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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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BLF(3)
함께 걷는 BLF(3)
이미 주신 것이 무엇인지 보고 누리면서 살아있는 생생한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소망이 클 때 세상의 것들이 작게 느껴진다.
1장은 우리 체험의 영역이 아니다. 성령에 의한 계시가 아니면 결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말씀으로 실상을 알리는 것이다. 2장은 우리 편에서 구원을 설명하신다.
11-12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 이방인을 대상으로 설명. [5 無]
그리스도의 피(객관적 구원사역 2:14-16), 그리스도 안에서(주관적 구원사역 2:17-18)
의식법-시민법-도덕법 중 그리스도 이후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만이 남았고 더 분명해졌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따로 따로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2:16).
18-22은 한 몸이 무엇인지,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풍성하게 설명되는지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시민, 권속, 성전. 구원받은 우리의 복을 이 세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시민
시민은 교회를 통해 좀 더 추상성을 낮출 수 있다. 교회의 성례로 인침을 설명하고, 말씀을 통해 하늘의 양식을 공급받고, 목사와 장로의 치리를 통해 하늘의 다스림을 경험한다. 따라서 교회와 천국은 분리시키면 안 된다. 로마카톨릭의 악영향으로 이 말이 오염되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천상과 동일시 했다. 그러면 진실한 믿음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회의 성례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제주의 등이 등장한다.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음보다 교회의 형식에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해되었다. 이런 죄악상으로부터 개혁하기 위해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구분하여 유형교회 안에 어떤 자는 구원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으로 인한 이런 흐름이 과도하게 해석되어 유형교회 자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무형교회는 반드시 유형교회를 취한다. 우리 영혼이 몸을 취하듯 이 둘은 나뉠 수 없다. 두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가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을 수 있음에 유형교회와 무형교회 용어가 등장했으나 우리는 가라지에 신경쓰지 말자. 왜냐하면 무형교회는 반드시 유형교회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교회의 교회됨을 따라 사역을 할 때 유형교회 안에 무형교회에 속한 자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함께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통해 하늘의 확증을 받고, 하늘의 생명 양식인 말씀을 받고, 그리하여 건강하게 자라가고, 성찬을 통해 또한 자라가고, 직분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을 느끼며, 말씀과 치리를 통해 죄를 회개하는 등. 이런 지역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한 몸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충만을 받아 복을 누리며 살게 됐다.
교회를 복으로 보지 못하고 고통스런 사역의 현장으로 여기는 현상들을 내버려두지 말라.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거하는 곳으로 보아야 한다. 교회의 모든 절차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수단이라 생각해야 한다. 형식주의가 위험한 것은 이 모든 복된 수단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경험되게 한다. 그리하여 예배를 무시하고 성찬을 소홀이 여기고, 교제를 선택처럼 여기는 모습이 굳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권속
대가족 안으로 들어갔다. 구원받은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지를 설명한다. 시민권보다 더 친밀한 표현이라 느낄 수 있다.
신원균. 아담의 타락 허용 이유. 하나님은 우리를 피조물만이 아니라 아들로 살게 하시고 자녀가 되는 권세를 허락하시기 위해 타락을 허용하시는 가운데 하셨다.
아빠 아버지. 예수님이 쓰신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로 여기시는 것이 훨씬 더 크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기 자녀들을 책망하고 꾸짖는다. 징계는 징벌적 진노가 아닌 교정적 진노이다. 이 징계가 있어서 기복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참된 아들됨을 이해할 때 기복신앙에서 벗어난다.
아들됨을 이해할 때 개인적인 측면이 아닌 교회적인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체 가족의 일원되게 하신다. 다같이 ‘아버지’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