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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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레기도회 둘째날입니다. 여러분 이제 수련회가 내일 모래면 출발하게 되는데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수련회 장에 가면 엄청난 매움과 뜨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어제 먹은 간식이 잊혀지지 않는것 같습니다. 오늘 간식은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간식이 되길 소망하면서 우리 함께 말씀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2절 말씀인데요. 역대하 20장 3-4절 말씀입니다. 역대하 20장 3-4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위기 대응을 본 적이 있나요? 만약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감당하지 못할만한 위기가 닥칠 때 여러분들은 어떤 행동을 하시나요? 생태계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만약 숲속에서 한 마리 작은 동물이 큰 포식자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은 도망치거나 숨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단 생명체들은, 혼자서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힘을 모읍니다.
대표적인 예가 꿀벌입니다. 꿀벌이 있는 곳에 장수말벌 한마리가 함께 있으면 수백마리의 꿀벌이 그 장수말벌에 의해 죽을 정도로 강력하여 꿀벌 한 마리는 장수말벌과 같은 천적과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위기가 닥치면 꿀벌들은 개인의 힘을 포기하고, 수백 마리가 한데 모여 말벌을 둘러싸요. 그 안에서 날개를 힘껏 움직이며 주변 온도를 급격히 높입니다. 결국 말벌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게 됩니다. 꿀벌들은 주변온도가 48도에서 50도가 되면 죽는데 말벌은 주변온도가 46도 이상이 되면 죽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온도가 뜨겁다’가 아니라, 위기에 닥쳤을 때 꿀벌 한 마리의 연약함이 모여 엄청난 힘이 된다는 점입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서로가 함께 모이고 역할을 나눌 때,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문제와 두려움,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같은 믿음을 가진 공동체와 함께 모이고 기도할 때, 그 위기는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서로의 믿음이 내 믿음을 붙들어주고, 나의 작은 기도 소리가 다른 사람의 기도를 깨우면서, 우리는 문제를 이겨낼 힘을 얻게 됩니다. 저는 특별회 이 이레기도회를 통해 나 하나만 이라는 생각보다 우리가 함께 모여 수련회를 위해 준비하는 그 힘이 작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인식하시고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하 20장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유다의 4번째 왕인 여호사밧왕은 남유다의 선한 왕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여 나름 사사제도를 개혁하여 온 유다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는 종교적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하던 여호사밧왕에게 위기가 닥쳐 옵니다. 모암과 암몬, 그리고 마온의 연합군이 여호사밧을 즉, 유다를 치러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하니
이 연합군은 하사손다말 즉, 엔게디에 있다고 했는데, 엔게디는 사해 서쪽, 그리고 유대 광야 동쪽 끝자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도시입니다. 다윗이 상당한 시간 동 사울의 3000명의 군인들의 눈을 피해 있을 정도로 엔게디에는 동굴이 많이 있어 은신하기 좋았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엔게디는 당시 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과의 거리는 빠르면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말 그래도 적이 코 앞까지, 성문 바로 앞까지 쳐들어온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놀랍게도 군사들을 징집하거나 장군들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 유다 백성들을 모아 금식하며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선포합니다. 이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전쟁의 승리를 결정짓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이러한 위기를 만났을 때, 흩어질 수도 있고 우리의 방식대로 행할 수도 있지만, 왜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여야’하는지, 그리고 하나님 앞에 모였을 때 어떤 놀라운 힘이 나타나는지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1]
오늘 본문 말씀의 3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먼저 붙잡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위기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에요. 믿음의 조상 다윗조차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또한 불의 선지자라고 불리던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다음 날,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또한 신약의 사도 바울 조차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신앙의 결핍을 증명하는 표지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의 계기판에 켜지는 경고등처럼 두려움은 우리의 한계와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그 경고등이 켜졌을 때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 더 큰 불안에 갇히고, 어떤 사람은 그 두려움을 숨기고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하지만, 여호사밧은 그 두려움을 정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붙들고 혼자 절망 속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했고, 그 두려움을 하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이게 믿음의 첫 번째 반응이에요.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시편 기자도 시편 56편에 이렇게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여호사밧의 행동이 바로 이 말씀의 살아 있는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울 때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러한 자신의 두려움을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 문제로 끝내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나 지금 너무 두렵다. 그러니 우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것이 여호사밧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은 백성들에게도 강력한 믿음의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가야하는 길인 신앙의 길은 이렇게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게 더 의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믿음이 더 깉어지고 단단해져 가는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보았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신앙고백서 13장에 ‘성화’에 대한 일반적 서술 내용입니다. “온 몸을 주관하는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그리고 그 죄의 몸에서 나오는 몇 가지 정욕들이 점차 약해져 줄어지고, 그들은 점차 모든 구원하는 은혜 안에서 활기를 되찾아 강건하게 되어, 참된 거룩의 생활을 하게 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성화’란 하루 아침에 완벽하게 우리의 죄의 몸이 가지고 있는 정욕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정욕 속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연습을 통해, 점점 더 믿음이 자라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이러한 정욕들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두려움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예천처럼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단호하게 하나님께 달려가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취업의 불확실성입니까? 결혼과 가정의 문제입니까? 인간관계로 인해 상쳐주거나 상처받을 것에 대한 문제입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대한 문제 입니까? 혹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입니까? 이런 두려움 앞에 혼자 서 있으면, 두려움은 마치 파도처럼 우리를 집어삼키려 합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올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혹시 기도가 잘 안 될 때가 있나요? 그럴 때 옆에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의 간절한 기도 소리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 순간, 혼자의 두려움이 함께하는 믿음의 용기로 바뀌게 됩니다.
