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3 수요강론: 베드로전서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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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3:1-7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3:1–7 NKRV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수요강론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함께 말씀을 알아갈 수 있게 되어 참 감사한 것 같습니다. 매우 덥고, 매우 습해서 에어컨이 없이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날씨인데요. 이런 날씨 가운데서 우리의 몸이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이 모든 힘듦을 이겨내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부단히 애를 쓰는 복된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함께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8월부터 계속 베드로전서를 통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듣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그리스도를 산 소망으로 두는 삶이 무엇인지, 지난 시간에는 그리스도를 산 돌로 두는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이 베드로전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갖추길 원하시는지 함께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참지 못할 상황이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오는 대답 중 하나는 “부당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부당한 일을 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거나 등등 말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나누는 대화 중에는 자신이 부당한 일을 하거나 억울한 상황을 겪은 것에 대하여 토로할 때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서로 위로하기도 하고 부당하게 만든 원인자를 향하여 비난하고 심지어 욕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공정과 정의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제가 앞 시간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베드로전서 수신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였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적을 때도 고난받는 수신자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하고도 급진적으로 명령하며 권면합니다. “고난받으라”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수신자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난을 받는 중에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베드로가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3장 1-7절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는 사람으로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절에서 베드로는 지금 자신의 말을 들을 대상이 누구인지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바로 가정의 아내들입니다. ‘아내들’이라는 표현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떤 특정한 아내가 아니라 가정에 있는 모든 아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아내들을 향해 베드로는 아주 강한 명령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권면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베드로는 아내들을 향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하면서 “이와 같이”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라고 할 때 무엇처럼 하라고 베드로가 권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와 같이”라는 말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앞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말하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2장을 보면 베드로는 두 가지 권면을 하였었습니다. 하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부나 권세가들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충만 교수님이 저번에 설교해주신 것처럼 사환들이 그들의 주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권면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이러한 맥락에 따라 이제 아내들에게 자신들의 남편들에게 순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 권면과 다르게 7절을 보면 남편들에게도 주는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교회 안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니라, 어떠한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동시에 베드로는 아주 구체적으로 “사환들 같이 순종하라”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들이 처한 상황과 사환들이 처한 상황 간에는 분명한 현실적인 차이와 관계적인 것에 있어서도 주인과 사환,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적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이와 같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앞의 두 가지 권면과 마찬가지로 ‘권위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베드로는 의도적으로 아내들을 향한 권면을 남편들에게 쓴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할애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에서의 핵심은 ‘권위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고난 중에서조차 권위에 대하여 순종하라는 것인데,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 순종을 의미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정부나 권세가들에 대한 순종, 주인에 대한 순종, 남편에 대한 순종은 이야기하지만, 정작 역으로 바꾸었을 때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부나 권세가들이 순종한다던지, 주인이 순종한다던지, 남편이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베드로가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요점은 권위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믿는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 모두에게 예수님은 순종적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처럼 하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권위에 순종해야 함을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면서도 순종하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 그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아내들에게 남편을 향한 순종을 명령하는 것은 아내들이 남편보다 인성이나 영성, 또는 남편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제가 오후예배 때 설교했듯이 이것은 남편과 아내 간의 질서와 역할, 그리고 직분적 차이입니다. 만일 순종이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가 하는 것이라면 아버지에 대하여 순종하신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보다 열등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베드로는 아내들을 향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내들을 향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할 것에 대하여 특별히 어떤 특정한 상황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얼핏 보면 남편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이긴 한데,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이겠지만, 이 말은 오히려 더 부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믿지 않는 불신 남편들을 말합니다. 그것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에 대하여 저항하고 반항하는 아주 강력한 어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 중 대다수는 아니지만, 어떤 몇몇 아내들은 불신자인 남편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아내들은 불신자 남편으로부터 온갖 모진 핍박과 고난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남편에게 잘 하고, 남편에게 선을 행하는 아내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못 가게 막는다거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교회 간다고 폭력을 당하는 일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 있는 아내들을 향해 “불의에 대하여 저항하라. 불복하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라고 아주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베드로는 이렇게 아주 모진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는 아내들을 향해 베드로는 어떻게 “순종하라”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베드로가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니요. 아까 제가 말했듯이 베드로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이 아내들의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사도로서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작성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도이기 때문에 말합니다. “순종하라”
