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거를 보이라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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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8:16-24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2025. 8. 15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너희가 중단하고 있는 연보를 다시 시작하라”고 권면한 말씀을 나눴는데요. 오늘 본문은 너희가 다시 연보를 시작해서 모아두면, 그것을 믿음의 형제들에게 전달해주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연보는 이웃을 위해서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구제헌금을 말하는데요.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모으고 있어요. 이것을 모아놓으면, 누군가가 이것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전달을 해야 되겠죠. 이 일을 누가 해야 될까요? 바울이 시작한 일이니까 바울이 직접 고린도교회로 가서 가져와야겠지만, 아직 고린도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갈 수가 없었어요.
이미 고린도후서 2장 1절에,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을 했다고 썼거든요. 이 말은 내가 아직 고린도교회를 다시 방문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울이 언젠가 다시 방문을 하긴 할 건데, 아직은 아니라는 겁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금전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의심을 받았었어요. 앞에서는 사례비를 안 받으면서 뒤에서 성도들의 돈을 빼돌린다는 의심이 있었고, 아직까지도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이 갑자기 와가지고 연보를 모으라는 말을 하면, 교회 분위기가 아무래도 이상해질 수밖에 없겠죠.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바울이 직접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는 겁니다. 이때 그냥 빈손으로 보내는 게 아니라, 고린도후서를 들려서 보내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고린도후서를 다 쓰고 나서 이것을 전달시키는 거죠. 그래서 성도들이 이것을 읽고, 연보를 다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모을 때까지, 교회에 머무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검증된 사람들을 보내야겠죠. 그래서 바울이 총 세 명을 보내는데, 그 중에 한 명은 디도였습니다. 디도가 이미 한번 고린도에 갔다 왔는데, 다시 한번 보내는 겁니다. 디도를 다시 보내는 이유는 그가 고린도교회와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디도를 신뢰할 수 있겠죠. 그래서 디도를 보낸 겁니다.
그리고 또 디도가 스스로 내가 가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자, 오늘 본문 16절을 봐 볼까요? 1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아멘.
디도에게 하나님께서 간절함을 주셨어요. 그런데 어떤 간절함이냐, 나와 같은 간절함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가 간절함을 갖고 있는데, 디도에게도 나와 같은 간절함을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디도가 자원한 거예요. 밑에 17절도 봐 볼까요? 17절도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아멘.
바울이 디도에게 고린도교회로 가라고 권했더니, 그가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였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하겠다고 자원을 한 거죠.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디도 한 사람만 보내지 않고, 두 사람을 더 보냅니다. 그래서 밑에 20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해요. 20절에 보니까,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고, 디도만 보내지 않고 두 사람을 더 보냈다는 거죠. 아무래도 돈에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디도 한 사람만 가면 삥땅을 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고, 또 혼자 가다가 강도를 만나거나 분실을 할 위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 모든 비방과 의심을 차단하기 위해 두 사람을 같이 보낸 겁니다.
이때 두 사람은 이름은 나오지 않아요. 왜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성도들이 이미 이 두 사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 두 사람도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었어요. 18절을 보면, 한 형제는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이 사람은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 그래요. 여기서 여러 교회는 마게도냐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이미 연보를 모아서 바울에게 전달을 했거든요. 바울은 모든 연보를 다 모아서 한꺼번에 들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이때 마게도냐 교회들의 택함을 받아서 바울에게 연보를 전달한 사람이 바로 이 형젭니다. 이름은 안 나오지만, 이 사람이 이미 한번 연보전달의 임무를 완수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특별히 이 사람을 동행시킨 겁니다. 경험자니까 신뢰할 수 있는 거죠.
또 이뿐 아니라 한 사람을 더 동행시킵니다. 22절 봐 볼까요?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이 사람도 이름은 안 나오는데, 이 사람에게도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했어요. 자체검증이 끝난 거죠. 또 이 사람은 고린도교회에 대한 믿음이 큽니다.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그가 왜 고린도교회를 크게 믿었을까요? 아마도 그가 이미 고린도교회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신앙을 회복하고 연보사역에 기꺼이 동참하리라는 것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세 사람을 고린도로 보냈어요. 이 사람들은 모두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고, 무엇보다도 고린도교회에 대한 간절함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는 이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24절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 이것이 너희가 그들에게 보여줄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자, 2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아멘.
그들에게 사랑과 증거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맞이하고, 돌보고, 섬기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너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증거를 보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으로 증거를 보일까요? 연보를 통해서죠. 너희가 너희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자원하여서 구제헌금을 모아라. 그러면, 내가 마게도냐 교회들을 자랑한 것같이, 너희들도 자랑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겁니다.
단순히 돈을 모아줘서가 아니라, 시작한 일을 완수하는 결단과, 나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섬김의 본을 보일 때 다른 교회에 모범이 되는 거예요. 교회가 크다고 해서 모범이 되는 게 아니고, 은사가 많다고 해서도 아니고, 부흥이 잘된다고 해서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처럼, 믿음과 섬김의 본을 보일 때에야 모범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신뢰 받는 세 사람을 보내서 그것을 돕도록 했습니다. 누구보다 고린도교회에 대한 간절함을 가진 세 사람을 통하여 사랑과 증거가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사랑과 증거가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들도, 디도와 두 형제처럼 신뢰받는 자들이 되어서 믿음이 약한 자들의 믿음을 북돋아주고, 그들을 격려하여서, 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선한 영향력을 주는 믿음의 선배들이 되어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고 택함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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