[본론2]
3절 하반절을 보면 여호사밧이 어떻게 기도했는지 나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낯을 향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각과 의지, 시선을 한 곳에 완전히 고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마음의 방향 전환이에요.
아무리 상황이 혼란스러워도, 마음이 향하는 곳이 분명하면 그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위기의 본질은 문제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시선의 방향에 달려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호사밧이 ‘여호와께로 낯을 향한 것’은 바로 이 말씀처럼, 문제에서 눈을 들어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선이 고정된 곳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면, 문제는 골리앗처럼 한없이 커 보이고 나는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의지적으로 우리의 낯을 하나님께로 향할 때, 전세가 역전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시편기자는 121편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 분명히 아는 것, 그래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아는 것이 진짜 지혜입니다.
사람의 시선은 쉽게 빼앗깁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늘의 만나 대신 애굽의 고기를 그리워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주무시는 주님 대신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결과는 항상 불평과 절망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시선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고정한 사람들은 상황을 초월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자신들의 대적들에게 몰려 사자굴에 갇혔을 때, 그리고 스데반은 많은 사람들에게 돌을 맞았을 때 그들 모두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을 사로잡은 두려움 가운데 그들의 시선은 그 상황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원한 소망을 향해 있었습니다.
시선이 중요하다는 것은 심리학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시선은 말없이 감정이나 의도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비언어적 의사소통 중 하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시선을 통해 심리 상태를 파악하거나 대인관계를 형성하거나 소통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서도 운전할 때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차가 움직이고, 운동 경기에서 시선이 향한 곳으로 몸이 반응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삶도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마음이 움직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혼자 있으면 문제에 매몰되기 너무 쉽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더 불안한 뉴스와 글만 찾게 됩니다. 그럴수록 시선은 하나님이 아니라 문제에 고정됩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주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마치 흐트러진 나침반이 다시 북쪽을 가리키듯, 공동체 예배는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 맞추게 하는 영적 교정장치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 모임은 단순한 종교적 모임이 아니라, 흩어진 시선을 다시 모으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 돌리는 순간, 두려움은 줄어들고 믿음은 자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의 다음 발걸음을 결정짓습니다.
[본론3]
자, 이렇게 왕과 백성이 두려움을 가지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여 모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단순한 ‘예배 참석’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모인 것은 생사를 건 모임이었어요. 각 마을의 농부도, 목자도, 장사꾼도 일을 멈추고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소집령이 떨어지자, 백성들은 “지금이 그럴 때”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모여와서”라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따로 흩어져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목적, 하나의 마음, 하나의 목소리로 모였습니다. 이건 단순한 군사 전략 회의가 아니라,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영적 회의였습니다.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부르짖는 그 자리에, 하나님은 특별하게 임재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이미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님이 바로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의 임재가 없는 모임은 그냥 모임일 뿐이지만, 그분의 임재가 있는 모임은 ‘거룩한 전쟁터’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하시는 곳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했을 때, 땅이 진동하고,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고,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모습은 유다 백성이 모인 광경과도 같습니다. 각자 다른 지역,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였지만, 모이고 보니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자리가,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이 시간이 유다의 광야이고,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부르짖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이곳에 임합니다. 여러분, 혼자서는 감당 못할 일도 함께 모이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꺼져가는 불씨 같은 믿음도 함께 모이면 다시 타오릅니다.
기도하는 공동체는 한 사람의 연약함을 덮고, 한 사람의 믿음을 북돋우며, 한 사람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꿉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 역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모인 자들을 통해 세상을 뒤흔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거대한 위기 앞에서 유다는 먼저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모임이 결국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결과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결과는 항상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그냥 ‘옛날 이야기’로만 들으면 안 됩니다. 이건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수련회라는 중요한 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일정 준비, 프로그램, 장소 예약이 중요해 보이지만, 가장 본질적인 준비는 바로 ‘모여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꿀벌들이 모여 열을 내어 적을 물리쳤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의 열기를 모아야 합니다. 한 마리 꿀벌의 열은 작지만, 수백 마리가 모이면 온도를 높여 침입자를 쓰러뜨립니다. 기도도 같습니다. 한 사람의 기도도 아름답지만, 함께 모인 기도는 세상을 바꿉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위기의 때이든, 평안의 때이든,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자 승리의 비결입니다. 모이는 것이 능력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혼자서는 작고 연약해 보여도,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그냥 오늘 하루를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수련회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우리 Ye청년부 사역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하는 영적 시동입니다. 이제, 그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가 모일 때 하나님이 하신다는 그 약속을 붙잡고,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한 마음으로 부르짖읍시다. 오늘, 여기서부터 승리는 시작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 전에 우리 함께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