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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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가 생각을 넣음과 들어감의 차이
마귀가 생각을 넣음과 들어감의 차이
마귀는 실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하는 것들을 ‘영적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영적인 것은 매우 다양한데 크게 두 가지의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 속한 것
그리고 두번째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
영적인 것 중에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의 중심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모든 것의 중심은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태초에 하와에게 했듯이, 먼저 사람의 마음에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 대적하라는 것이고, 한마디로 ‘죄’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란
알고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일 그리고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죄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유다에게도 마귀가 접근하여 마음에 생각을 집어넣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
그는 너를 구원할 수 없어,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너의 미래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칠거야.
그래서인지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한번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늘 선생이라고 불렀다.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그는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시자 예수님 앞에서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했다.
마귀가 그 속에 들어간 사람은, 흔히 사탄이 들어갔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데 쉽게 말하여 제 정신이 아닌 상태이다.
이런 사람은 죄에 대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도 마비되어 못 느끼고, 악행을 즐거워하기도 하며, 그것을 정당화 하고, 매우 잔인하고 끔찍하며 악랄한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얼굴색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결정적 장면을 보라!!
예수님이 모든 상황을 아시고, 마음까지 살펴보시니 이제 회개하든지 더 악랄해지든지 선택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마귀의 손을 잡은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공간을 박차고 나간다.
그리고 밖은 깜깜한 밤이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악에 속한 사람은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한다.
자기도 자기가 왜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영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유다는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던 밝은 장소를 견디지 못하고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으로 악행을 저지르기 위해 떠났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좋은 생각을 넣어주시는데 그것을 계속 품고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빛되신 예수님이 계시는 교회를 좋아하고, 자꾸 오고싶어 하며 이후에 예수님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 사람은 빛을 좋아하고 선행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된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라!!
예수님도 심령이 괴로워하셨다.
예수님도 심령이 괴로워하셨다.
죄가 없는 상태라고 해서 마음에 괴로움마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마음에 괴로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죄가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
특히나 사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참 아프고 깊다.
믿음이 크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리나 대중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이라고 칭송하며 열광하던 그 시기에 자기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을 팔 것이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도 인간답지 못하다. 그것이 마음에서 곪아서 썩고 문드러져 마음의 병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 고민을 그 상처를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 할 것인가?
이것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님은 제자들만 있는 방에서 식사 중에 제자들에게 그 고민을 털어놓으셨다.
“너희 중에 한 명이 나를 팔거야.”
제자들은 그 말에 놀라며 서로를 의심합니다. 이들은 아직 고민이나 상처를 나누기에 미숙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고민을 나누었는데 그 이유는 마음을 달랠 용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믿음을 더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간혹 교회의 성도들과 비밀을 공유하라고 하니까 모든 것을 다 오픈했다가 큰 상처를 입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없는 행동입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또 중요한 내용일수록 소수의 인원에게 가급적 목회자가 리더들에게 그리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12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님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자 오른팔인 베드로가 고개짓을 하며 그 제자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사인을 줍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제 말씀하시는데 행동으로 그를 지목하십니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을 때, 함께 나누세요.
예수님도 제자들과 자신의 마음에 괴로움을 나누셨습니다.
상처 속에도 사랑으로 반응하신 예수님
상처 속에도 사랑으로 반응하신 예수님
믿었던 사람의 배신만큼 아픈 것은 많지 않습니다.
큰 고통 중에 예수님의 선택은 그 제자를 비난하고 망하게 하거나 사람들에게 그의 실체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팔러 가기 직전까지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문 밖을 나가고 난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광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십니다.
제자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하죠.
그러나 나중에 가룟 유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예수님이 그 때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떠올리며 온몸에 닭살이 돋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은 교회가 커지고 성도 수도 많아지고 헌금도 많이 모이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는 이런 큰 교회들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있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은 우리가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랑받을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 쉽죠. 그런 행동으로는 하나님이 영광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 할 수 없는 사람들 거지, 과부, 창녀, 고아, 무식한 사람, 아픈 사람 등을 사랑하는 그 모습이 하나님 때문이기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없는 상황 배신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기 당하고, 재산을 잃고, 병을 얻고, 매 맞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서 ‘서로’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어설프게 사랑을 퍼주려고 하지 마세요. 너무 쉽게 마귀의 밥이 됩니다.
자기 수준을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야하는지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사랑을 준다며 어느 만큼 얼만큼 줄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연습하고, 연단하세요.
오늘 함께 나눈 말씀과 같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이 되지 말고,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되어 서로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