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휘파람을 부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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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가랴 10장
제목: 하나님이 휘파람을 부실 때
[서론]
최근에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편해지는데 그 편안함이 오히려 인간을 더 나약하게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고없이 찾아오는 고난이 오히려 유익일수도 있겠구나.”
누군가의 말처럼 “죽지 않을 정도의 고난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 고난은 어느 누구나 피하고자 하는 불쳥객입니다.
제 주변에도 큰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난’이란 단순히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잠시 겪는 어려움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할수 없는 거대한 파도와 같은 고난을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제일 먼저 그 원인을 나한테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다 내 잘못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난은 나와는 아무 상관없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욥기의 욥이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흠없는 삶을 살았지만, 이유를 알수 없는 혹독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혹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까?
내 주변에는 이런 일이 없었습니까?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 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의 파도가 밀려온 경우가 있습니다.
이 고난이 계속될 때 우리는 계속해서 묻습니다.
“하나님, 이 고난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그 질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답답함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고난, 언제 끝날지 알수 없는 고난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본론1]
우리는 지난주 스가랴서의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올때 회복에 대한 가슴벅찬 기대를 가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겠지,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의 영광을 되찾겠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꿈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들이 맞이한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새롭게 세워진 성전은 짓다만 건물처럼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무능하게 여겨졌습니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깊은 영적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무기력해진 신앙은 현실과 타협하게 만듭니다.
점점 그들에게 신앙은 삶의 뒷전이 되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또한 미래가 보이지 않고 암담하기만 하자 마음을 의지할 또 다른 대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과 점쟁이입니다.
2절입니다.
“드라빔 우상은 헛소리나 하고, 점쟁이는 거짓 환상을 본다. 그들은 꾸며낸 꿈 이야기를 하며, 헛된 말로 위로하니 백성은 양떼같이 방황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고통을 당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체할 대상을 찾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점쟁이를 찾습니다.
그들에게서 위로와 만족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당시 대표적인 우상이 드라빔입니다.
드라빔은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가정의 수호신입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집에서 훔쳐온 물건이 바로 이 드라빔입니다.
세월이 지나도 이 우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 마음 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말은 모두 헛소리이고, 꾸며낸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른 길을 제시하십니다.
하나님께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주팔자, 점과 같은 무속에 빠지곤 합니다.
방송에서조차 연예인들이 자주 타로점이나 무당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 무속은 사람들에게 마치 놀이문화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과 불안함의 탈출구로 삼는 것입니다.
현실이 힘들고,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거짓말이자 헛된 위로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세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1절입니다.
“너희는 봄철에 비를 내려달라고 주님께 빌어라”
이스라엘 땅은 ‘천수답’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수 없는 척박한 땅입니다.
하늘만 쳐다봐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는 두가지 중요한 비가 있습니다.
가을에 내리는 비가 이른 비이고, 봄에 내리는 비가 늦은 비입니다.
이른 비가 씨앗이 싹트고 자라게 한다면, 늦은 비는 곡식이 무르익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래서 늦은 비가 없으면 그 동안의 모든 수고가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바로 이 점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에 민감했습니다.
우상에 곁눈질할 위험성이 언제나 존재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는 비를 통제할수 없으니 눈에 보이고 잡히는 우상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이 천수답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분이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수답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큰 고난이 닥치면 누군가는 헛된 것들을 찾아 의지하려 합니다.
그러다가 사람에게 상처받습니다.
세상에 실망하고, 급기야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결국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습니다.
그 분만이 마지막 남은 내 피난처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 고난의 때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 큰 고난을 겪은 한 자매를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가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목사님, 제가 그리 크게 잘못 산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제게 닥치니 때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해요.”
이 소리를 듣고 제가 그 자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욥의 친구들처럼 “너한테 숨은 죄가 있을지 모르니 회개하라”고 했을까요?
아무런 충고나 섣부른 신앙적 위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들어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덧붙이더라구요.
“자꾸 이런 원망에 빠지면 너무 힘들어져서, 그냥 작은 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려구 해요.”