그렇다면 왜 이런 부당한 대우를 아내들이 받으면서까지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1절 나머지를 보겠습니다.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아내들이 불신자 남편으로부터 모진 고통과 고난을 감내하면서까지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아내들로 인해 남편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따라 아내들은 남편의 직분적 위치만으로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똑같이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특별히 불신자 남편으로부터 고난을 받더라도 순종해야 하는 이유로 남편이 아내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말로써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닌, 아내들의 행실로 구원받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아내의 선행으로 공로가 쌓여 남편이 같이 구원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고난 중에서도 남편에게 행하는 순종을 통해 남편이 아내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살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만들어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남편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2절을 보시면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두려워하고 정결한 행실을 보고 남편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뜻인데, 먼저 아내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아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죄를 짓기 않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행실을 취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행동을 통해 보여주어 하나님을 믿게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행실을 갖추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들 각자가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핍박받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할 수 있는 것들이 각자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믿지 않는 남편들에게 복음 메세지에 대해서 그들에게 결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베드로가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으로 아내들의 말이 아니라 아내들의 행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고난 중에 있는 아내들의 순종을 통하여 남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여기에서 베드로는 다른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남편들을 향한 순종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순종하지 말 것이 있다고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게 과연 무슨 말일까요? 베드로가 남편들을 향한 순종을 이토록 강조하고 있는데, 순종하지 말 것이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2절에서 베드로는 남편들이 아내들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아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죄를 짓지 않음으로 정결한 행실을 갖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내들이 순종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내로서라는 그 의미를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이며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죄를 장려하거나 강요하는 것이라면 순종하지 말아야 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전서 전체의 문맥상 특별히 “우상 숭배” 문제를 두고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우상 숭배하도록 만든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불복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남편들이 죄를 장려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 모든 문제에 대하여 순종함으로 아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행하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어 남편들이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베드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며,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는 사람의 삶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것을 위하여 아내들이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3절입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베드로는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베드로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중점을 두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1장 4절에서 베드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신다”라고 하였는데, 베드로에게 있어서 외적인 아름다움은 썩어 없어질 것이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영원하며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있음을 말합니다. 외모를 꾸민다는 것은 자신을 매력 있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 예쁜 옷을 입거나 화장해서 아름답게 꾸미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 중점과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아내들은 자신의 매력을 위해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과 같은 외모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내적인 것, 즉 4절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요점은 이것들 중 어느 것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적인 치장이 아니라 아내들의 내적인 성품과 인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외모는 썩어질 것이고, 영원하지 않은 반면, 아내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성품과 인격에서 나오는 언어와 행동들은 영원하며 썩지 않는 것입니다.
1장 4절에 따라 썩지 않을 유업을 받은 그리스도인인 아내들은 자신의 없어질 외모가 아닌 내적인 성품과 인격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아내들의 훌륭한 성품과 인격에서 나오는 행실을 통해 불신자 남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남편을 존중하는 아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순종하는 아내, 받은 것이 그렇게 있지도 않으면서 남편에게 감사하는 아내 등등 하나님으로부터 썩지 않을 유업을 받았다면 이러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삶을 살아내는 아내들을 향해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4절 끝에서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이러한 삶을 살아내는 아내들은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특히 현대인인 우리의 관점으로 볼 때는 어쩌면 미련하고, 불쌍하고, 더 나아가 심지어 왜 저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현대 사회 속에서 베드로가 전하는 이 말씀은 완전히 반대되는 삶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말합니다. 부당하고 억울하게 남편으로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을 받을지라도 순종하라고 말입니다. 아내들의 순종을 통해 남편들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살아내는 아내들을 향해 하나님은 아주 값진 삶이라고 평가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비천하고 불쌍한 삶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값진 보화와 같은 삶입니다. 또한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아닌 내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보석입니다.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는 베드로의 이 말은 교회 안에서 남편들로부터 핍박받는 아내들에게 굉장한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핍박받는다고 할지라도 순종함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더욱 북돋아 주었을 겁니다. 아내들을 향해 “너희 잘 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더 나아가 만일 이렇게 살고 있지 못한 아내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치기도 하였을 겁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더욱 이것을 강력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의 예시를 들고 옵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실제로 살아낸 믿음의 선진의 일화를 들고 옵니다. 그것도 단순히 교회 내에 있는 한 성도의 삶을 예시로 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를 가져와서 말입니다.
