하기 시작한거에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 이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이 우리가 받아야 될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분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 이 메시지가 가난한 자와 노예를 일으킨 것입니다. / 이 메시지가 로마 제국을 뒤집어 놓은 것이죠.
제자들은 모세처럼, 혹은 다른 모든 종교처럼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 있나요 아니면 첫번째 아직도 오순절에 머물러 있나요.
선지들이 전한 메시지는 언제나 부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믿는 우리 모두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 속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 “하나님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로 삼으사,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 여러분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가 전할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복음을 갈망했다.” /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냐, / 베드로는 천사들처럼 복음을 바라보게 한다고 말합니다.
…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여러분, 천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들이죠 / 이러한 천사들마저 복음을 바라보는 데 지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 살펴보기를 원한다” 간절히 열망하다라는 뜻으로 복음의 풍성함과 신비를 날마다 들여다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이와 같이 된다는 것이죠. / 복음이 너무 좋은 겁니다 / 그래서 날마다 복음을 노래하고, 기뻐하고, 그 복음 앞에 예배하고, 복음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것, 이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죄로 삼으사,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이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아, 이거 다 아는 거잖아요“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령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갈망했던 그 복음을 우리로 하여금 깊이 깨닫게 하시고, 감격하게 하십니다.
(예:영화): 인터스텔라
그래서, 복음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 속에 있는 풍성함과 그 의미에 감탄하게 되죠. / 그렇게 복음을 깊이 이해하고, 매일 매일 밥 먹듯이 복음을 먹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사들도 날마다 복음을 들여다본다고 성경은 말하잖아요. / 복음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
우리 안에 성령이 역사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복음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는 것이죠. /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겁니다. /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내가 복음을 담을 수 있을까, 춤, 영화, 문학, 다 마찬가지죠 / 내가 어떻게 복음을 담을 수 있을까. 일터에서 캠퍼스에서 견딜수 없는거죠. / 이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입니다.
“기독교가 싫은 이유”에 대한 반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 주위에 기독교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이 얘기하죠 / “기독교를 믿는 건 좋은데, “왜 자꾸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려 하냐, 우월감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 어떤 죽어가던 사람이 어떤 약을 먹고 살아났다고 칩시다 / 그래서 이 사람이 밖으러 나가서 자신처럼 아픈 사람을 찾아가 말합니다 / “이 약이 날 살렸어요!” /
여러분, 이게 우월감 때문일까요? / 아니죠. 사랑 때문이죠 / 이게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조선에서 순교한 R.J.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
1866년, 조선은 외국인 출입이 금지됐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이 입국하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하지만 한 척의 미국 배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출발합니다.(제너럴 셔먼호) / 배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부를 꿈꾸고 있었는데, 조선 물품을 가져가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땅에 성경을 전해주기 위해 이 배를 탑니다.
그런데, 상륙을 앞두고 배에 불이 나 침몰하기 시작합니다. /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배에 내려 싸우려 했지만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때 토마스 선교사는 무기가 아닌 성경을 안고 배에서 뛰어 내립니다. / 수많은 조선인들이 몽둥이로 그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 하지만, 토마스 선교사는 끝까지 성경을 그들에게 전해주며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고,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월감에서 나온 행동일까요? / 우월감을 가진 사람은 절대 남을 위해 죽지 않습니다. / 토마스 선교사는 그리스도에 사랑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더이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를 위해 살게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례하게 복음을 강요해서는 안 되겠죠. / 우리는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 목사나 선교사만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새로운 사역을 의미합니다. / 여러분 모두는 선지자인줄 믿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모세같은 사람만, 목사와 선교사만 시내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산입니다 / 성경은 말하죠.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오순절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산에 올라가 복음을 들은 자들입니다. / 그러기에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 끝나고 기도 시간에 제가 여러분 한명 한명 안수하며 기도하면 좋겠지만, 한명당 1분 한다해도 100분이 넘죠. / 여러분, ”자녀들은 예언한 것이죠 청년들을 환상을 볼 것이다“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산,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할 때 더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새로운 백성
새로운 백성
새로운 산, 새로운 사역, 마지막, 새로운 백성입니다.
첫번째 오순절은 율법이 내려와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민족이 되었죠. / 두번째 오순절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 내려왔습니다. /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이 내려온 것입니다. / 이 사실은 더 놀랍고 깊은 의미가 있는데요.
오순절은 시내산 뿐 아니라 다른 산, 다른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입니다. / 11장 1절은 말합니다. / “온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까지 닿는 탑을 만들어, 엄청난 도시와 문명을 세우자고 합니다. / 뭐 도시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 잘못이겠습니까 /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우리의 이름을 내고,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 같은 언어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과 싸움,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바로 오늘날 인간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요?
여러분, 서울에 왜 오셨습니까? / 물론 이곳에서 태어난 분들도 있을테지만. / 우리가 대도시로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나의 이력과 나의 커리어, 나의 성공, “내 이름을 알리기”위해서죠.
