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4장 1-12절
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은 선지자의 기도 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를 듣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 합니다.
그의 탄원의 기도는 간절하고 절박합니다.
희망과 소망이 없음에도 들으려고, 보려고, 알려고 하지 않는 심판 받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선지자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절은 만약에~ 로 시작됩니다.
1절과 2절 입니다.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만약에 주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강림하신다면 .. 이라고 기도합니다.
원수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 여호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속히 강림하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에게 맡겨주신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이 그들의 죄악으로 이 땅 가운데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비웃는다고 해서 여호와가 거짓이거나 능력이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와의 강림하심으로 인해 온 열방이 그의 능력과 영광 앞에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4절 입니다.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앙망하는 자 라는 뜻은 기다리다, 간절히 바라다 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이 땅에 강림하셔서 온 산과 열방이 두려워 떨며 진동하는 것을 그 어떤 신에게서도 볼 수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창조하시며,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시며, 참 능력이십니다.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이든 무기력하며, 두려워 떨며 진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대적들의 강성함도, 현실의 고난과 문제들도 하나님이 도움의 손길을 베푸시는 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호와의 강림하심 입니다.
하나님이 왜 오셔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그 영광과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신뢰 합니다.
5절 입니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선지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지가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도대체 누가 공의를 행하며, 누가 주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이미 이스라엘에 공의가 없고, 주를 알지 못해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선지자는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미치지 못하지만, 선지자는 범죄하였음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주님이 주신 약속과 권능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선지자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상태를 제대로 진단합니다.
7절 입니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범죄한 자가 받는 징계는 당연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회생이 불가능한 이유는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얼굴을 숨기셨기 때문이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선지자의 기도가 너무나도 위대한 기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고난받는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언약을 기억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짖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으며, 그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구원과 강림하심은 우리의 죄를 알고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됨을 더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진흙과 토기장이에 비유하여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하나님께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으시는 토기장이 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 이심을 강조하며 고백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진흙이라는 고백은 주의 손으로 빚으신 이스라엘을 더이상 그들의 죄악의 손에서 소멸되지 말도록 놔두지 마시고, 주의 손으로 다시 빚어 달라는 고백 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길은 자신의 죄를 숨기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깨닫지 못하고, 죄 가운데 죽은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들을 귀가 없고, 볼 눈이 없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소망과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나의 죄악된 삶을 위해, 공동체의 죄를 바라보며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다시 보고 들으며,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한 사람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 죄로 인해 무너진 것들이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소망이 없고, 붙잡을 것이 없고, 의로운 것이 없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우리의 삶과 교회와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