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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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대신 기쁨으로

오늘 2학기 첫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다들 방학 잘 보냈나요? 캠프때가 방학 시작이었잖아요? 그런데 아직 캠프 끝난지도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개학이 되었다는 것이, 여름방학은 정말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방학때 분명 공부도 좀 하고, 여러가지 하려고 했는데, 뭔가 하지도 못하고 2학기에 들어서니, 아마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있게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의 말씀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주님께서 2학기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지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함께 나누기 전에, 우리가 함께 읽을 스가랴 말씀에 대해서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스가랴 말씀은 제목 그대로 스가랴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 스가랴 선지자는 언제 사람이냐, 바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던 소위 포로귀환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있던 바벨론에서 풀려나 자신들이 살던 이스라엘로 돌아오면서 다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해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겨요. 어떤 문제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서 무너진 성전을 세우려는데 방해꾼들이 있었던 것이죠.
관련된 내용은 에스라 말씀에서도 잘 드러나있는데요, 성전을 세우려고 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이 돕겠다고 나선거에요.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중에서도 유대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였냐면, 이방 민족들과 혼인한 죄인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거룩한 건물을 짓는데 그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들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도움을 거절하고 함께할 수 없다고 하니, 이들이 앙심을 품고 바벨론에게 이들의 성전건축에 대한 내용을 악의적으로 꾸며서 고발합니다. 그 고발을 들은 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건축을 막아섭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의 시도가 시작부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죠. 백성들은 이 고난으로 인해 좌절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이 오늘 나눌 스가랴 선지자와 학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스가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회복하실 것에 대한 약속과 소망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8장의 말씀도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한번 확인해볼까요? 1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죠?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는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않았으나, 이제는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을 해소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마 이전까지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죄악을 행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고향을 잃어버렸는데, 혹여나 지금 예루살렘 회복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긴 것도 같은 죄악 때문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그렇지 않다. 이제 너희에게는 죄악이 아닌 은혜를 베풀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16절에서부터 백성들이 행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고,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서로 해하려고 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명하시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죠.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다시금 말씀의 기본을 회복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이 어떤 것이죠?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의 기본이 무엇이었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이유는 잘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이 시간이 지나며 사랑보다는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서 오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본래 뜻에서 벗어난 이들의 결론은 불순종과 멸망으로 나타나게 되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예루살렘 공동체를 세우는 이 시점에서, 말씀의 기본인 사랑을 강조하신 것이죠.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만 한다면 너희는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회복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은혜를 주실 것 같아요.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항상 있을 것 같아요.
왜 그런가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내가 행하는 것들이 말씀의 길인지, 혹여나 내가 죄악에 빠져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내가 지금 겪는 어려움들이 나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형벌은 아닌 것인지. 막 고뇌하면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상황이죠. 이스라엘 백성들도 포로귀환이라는 너무나도 은혜로운 상황에서 여러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하려 하였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주님께도 영광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부터 좌절하게 되니 모든 동력은 상실되고 오히려 더 큰 좌절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분명 하나님의 뜻 같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내가 문제인가?
여러분들에게도 그러한 시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고, 나름의 확신을 갖고 나아갔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죠.
그때부터 우리는 멈추고 무엇을 하나요? 평가를 하기 시작하죠. 무엇이 문제이지? 누구의 잘못이지?
하지만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한다. 그러니 전혀 두려워할 것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다. 말씀을 따르는 것, 그것도 그냥 문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기본, 사랑을 행하는 것이다.
서로 싸우고 속이고 미워하지 마라. 진리를 말하고 화평하고 사랑해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2학기를 계획하면서 신앙적으로도 여러 목표들을 세웠을지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말씀을 더 읽겠다. 기도를 더 하겠다. 여러가지 것들이 있을 수 있겠죠.
뭐 다 좋습니다. 그런데요, 그것들을 수행하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1 NKRV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러분들의 2학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18절을 볼까요.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넷째 달의 금식, 다섯째 달 금식, 일곱째 달 금식,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해서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면 네번째 달, 다섯번째 달, 일곱번째 달, 열번째 달까지, 정말 금식을 많이 했죠? 무슨 간헐적 단식도 아니고 뭐 이렇게 금식을 많이 했나 싶으실 텐데, 이것은 의미가 있는 금식이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해가는 과정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고자 하는 금식이었죠. 예루살렘의 포위, 성벽과 성전의 함락 등등 그 과정들이 일어났던 시기에 맞춰 금식을 하면서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이었는지를 기억하고자 했던 것이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금식을 이제 바꾸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바꾸시겠다고 하신 것이죠.
이것은 앞에서 말씀을 통해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줄 것이며, 백성들은 그 은혜를 소망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백성들이 심판의 아픔 속에서 죄악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모습들만 있었다면, 이제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 있을 것이고, 죄악이 아니라 회복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요, 사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마치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될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을 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회복은 그저 한 나라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한 시작을 선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전의 인류는 정말 말 그대로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전 유대인들이 두려워했던 그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운데 오시고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우리 인류는 죄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함을 통해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을,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19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슬픔과 죄악을 기억하던 금식과 같은 율법적 말씀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통한 기쁨과 즐거움, 화평의 말씀이 선포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세계 열방에 선포되었습니다.
이어지는 20절에서부터 하나님은 그 선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접한 이들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23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많은 주님을 모르는 이방의 백성들이 믿는 이들을 붙잡고 하나님을 구하며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주님의 택하심에 따라 복음을 접하고 믿은 우리는 이제 즐거움과 희락의 날들, 화평의 날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이 어둔 세상 가운데 새로운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모든 이들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빛은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유일한 구원으로 비춰질 것이고, 결국 그들은 무익하고 잘못된 세상의 것들로부터 벗어나 주님과 함께하는 길을 붙잡게 될 것입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우리 재학생 여러분들이야말로 이 사명을 가진 분들이실 것입니다. 매번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여러분들의 삶,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또다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번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삶이 과연 진리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말이죠.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 즐거움과 희락의 삶을 산다면 믿지 않는 여러분의 친구, 선배, 후배들은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만군의 여호와를 찾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아직 율법적 말씀에 갇혀 두려움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나아갈 2학기의 삶을 통해 모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주님의 기쁨이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여러분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선포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슬픔의 금식에서 벗어나 온전히 즐거움과 희락을 누리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찬양: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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