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역사(4) : 약속과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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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12:1–3 NKRV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설교 - 구속의 역사 : 약속과 성취

서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한 경의를 담아 부르는 호칭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 별명은 생각해보면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호칭입니다.
1. 아브라함보다 먼저 믿음을 지킨 사람들
우리는 창세기 1-11장까지 말씀을 통해 많은 믿음의 선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둘 째 치더라도,
믿음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은 노아도 있지요.
아브라함은 굳이 따지자면 이 믿음의 진짜 조상들의 한참 먼 후손이었습니다.
2. 민족을 대표하는 다른 이름들
그렇다고 민족을 대표하는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조금 애매합니다.
이 선택된 민족을 대표하는 이름은 야곱의 다른 이름인 이스라엘이고, 또 현 시대에는 야곱의 아들 유다의 이름을 따서 그들을 유대인이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민족의 지도자도 다윗 왕이며, 예수님을 부를 때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3. 흔들렸던 아브라함의 믿음
그럼 아브라함 자신의 믿음은 어땠을까요?
창세기 22장 12절 말씀입니다.
창세기 22:12 NKRV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라는 단어가 아주 눈에 띕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100세에 낳았습니다.
이 때는 이미 이삭이 어느 정도 자라서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 제사를 드리러 갈 정도의 나이었으니, 아마도 아브라함의 나이는 110세가 훌쩍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아셨다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해가던 시간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항상 굳건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의 왕 앞에서 두 번이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위험에 처하게 했습니다.
또한 사라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을 것을 믿지 못하고 여종 하갈과 다시 결혼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99세에 하나님이 나타나 아들을 주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웃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이스마엘이나 잘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100세가 한참 넘어서야 아들까지 아끼지 않는 믿음을 ‘이제야’ 갖게 된 아브라함입니다.
아직 100세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 믿음으로 헌신하고 계시는 여러분은 평균적인 믿음으로는 아브라함보다 어쩌면 더 훌륭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믿음의 조상일까요?
구속의 약속
믿음을 잘 지킨 첫 사람인 것도 아니고, 민족을 대표하는 이름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믿음도 자주 흔들렸던 참 뭔가 애매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된 이유는,
죄로 인해 타락한 인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리라는 장엄한 약속이 바로 아브라함과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실제로 하나님이 구속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흐름이자, 계획이 됩니다.
성경의 역사, 구속의 역사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성취해가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과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취해가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 가지 약속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땅과 자손,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한 복입니다.
이 약속을 아브라함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만 본다면 번창과 부귀 영화에 대한 복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창세기 전반부를 통해 인류가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에 대한 축복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류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회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땅을 약속하시다.
첫 번째는 땅에 대한 약속입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보여줄 땅이 있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실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타락으로 축복 받은 땅, 모든 것이 허락된 땅이었던 에덴을 잃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과는 다르게 그들의 생명은 살아있었으나, 그들은 주어졌던 땅을 잃었습니다.
아벨은 질투에 눈이 먼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창세기 4:11–12 말씀을 보면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라고 기록됩니다.
또한 노아의 시대에는 창세기 6: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만연한 인간의 죄악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축복의 땅 에덴을 잃어버린 인류는 그렇게 대홍수로 서 있을 땅 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이 대표적인 세 가지 사건을 볼 때 땅 위에서 살아가게 창조된 인간이, 서 있을 땅, 살아갈 땅을 잃는 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땅이 타락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타락으로 인간이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땅이며, 그로 부터 오는 생명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단순히 그가 차지할 물리적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이 번성하고, 영원한 생명이 이어질 영적인 땅, 새 에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땅에 대해 아브라함은 큰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무언가 대단한 생명력이 그 땅에 있으리라,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리라는 기대입니다.
아브라함 이후의 족장들,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그 땅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도착한 땅은 처음은 충분한 듯 보였을지 모르나, 실상은 조카 롯의 가족들과도 함께 지내기 넉넉하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심지어 강성한 이웃나라와 민족들에 의해 두려움에도 떨어야 했습니다.
이삭은 그 땅에서 몇 번의 우물을 파고, 또 몇 번을 이웃의 민족들에게 빼앗깁니다.
