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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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걷는 BLF(2)
함께걷는 BLF(2)
2장은 1장과 다른 흐름.
1장 삼위하나님의 구원은 능력 있게 역사하시는데 그 결과 이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
2장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1장과 달리, 구원받은 신자의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한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제목과 같은 1절인데, 5장의 살리셨다는 내용을 끌어 와서 번역했다.
믿지 않는 자의 영적으로 죽은 자의 현상은 불신자의 대화에서 금새 확인 가능
간혹 교회 안에서도 영적으로 죽은 상태의 사람도 있다. 영적으로 죽었으나 교회 안에 있다는 점이 매우 희망적이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
죽은 자들이 따르는 세 가지 대상: 세상 풍조, 공중권세잡은 자, 육체의 욕심. 이 세가지가 죄를 만들어 낸다. 불신자들에게는 전형적으로, 신자 안에는 깊숙히 자리 잡아서 유혹한다.
불신자들은 이것을 따르며 편하게 산다.
반면에 신자들은 이것을 따를 때 불편하지만, 유혹에 이끌려 따르기도 한다. 한 그릇 죽에 장자권을 파는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세상도 악하고, 공중 권세 잡은 자도 악하고, 각 사람도 정욕이 악으로 이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이 말씀이 있는 이유 : 지금의 우리와 멀리 떨어진 모습, 일단 살았기 때문에 죽은 상태와 멀다. 우리가 전에 어떤 상태인지를 기억하라는 것. 그래서 지금 오늘의 우리가 흔들릴지라도 얼마나 큰 은혜 가운데 있음을 알라는 것.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 지를 알고 감사하라는 것.
우리의 구원이 참으로 하나님의 큰 긍휼로 말미암는 은혜인 것, 이 구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주어졌다.
불쌍히 여기신다.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따라 말하자면 전방위적으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영혼을 안타까이 여기시고 우신다.
진노 외에는 다른 결론이 없는 대상을 어떻게 구원하실까? 아들을 통하여.
하늘에 앉히시니. 너무도 확실한 미래라 문법적으로 과거형으로 씀.
함께 살리셨고-중생, 일으키사-믿음_아들의 권세를 얻음_성화의 은혜, 하늘에 앉히시니-영화
우리가 지금 얼마나 큰 은혜의 자리에 있는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주어지는 것들.
그리스도는 손수 무릎을 꿇고 우리 발을 씻겨주시고 친히 우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극히 낮은 우리를 자신과 함께 하늘 높은 곳에 이르게 하는 은혜를 베푸셨다.
다른 것들이 우리를 흔들려할 때 우리의 신분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
이 기쁨으로부터 목회의 힘과 설교의 확신이 흘러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낙심하고, 설교 중에 이상한 호통이 나올 수도 있다. 복음에 나타난 십자가의 사랑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 말하는 본인이 이 사랑으로 기쁨과 확신가운데 전해야 듣는 자도 엿보게 된다.
믿음은 구원에 있어서 나의 무능과 하나님의 강함을 말한다.
절대로 우리의 구원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다 이루셨슴을 말한다.
거지의 손과 같이 다 이루신 것을 그냥 받는 것이다. 그러니 자랑할 수 없다.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유지되고, 결론에 이른다. 사탄은 믿음을 빼앗으려, 아니 빼앗지 못하나 흔들려하고 하나님은 믿음을 보호하신다.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은 실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창조된:포이에마) 바라 - 재창조의 은혜.
목적: 선한 일을 위해, 선한 일 가운데 행하게 하려고
너희는 그 때에 그 가운데 행하여 vs 그 (선한 일)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묵상과 적용] 우리가 하나님의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할 본문이다.
과거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존재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을 완전히 대적하며 살 때에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다면, 지금의 상태에서도 여전히 그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터이다.
목회 중에 겪는 어려움을 지나치게 자기 책임으로 돌리려 하지 말라.
잘 되면 자기 탓이란 말과 같다.
기회가 있을 때 묵묵히 복음을 전하면 된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부르셨다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면 안 될까?
게으르고 그릇된 선택을 했다면 돌아보아야 하지만 무한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을 철저히 갖는 가운데 해야 한다.
행복을 누리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인하여.
그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뒤로하고 몇 가지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울고만 있을 것인가?
행복의 길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창세 전에 너를 콕 찝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을 주셨고, 마지맊까지 보호하시고, 통치와 권세로 다른 모든 것들을 짓밟고 있어. 너는 나의 충만을 입은 자야. 하나님의 모든 복을 떠안고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이 신앙 생활의 근간이다.
목사라는 직분은 죄에 대한 심각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열심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죄인됨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로 인해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할 때가 있다.
하루라도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넘어지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문제를 감추고 해결하지 않고 있으면 미혹이 조금이라도 크게 일면 확 무너질 수 있는 존재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를 명예롭지 못하게 하는 일에 빠져 들 수 있다. 성도들과 똑같은 죄인이다. 목회적 돌봄과 말씀의 은혜가 없다면 죄짓는 존재다. 교만하고, 생각으로 죄를 범하고, 온갖 진실하지 못한 일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죄를 키워나가게 되는 존재다.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존재며, 그것을 감추려는 외식을 일삼을 수 있으며, 미움과 원망을 마음에 품고 있는 자이며, 이런 죄들은 어느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단순히 선한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어야 한다. 우리에게서 나타나는 선한 일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열정에서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죄가 나타날 때 그냥 넘기지 말고 이게 뭐지?하고 이것을 떨쳐내기 위해 반응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죄와 싸워야 한다.
불의는 거룩한 존재로서 있어야 할 의가 없는 상태이다. 적극적인 죄 뿐만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의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도 죄다. 열정을 잃어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리고 누구를 은근히 시기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를 알아야 한다.
초장부터 없애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종교개혁자들이 분명하게 주장했다.
목회의 성공보다 거룩을 추구하라. 힘을 내어 자기를 그냥 두지 말고 자신을 은혜 속에 집어 넣으라. 우리의 1차 목회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아내다.
믿음의 원리로 살아가라
자랑하지 말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것이 율법주의냐와 은혜로 인한 변화인지의 분기점이다.
나의 열심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하는 것을 그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잠잠히 받아들이라. 그리스도께 붙어 있음으로 은혜로 행하는 것이다.
옛 자아와 죄를 버리고 오직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라.
4:7-16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를 주셨음을 말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에 이르는 첫 번째 출발점이 목사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너가 열심히 하라가 아니라, 우리 영혼에 충분히 말씀이 비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회의 정서상 이 은혜가 필요한 목회자가 성도들과 말씀으로 진솔하게 교제하며 도움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BLF는 설교거리와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진심으로 말씀의 권면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눈을 들어 바라봄으로, 은혜로 채워지고 마음을 다해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는 곳이다.
우리가 괜찮아 보이지만 위기의 상태에 있는 자들이 많다. 이것을 치유하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