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3:21-23 신0813)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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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우리는 자랑으로 하루를 엽니다. 누구와 일하는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어떤 동네에 사는지, 어떤 브랜드를 쓰는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자랑의 언어는 낯설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유명한 교회에 속해 있다, 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매주 듣는다, 나는 어떤 신학자와 코드가 맞는다. 이런 말들이 우리 안에서 신뢰의 증표가 되고, 신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질문해 봅시다. 우리가 진짜 의지하고 싶은 것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입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단호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이 말은 단순한 도덕 훈계가 아닙니다. 교회가 무엇에 기대어 서 있는지, 우리 정체성과 미래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겨누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비춰 보십시오. 혹시 내 신앙의 확신은 그 사람이 말해 주는 확신은 아닌가. 내 안전감은 그 공동체의 규모와 평판이 주는 안전감은 아닌가. 이 질문이 불편하다면,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본론

자랑의 함정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많았고 지적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라졌습니다. 바울에게, 아볼로에게, 게바에게 나뉘었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속한 리더의 이름에서 정체성과 우위를 확보하려 한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사람을 자랑하는' 행위의 본질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자랑’은 단순히 뽐내는 것을 넘어,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세우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에게서 정체성과 안전을 구하려 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경쟁 규칙을 교회 안으로 들여옵니다. 비교가 시작되고, 두려움과 시기로 이어져, 결국 분파를 낳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성령의 생명력이 아니라 인간의 브랜드로 서려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은 선언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그러면서 그 이유를 역설적으로 설명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차 올 것이나 다 너희의 것입니다." 이 선언은 우리의 가치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듭니다. 사람을 붙잡아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받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선택입니다.
이 소유권의 선언은 더 큰 소속의 진리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과 주권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소속은 그리스도, 그분의 소속은 하나님입니다. 이 질서가 바로 설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주 안에서 자랑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합니까. 성경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표어를 붙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을 자랑하라는 요청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에 그분의 이름과 성품과 일을 드러내라는 부름입니다.
이 자랑은 우리의 언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삶의 모든 선택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말할 때 가장 눈이 반짝입니까. 성취와 인맥입니까, 아니면 주께서 내 삶에 행하신 일입니까. 일터에서, 가정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문제의 중심에 주님의 일하심을 언어로 배치하십시오. "오늘 내가 버틴 것은 운이 아니라 주의 긍휼이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근성이 아니라 주의 도우심이었다." 이런 문장이야말로 신앙의 자랑을 가장 세련되게 드러내는 훈련입니다.
나아가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주 안에서 자랑한다는 말은, 주님의 가치가 나의 선택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손해를 감수하고도 정직을, 인기보다 진실을, 효율보다 사랑을 선택하는가. 세상은 이런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주님을 자랑하는 삶의 힘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달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보고서 한 장, 이메일 한 통에도 그분의 성품을 반영하도록 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을 감추지 말라

우리가 가장 쉽게 넘어지는 지점은 이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말하면 불편해질 것 같아서, 관계가 틀어질 것 같아서, 그냥 좋은 사람으로만 남으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선함은 결국 사람의 것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선함의 근거와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이름은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그러나 조급하지도 않게, 상황과 사람을 존중하면서도 분명하게, 그 이름을 드러내십시오. 때로는 침묵이 지혜일 수 있지만, 영원한 침묵은 책임 회피입니다.

우상숭배의 실체

사람과 조건에 대한 자랑이 왜 위험할까요? 그것이 우상숭배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자랑하는 순간, 우리는 사람에게 궁극적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영향력 있는 리더이든, 화려한 공동체이든, 내 재능이든, 마음이 기대는 곳이 곧 신이 됩니다. 우상은 돌로 깎은 형상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 하나님 없이도 안전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체계,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사람과 조건은 선물이지 근거가 아닙니다. 선물을 근거로 삼는 순간, 선물은 신이 되고 우리는 노예가 됩니다. 그리고 그 노예 체제는 반드시 실망을 낳습니다. 사람은 흔들리고, 조건은 바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님을 자랑할 때 우리는 자유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명령은, 우리를 억압하는 금지가 아니라,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해방의 선포입니다.

결론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이 명령은 우리 시대의 공기를 거스릅니다. 관계와 브랜드와 숫자의 힘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질서를 제시하십니다. "모든 것은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질서가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 자랑의 방향이 바뀝니다. 사람을 붙들던 손이 풀리고, 주님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때 우리는 작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커집니다. 주님의 영광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기쁨이 세상의 질문이 됩니다.
"왜 그토록 담대합니까. 왜 그렇게 자유롭습니까." 그때 우리는 미소 지으며 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자랑할 이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그분이 나의 근거이고, 나의 미래이며, 나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여,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주 안에서 자랑하십시오.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그분을 드러내십시오. 세상의 가치보다 탁월한 주님의 길을 보여 주십시오. 예수의 이름을 숨기지 말고, 경험하고, 고백하고, 찬양하십시오.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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