“모든게 엉망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이 이야기를 듣자 제 마음이 뭉클해 졌습니다.
맞습니다.
고난의 이유가 내 죄 때문이라면 그 죄에서 반드시 돌아켜야 합니다.
내가 의지하던 우상과 세상의 거짓 환상과 속임수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도저히 고난의 이유를 알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지라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마치 봄비가 땅을 적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회복은 종종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스스로 좋은 목자가 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라는 단어입니다.
새번역성경 보다 개역개정 성경에 더 또렷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내가, 내가…”
여기서 ‘내가’가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3절입니다.
“나의 분노가 목자들에게 불처럼 타오른다. 내가 지도자들을 벌하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그의 양 무리인 유다 백성을 돌보시고, 전쟁터를 달리는 날랜 말같이 만드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짓 목자들에게 분노하십니다.
그들이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죄악에 빠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이 직접 목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럼 목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양을 먹이고, 보호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주도가서 본적 있으시죠?
양은 스스로 지킬수 없고, 스스로 길을 찾을수 없는 가장 연약한 존재입니다.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백성들에게 약속하십니다.
4절입니다.
“유다에서 모퉁잇돌과 같은 사람이 나오고, 그에게서 장막 기둥과 같은 사람이 나온다. 그에게서 전투용 활 같은 사람이 나오고, 그에게서 온갖 통치자가 나온다.”
모퉁잇돌, 장막기둥, 전투용 활, 모두 나라의 참된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모퉁잇돌과 장막기둥은 집이나 천막을 떠받치고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투용 활은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중요한 도구입니다.
백성들을 신앙으로 견고하게 세워 주시며 전쟁에서 승승장구할 지도자를 보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궁극적인 성취가 누구입니까?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참된 목자로 오셔서 우리를 말씀으로 먹이시고, 지켜 주시며,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와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힘을 주십니다.
마치 군사가 훈련과 전투를 거치며 강해지듯,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의 강한 용사로 세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소망을 갖고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로 계신 한, 고난은 반드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회복과 구원의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8절입니다.
“내가 휘파람을 불어서 그들을 모으겠다. 내가 이미 그들을 구원하였으니, 그들이 옛날처럼 다시 번성할 것이다.”
하나님은 목자가 양을 부르듯 휘파람을 부십니다.
양은 언제나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고 달려옵니다.
어느 때가 되면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돌아와 회복과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방해하는 모든 대적들을 꺾으십니다.
앗수르의 교만을 꺾으시고 이집트의 권력을 잠재우십니다.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때로는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도록 이스라엘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는 이집트 군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는 거대한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갈수 없고, 뒤로도 갈수 없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요?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들이 바다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이집트 군대를 홍해 바다 속에 수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고난의 바다 앞에 서 있을때, 그 물결은 너무나 거세고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처럼 그 바다를 갈라 믿음으로 건너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강하게 세워 주십니다.
삶에서 나만 고난의 파도를 피할 길은 없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내가 자초한 고난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이 고난이 과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더욱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해야할 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불타는 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회복의 때가 언제인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가장 선한 때에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이 휘파람을 부실 때”입니다.
목자가 양을 부를 때의 그 휘파람입니다.
양은 휘파람을 듣고 주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휘파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닙니다.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영혼을 다시 돌이키시는 회복의 신호입니다.
하나님이 휘파람을 부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여전히 세상 우상들을 붙잡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의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목자인 주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달려가는 양처럼 행동해야 할까요?
언제나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상의 속삭임은 우리를 헛된 우상과 거짓된 위로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편안함을 향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때로는 그 부르심이 고난을 통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를 더 강하게 합니다.
결국에는 훈련된 용사로 세우는 하나님의 은혜가 됩니다.
혹시 지금 내 힘으로도 어쩔수 없는 고난의 바다 앞에 서 계십니까?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 있습니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휘파람을 들어야 할때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 휘파람 소리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달려가야 합니다.
그 분께 기도하며 구해야 합니다.
그 분의 구원 약속을 더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회복시켜 주셔서 강한 믿음의 용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휘파람을 들을수 있는 함께걷는교회 식구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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