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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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1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다윗이 마음의 한탄과 답답함, 그리고 어려움 중에 하나님께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던 탄원시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합니다(3).
파수꾼은 성을 지키는 자로, 파수꾼이 없으면 성이 무너집니다(시 127). 하나님께서는 직접 지키실 수도 있지만, 파수꾼을 세워 성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특히 저녁 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적들이 저녁에 침투하더라도 파수꾼 덕분에 안심하고 잘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경각심을 가지고 서 있는 사람, 지켜보고 경계하는 사람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밤, 즉 삶의 고초나 유혹 속에서 영적 파수꾼이 되어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살려야 합니다.
군대에서의 보초병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파수꾼입니다(1). 영적으로 깨어 있는 파수꾼은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는 자입니다. 다급하게 여호와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삶이 늘 성령 충만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한 듯 느껴질 때, 앞이 칠흑같이 어두우니 당장 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만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같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파수꾼의 위치마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분향’(2)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금으로 만든 분향단이 있습니다. 시인은 지금 제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손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께 드리는 분향과 예배로 여겨 달라고 합니다. 이는 적에게 쫓기거나 광야를 방황할 때처럼, 환경적으로 예배가 제약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저녁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 드리던 상번제 중 오후 3시의 제사를 가리킵니다. 상번제는 늘 주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예배입니다. 깨어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다급하고 어려운 상황에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파수꾼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삶이 녹록지 않을 때, 아침과 저녁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늘 그분을 갈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묵상해 봅시다. 현실이 힘들어도 하루를 주님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파수꾼 된 우리의 삶이길 바랍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잘 되는 것 같고, 내 곁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을 때, 부정적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입에 파수꾼을 세웁니다(3). 목회자도 살아 역사하시고 내게 의미를 주시는 말씀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입술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게 됩니다.
삶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입술을 지켜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특별히 천군 천사가 우리의 입술을 지켜 주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말씀 자체가 우리의 입술을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공동체가 서로의 입술을 지켜 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길 소원합니다.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진수성찬을 먹습니다(4).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명예, 인맥, 각종 능력과 환경을 가진 자들이 진수성찬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좋은 환경의 유익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처럼, 좋은 환경이 분명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갈대아 우르와 같은 환경이 안 좋은 곳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좋은 환경을 만들려 해도, 완벽하게 조성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문제는, 악한 자들이 권모술수로 부와 명예, 권력을 쌓을 때 우리가 그 편승의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이 한 번의 투기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부러워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십니다(시 23). 편법으로 차려진 진수성찬에 군침을 흘릴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지키며 깨어 있기 원하는 파수꾼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잔이 넘치는 은혜를 사모합시다.
‘의인’(5)은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곧 파수꾼으로 부름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 말씀 또한 의인화될 수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불변하며 영원한 그 말씀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할 때, 그것이 우리 머리의 기름과 같습니다.
기름은 우리를 구별되게 하고, 치료하며, 소명을 회복시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파수꾼으로 깨어 있다 보면, 서로에게 좋자고 한 말이 책망으로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파수꾼처럼 깨어 있는 사람의 진실한 책망이 우리에게 기름이 되어 치유하고, 부르심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은혜로 역사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우리를 책망할 수 있습니다. 때론 불망치처럼 우리를 두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수용할 때, 우리는 구별되고 치유되며 부르심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삶으로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부러워했던 악인의 멸망이 그려집니다(6, 7). ‘재판관들’(6)은 무리의 리더에 해당합니다. 그들이 바위에서 떨어집니다. 악인이 의인을 조롱하지만,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을 나누사 결국 심판하시고 멸망하게 하십니다. 교회 안에도 알곡과 쭉정이가 공존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때와 방법으로 가르십니다. 그때 하나님 뜻대로 살려던 사람을 높이십니다.
오해받을 땐 답답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면 악인의 계략을 꺾으시고 멸망시키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진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소서”(8).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빈궁하게 두지 않으시고, 짐승의 가죽옷을 입히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하셨습니다. 파수꾼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8, 9).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성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시 127).
파수꾼의 마지막은 반드시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10). 하나님을 의지하는 파수꾼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주변을 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과 경건이 흐트러지지 않고, 영으로 시작된 은혜가 육으로 끝나지 않게 기도하는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기도
나의 생각과 말, 그리고 눈과 귀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말씀의 교훈이 나를 살리는 기름이 되게 하소서.
서상순 집사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