5절에 보시면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내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의 삶을 예시로 가져옵니다. 여기서도 “부녀들”이라는 복수형 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 있는 신실한 아내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아내들, 특별히 베드로전서의 언어를 사용하자면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소망을 두었던 아내들은 4절에서 말한 것처럼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자신을 단장하였습니다. 3절과 5절의 단장은 단 한번만의 단장을 말하지 않고 계속, 그리고 반복적으로 단장함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딱 한번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며 믿음의 아내들은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단장했음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아내들은 각자가 구약에 있었던 믿음의 아내들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럼으로써 아내들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통해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1-2절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고 그러한 순종적 태도를 통해 3-4절에서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을 보여준 실례가 무엇인지 아주 실제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남편의 권위에 대한 순종이 아내의 안녕과 아내만의 개성을 해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없이 아내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순종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녀들의 대표적 구체적인 예시로 베드로는 ‘사라’를 들고 있습니다. 6절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베드로는 아내들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과 같이 자신들의 남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특정한 사건과 연루된 사람을 언급하고 있지 않음으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할 모습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라의 순종의 사례는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아내들에게 적절한 격려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따라서 불확실하고, 불쾌하며, 심지어 아주 모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남편인 아브라함을 주로 칭하면서까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어떤 일을 당하였습니까? 그녀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목숨이 위협을 받을까봐 누이로 속이며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을 당했던, 아주 부당한 일을 당한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였습니다. 매우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더라도 그녀는 남편을 주로 칭하면서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그녀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삶을 통하여 증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옛 언약 아래 있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어머니가 되게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편지를 받는 교회와 성도를 향하여 “너희는 그녀의 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아브라함과 사라를 형통을 따라 계승한 유대인들이 아닌, 교회를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라의 딸이 된다는 것은 그녀와 아브라함에 주어진 약속와 명예를 함께 이어받을 자가 되는 것, 즉 썩어지지 않는 유업을 이어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라의 딸이 되는 조건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결코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 사라의 예시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남편들을 향한 아내들의 순종, 더 구체적으로는 아내들을 핍박하는 불신 남편들을 향한 순종을 하는 것이 사라의 딸이 된 신자로서 마땅한 모습이라고 가르칩니다. 불신 남편들로부터 고난을 받을지라도 남편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사라의 딸이 된 사람의 진정한 모습,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내들 뿐만 아니라 7절에서 남편들에게도 말합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남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아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간략하게 말합니다. 이 남편들도 불신자인 아내들에게 행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남편들을 향해 베드로는 세상의 관점에서 더 약하고 덜 존중받는 아내일지라도, 그리고 아내가 남편 앞에서 연약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그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고 귀히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해서 남편이 더 우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권위적인 측면에서 더 연약하다는 것이며 남편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는 아내들의 감정적인 민감함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인 남편들은 불신자인 아내들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들을 품고 그들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방식으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는 아내와 남편들의 삶이며 이들의 삶을 통하여 불신자 남편과 아내가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는 아주 강력한 어조로 아내들에게, 그리고 짧막하게나마 남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고난을 받으라”라고 말입니다. 고난받는 중에서 아내들은 남편들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편들은 아내들을 품고 사랑해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중에서도 아버지에게 순종하셨듯이 아내들은 순종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고난 중에서도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남편들은 아내를 품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이 말씀은 굉장히 큰 반항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납득되는 상황, 우리의 이성이 이해되는 상황에서만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사라와 같이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구원을 받고 있는 것은 도덕과 윤리가 말하는 이성적 합리에 따른 순종이 아닙니다. 부당한 고난을 받고 있더라도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가르칩니다. 우리가 도덕적 윤리적인 태도를 취하기 힘든 이유는 이성적 합리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성적 합리에 의하여 우리가 선행할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라가 2번씩이나 아브라함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주로 칭하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듯이 우리의 삶도 그리해야 합니다.
우리 위에 있는 권위에 대하여 베드로는 오늘 말씀에서 부당한 대우가 있더라도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베드로가 전한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우리 위에 있는 권위, 특별히 오늘 말씀 속에서 믿지 않는 남편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아내 분들이 계실지라도 그러한 삶 가운데서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을 나타내는 우리 복된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값진 삶이라고 평가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부당한 대우(핍박, 고난)을 위에 있는 권위에게서 받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도록. 특별히 순종하도록.
이 자리에 불신 남편으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는 아내 분들이 계시다면 위로해주시고 이 말씀대로 살아내는 분들이 되도록. 남편 분들도 아내들을 더 사랑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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