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0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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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은 과거를 사실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해석과 감정이 섞인채로 기억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의 기억이 왜곡 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과거의 사건이 너무 아프고 감당하기 힘들면, 사람은 그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리거나 흐릿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억압, 또는 해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반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꺼내면 심장이 빨리 뛰면서 가슴이 내려앉아, 그 상황을 그냥 피하고 싶다. 이것을 트라우마 라고 한다.
오늘 본문의 시작이 이렇다. 에스겔 16:1-2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먼저 좁게는 예루살렘을 그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는 예루살렘 성읍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좀 더 넓게는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전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이 세워진 곳, 매일 여호와께 제사가 드려지는 곳,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그 임재의 거처로 삼으신 거룩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며 그것을 표상으로 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 신분에 걸맞지 않게 전혀 거룩하지 못한 삶, 곧 죄악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2절에 “가증한 일” 이라고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구역질 날 정도로 외관이 더럽거나 그 맛이나 향이 역겨운 상태”를 가리킨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가증한 일 이라는 단어가 구약성경에 112회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우상 숭배 또는 성적 도덕적 범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지금 이러한 상황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 알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그래서 본문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데 당시 이스라엘은 스스로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3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스겔 16:3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여기는 생물학적으로 혈통이 아모리 사람 헷 사람이라는 말이 아니라, 주변국인 가나안, 아모리, 헷 과 같은 이방의 문화를 마치 자신의 문화이고 전통인냥 받다 들였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거룩한 백성일 수 없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4-5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갓난 아이로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날 때 배꼽 줄을 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탯줄은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아이는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 엄마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태어나면 가장 먼저하는 것이 탯줄을 자르고 묶는다.
그래서 탯줄을 자르고 묶는 것은 아이가 세상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독립적인 개체가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탯줄을 자르지 못했다는 거싱다.
그리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소금을 뿌리지 않았고 강보로 싸지도 안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소금을 뿌리는 건 당시 고대 근동의 관습인데 아이 피부의 살균과 함께 보호막을 형성한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는데 소금을 직접 뿌렸다는 의견과 소금물로 씻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고, 당시 신생아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고, 물로 깨끗이 씻고, 소금을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러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이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뿐만 아니라 정결하지 않은 상태로 버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5절에 이렇게 말 하는 것이다.
5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천하게 여겨졌기에 그누구도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누구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없어 들에 버려져있었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비참한 장면인가?
그런데 이 불쌍한 아이가 당시 이스라엘이고 오늘날 우리이다. 우리는 누구의 도움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
바울이라고 하면 우리가 신앙의 롤 모델로 삼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전생애를 다 바쳐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인가? 그런데 그가 디모데에게 고백하길 자신은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한다. 죄인중의 괴수라는 말은 죄인중에 내가 가장 큰 죄인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제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나는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사람이다. 라는 의미이다.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아이처럼 말이다.
갓난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탯줄을 자르고, 물로 씻고 소금을 뿌리며 강보를 쌀 수 있겠는가?
그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결할 수도 없는 그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래서 버려진 존재가 바로 우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 버려진 아이 곁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이 있다. 본문 6절이다. 함께 읽어보자.
에스겔 16:6
6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여기서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 에서 지나가다의 원어는 아바르 인데 이 단어는 특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는 그 아이를 우연히 본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구원하려는 마음으로 그 상황에 개입하기 위해 그 곳을 가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피투성이 된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옮기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이다. 어떤 의지인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조금전에 말 한 것 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만한 그 어떤 선함이나 자격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우리에게 피투성이라도 괜찮다. 살아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피투성이는 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죄 덩어리라도 괜찮다. 구원은 내가 이루겠다! 는 말씀이다.
우리는 구원을 우리의 의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죄 덩어리인 그래서 피투성이인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말씀하신다.
이것은 단순한 살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다. 구원을 이루실 그 주님을 신뢰하며 그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잡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피투성이지만 살아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어떤 상황속에 있다 할지라도 겸손히 주님 앞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주님이 하시지만 그 구원의 손길을 잡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
마치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구리뱀을 걸어 구원의 길을 만드셨다. 하지만 그것을 봐야 살 수 있었던 것 처럼, 전적인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구원의 하나님의 손길을 잡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피투성이인 존재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어느것도 내세울 수 없는 그러한 존재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매순간 넘어지고 도 넘어지는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이 만드시기에 우리는 때때마다 그 구원의 손길을 잡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구원의 손길을 잡는 것이 매주 예배를 나오는 것일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고, 개인 기도시간을 만들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순간순간이 구원의 손길을 잡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늘 본문 8-14이다.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니 사랑하는 청년들 피투성이라도 살아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