야곱은 가나안에 찾아온 기근 때문에 이집트에 양식을 꾸러 자식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맞이한 가나안은 그 곳 주민들을 다 전멸시켜야지만 차지할 수 있는 전쟁터였습니다.
요즘 시대라면 부동산 사기를 된통 당했다고 소송이라도 걸었을지 모릅니다.
도대체 이 땅은 언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되고, 하나님이 되돌려주시는 생명이 되는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때입니다.
땅의 약속이 성취되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 특별히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했던 산 모리아산은,
이후 여호와의 산이라 불리며, 이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세워지는 장소가 됩니다.
또한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참된 생명 선포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온 땅을 정복합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즉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의 장소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곳은 성소 중에서도 지성소였고, 타락으로 죄에 빠진 인간은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땅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약속대로 되돌려졌지만, 아직 인간 2명도 들어갈 수 없는 좁디 좁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의 임재는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약속하신 땅이 십자가로 인해 생명의 근원이 되어 온 땅이 축복의 땅으로서 믿음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땅의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아멘)
민족을 약속하시다.
두 번째는 민족의 약속이었습니다.
10년 전 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추모 예배를 준비하던 때 일입니다.
제가 말씀을 나누기로 해서 저는 가족, 형제 간의 사랑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성경을 뒤져보는데, 어라.
아무리 찾아봐도 성경에 이거다 싶은 사이 좋은 형제가 없는 겁니다.
오히려 남보다 못한 가족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결국 저는 주제를 바꿔야만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땅 뿐만이 아니라 한 몸된 가족을 잃었습니다.
깨어진 가족의 이야기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단골 스토리입니다.
아내 하와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했고,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하와에게 책임을 넘겼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 수 많은 가족들이 서로를 속이고, 죽이고, 빼앗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한 마음으로 모아서 한 일이라고는 또 다시 하나님처럼 되고자 ‘바벨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되지 못하게 언어를 흩으심으로 온 인류를 뿔뿔히 흩어지게 하십니다.
온 인류가 혈연으로 묶여있던 인류는 타락으로 또 다시 하나된 민족을 잃었습니다.
구약의 도저히 본이 안되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타락으로 인해 인간이 잃어버린 가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 깨지고 분열된 가족들 사이에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이러니하게도 99세가 될 때까지도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단 하나의 아이도 없었습니다.
100세가 되어서야 이삭을 주시는데, 고작 한 아이입니다.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말씀과 동시에 이루어질 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간격은 묘한 긴장감을 주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불신이 싹트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드러내시며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100세가 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큰 민족은 단순히 혈연으로 엮인 관계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소망과,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심으로 인한 참 사랑으로 하나된 민족이었습니다.
민족의 약속이 성취되다.
요한복음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아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타락으로 흩어졌던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의 영적인 민족이 된 것입니다.
땅의 약속이 성취된 것에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큰 민족을 주시리라는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시다.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인류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 즉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다시 누리게 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복은 원어의 의미상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가 타락으로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 다시 되찾아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과의 선하고 친밀한 관계 회복입니다.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는 것, 즉 선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서로에게 오고가는 교제가 바로 복이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 에덴은 인간에게 그런 곳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인간에게 아름다운 열매와 각종 선한 것들로 인류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선한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들로 에덴을 채우셨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었고, 숨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모든 것이 뒤집히고 관계는 깨어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저주가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여자만 아니었다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를 복이 아닌 저주로 여깁니다.
좋은 예배를 드린 동생 아벨이, 형 가인에게는 본 받을 본이 아니라 죽여야 할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 깨어지고 무너진 사랑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의 영원한 교제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자, 종말 이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민족을 통해 모든 족속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계획을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좋으신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께 사랑 받으며, 영원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이 성취되다.
이 약속은 언제 성취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또 다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인간의 긴 역사 가운데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으로 선포되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하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타락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하시기 위해,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를 되찾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태초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계획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이과라 사회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사회시간에 국가의 3요소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국가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매우 흡사하지 않습니까?
민족과, 땅과,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땅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회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자녀들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에서의 영원한 하나님과의 사귐이 약속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약속을 믿고 굳게 섭시다.
이 생에서의 짧은 고난에 굴복하지 말고, 영원히 약속된 복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다운 정체성으로 살아갑시다.
오늘 하루도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시고, 개인 기도로 이어가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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