그래서 바벨탑은 세상의 모든 도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샘플입니다. /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알리기 위해 서로를 증오하고, 경쟁하고, 계급과 지위를 나누고, 차별하고, 서로가 싸우는 것이 오늘날 세상 도시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같은 언어를 쓴다해도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모인다면 엄청난 갈등과 분열이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죠.
자기 이름 대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뭉칠 때 일어나는 연합
그러나 반대로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뭉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100개 이상의 언어가 있어도 엄청난 연합이 일어납니다. / 복음이 모든 인종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것이죠 / 복음은 서로를 향한 미움과 갈등을 치유하여 서로를 연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비록 언어와 문화가 다를지라도, 모두가 하나의 메시지로 알아 듣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 복음이 모든 문화적 장벽을 뚫고 지나가는 겁니다. / 여러분 이것이 방언의 기적입니다.
복음은 모든 갈등의 장벽을 뚫고 지나가 바벨의 저주를 역전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을 보면 갈릴리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라고 말합니다. / 왜 그랬을까요? / 갈릴리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편협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 워낙에 강한 공동체 문화이다 보니깐, 폐쇄적이고, 다른 지역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복음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구원은 너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행위로 얻는 것이고, 너의 선함이 아닌 하나님의 선함으로 얻는 것이다. / 너가 뭔가를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다”
이 말은 더이상 우리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 더 이상 방어적일 필요도 없죠. / 그렇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사람들한테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게 아니잖아요 /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향해 우월감을 가질 수 없는 거빈다. / 복음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복음은 내가 아무리 교회에서 오랫동안 헌신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이제 막 믿은 초신자에게 배울 수 있는 멋진 사람으로 만듭니다 / 문화적으로 편협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죠. /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자 그 일이 일어난 겁니다. / 문화적 편협함과 문화적 우월감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된 것이죠 / 이방인들에게 그렇게 배타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친구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에 교회 밖에서는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면, 그 공동체는 성령충만한 공동체입니다. / 성령의 역사는 바벨의 저주를 뒤집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각자의 이름을 위해 모인다면, 끊임없이 분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 아니, 차이의 극복이 아닙니다. / 차이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아름다운 화모니를 내는 놀라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공동체를 자부하자면, 정말 하나같이 다 독특하다라는 겁니다.
전 여러분들이 똑같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하나같이 다 특이하고, 이상한데 /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에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바라건데 ‘더디의 문화는 이런거야‘ 절대 하지 마십시오. / 우리만의 문화를 세우는 것은 또 하나의 벽을 만드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세워야 하는 문화는 오직 복음의 문화입니다. / 복음이 아닌 문화는 서로를 구분짓게 하지만, 복음의 문화는 서로를 하나되게 만듭니다.
여러분, 저희 아직 부족합니다. /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문화적 장벽이 있습니다 / 그 장벽이 견고해지기 전에 계속해서 복음으로 그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 오늘 이 밤에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장벽이 무너지고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복음으로 세워진 공동체를 통해 오늘 우리 시대에 펼쳐질 행전을 이어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 그 공동체가 더디사이플이 되기를 함께 소망하고 기도합시다.
말씀 정리하겠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죠?
첫째, 우리는 새 산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둘째, 복음을 사랑하고 멈추지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셋째, 복음 안에서 서로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도 변화시킵니다.
오늘 이 밤이 성령의 불과 바람이 만나는 우리 모두의 오순절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반주]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을 구한다는게 얼마나 위험한지를요.
신구약 모두 하나님의 불을 말할 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말합니다. / 이것은 무언가를 불사르고, 태워 없애는 불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불은 임재의 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판의 불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첫번째 오순절, 시내산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 그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죠. / 그래서 모세를 대신해서 올려 보낸 것입니다. / “우리를 대신해 불을 맞아달라”는 것이죠.
하지만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위 틈에서 희미하게 봤을 뿐입니다 / 그래서 이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는 부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에게도 우리를 대신에 산에 올라가신 분이 있습니다.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 크신 분이죠.
이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불을 이땅에 던지러 왔노라” / “내가 받을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겠느냐? 내가 마실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 /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오르신 산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해골산‘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 그분은 우리의 중보자로써 십자가라는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신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은 그 위에 떨어졌습니다. / 소멸하는 불, 하나님의 불은 그의 아들을 불살랐습니다. / 우리를 대신해 불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죠 / 고난의 잔, 불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는 불에 타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십자가 나무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소멸하는 불에 의해 사그라지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의 불을 받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임재의 아름다운 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노래하고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을 받아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 오히려 정결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 정금과 같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불꽃이 너희를 사르지 못하니 내 뜻은 한 가지 찌꺼기 태워서 정금을 내리라” - 존 리펀
기도합시다.
주님, 당신의 불을 내려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오순절의 능력을 깨닫게 하시고, 그 약속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 약속에 감탄하지 못하고,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소서 우리 각자가 당신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시고, 복음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내 하나님과 왕의 영광과 그의 은혜의 승리를 노래하리라’고 부르게 하소서. 그렇게 살게 하시고,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